대부
마리오 푸조 지음, 이은정 옮김/늘봄

유명하기로는 굉장히 유명한 소설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책보다는 영화로 더욱 친근한데, 이 영화의 음악이 은근히 여러 곳에서 사용되어서 귀에 익었기 때문에 더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영화를 본 적이 없었고 음악만 들어 알고 있었던 경우였죠. 언젠가 한 번쯤 봐야지 하다가 책이 있는 걸 알게 되자 영화를 볼 생각을 그만두고 책을 보기로 했습니다. 원작이 있는 경우에는 영화는 안 보고 책만 보는 주의거든요. (종종 예외도 있긴 합니다만 거의 그렇습니다) 사실 이걸 읽기 전까지는 좀 무겁고 딱딱한 소설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더군요.

대부 (Godfather) 돈 비토 코를레오네는 우리 식대로 말하면 의협을 아는 마피아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착취한다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서로 이득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취합니다. 그렇다 해도 결국 마피아입니다만, 그가 쌓아 올린 신뢰와 명성은 소설의 초반부에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이 돈 코를레오네의 딸의 결혼식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며, 그와 관계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그의 자식에게로 대부라는 호칭이 이행되며 대를 이어 내려가는 내용을 보여 줍니다.

두꺼운 책입니다만 읽기는 편합니다. 원체 이 소설 자체가 돈이 필요했던 작가가 팔기 위해 쓴 작품인만큼 난해한 구석이나 어려운 구석은 거의 없습니다.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에 인물의 원형을 찾고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쓸 시간이 없어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는 정도로 그친 (713p, 해설 중의 내용), 작가 본인에게 창작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작품이라고는 해도 이 소설 중의 인물들은 저마다 개성이 있고 살아 숨쉽니다. 이 기나긴 이야기 속에서 각각의 인물들은 분명히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몇 가지 생각해 볼 만한 거리들이 있습니다만, 우선 이 소설에서 마피아들이 보여주는 폭력에 근거한 체계에 대해 말해 볼까 합니다. 분명 국가와 사회가 힘을 써주지 못하고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구조 속에서 마피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나름의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일은 썩 괜찮아 보입니다. 그 마피아가 자신의 이득만을 취하는 악당이 아니라 나름의 정의관이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근래 우리 나라에서 조폭 영화가 유행했던 것도 이런 일과 무관하지 않겠지요. 어차피 사회가 혼란하고 국가 차원에서 정의를 구현하지 못한다면 내 나름대로 구현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게다가 폭력에 의한 해결은, 당하는 쪽에서는 몰라도 사용하는 쪽에서는 시원스럽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언뜻 보면 이 소설은 마피아를 미화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비록 여기에서 돈 코를레오네를 나름의 정의관과 미학이 있는 괜찮아 보이는 마피아로 그려냈다 하더라도, 마피아의 횡행을 바람직한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몇몇 부분도 동시에 존재합니다. 우선 무엇보다 첫 번째 문제로 마피아의 해결 방식인데, 이러니저러니 말해도 결국은 타협이 통하지 않으면 상대를 죽여 버립니다. 비정한 사회이며 사람의 목숨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물론 어디에고 그런 식의 삶도 존재하기는 하는 법입니다만, 이게 권장할 만한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죠.

두번째는 돈 코를레오네가 시칠리아를 떠나 미국으로 와 정착하게 만들었던 이유 자체인데, 시칠리아는 국가의 권력이 제대로 닿지 못하며 마피아들의 권력이 너무 커져서 말 그대로 무법 천지로 변해 버렸습니다. 소설 내에서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 일은 시칠리아의 사회 곳곳에서 마피아가 얼마나 암적인 존재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능력이나 재주, 성실성 같은 것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마피아 대부는 직업까지도 선물로 주었다." (508p) 또한, "만일 아버지의 조직도 계속해서 번성한다면 (이 문단은 돈 코를레오네의 아들인 마이클의 시점에서 서술하는 문단입니다) 이 섬에서와 같이 나라 곳곳을 파괴하는 암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시칠리아 섬은 빵을 구하러 또는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누린 죄로 죽음을 당할까봐 지구상 곳곳으로 떠나버린 사람들 때문에 이미 유령의 섬이 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508p) 마피아가 횡행하는 곳은 노골적으로 약자가 잡아 먹히고 있으며 강자에게 빌붙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입니다. 결국 작가 마리오 푸조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국가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 대체 권력으로서 마피아가 바람직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피아는 옳지 않지만 체계의 빈틈을 타고 마피아가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정도이겠습니다. 돈 코를레오네는 어느 정도 서민을 위한 영웅은 되어도 결코 진정한 의미의 영웅은 되지 못합니다.

국가 권력 또한 결국은 강자들이 약자를 착취하기 위한 구조이며 법 또한 그래서 존재한다는 삐딱한 시선도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 해도 마피아와 같은 이들이 노골적으로 약자를 잡아 먹는 사회보다는 낫습니다. 그들이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사용하는 방식은 결국 폭력과 억압에 의한 강제적 협력이니까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