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에 이르는 병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시공사

서술을 통해 독자를 속이는 류의 소설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간단합니다. 엽기적인 연쇄 살인이 있고, 소설은 세 명의 시점을 통하여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살인자, 그 살인자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추적하는 여인, 그리고 사건의 피해자가 사랑했던 한 퇴직 형사. 이 세 명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나오고, 어떤 부분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독자를 기만해 가며 이야기를 서술합니다. 이런 류의 소설을 읽은 건 이것이 네 번째인데,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그리고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가 제가 전에 읽은 세 편입니다. 뭐, 말하자면, 이미 이런 걸 세 번이나 접해 봤으면 이제 슬슬 안 속을 때도 됐습니다. (...)

사실 전 애초에 추리소설을 읽으며 머리를 쓰는 독자는 아닙니다. 오히려 마지막쯤 가면 '자, 이제 어떤 부분에서 나를 속였는지 말해 주지 않겠어?' 라며 두근두근하는 쪽이긴 합니다만, 뭐랄까 이쯤 되니 슬슬 반골기질이 머리를 쳐들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책 뒤의 광고카피부터 '충격적인 결말을 확인한 순간,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라고 써 있다거나, '지금까지 쌓아올린 인식이 완전히 박살나버린다'라거나, '당한다'라거나 하는 말을 보고 있자니, '뭣이 이게 그리 대단해?!' 라고 하는 반골기질 발동. 그래서 저는 최소한 속지는 않겠어! ..라는 결의를 다졌습니다. 범인을 맞춘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애당초 이런 류의 소설이란 게 범인이 누구이며 대체 어떻게 범행을 한 것이냐는 걸 문제삼는 게 아니라 독자가 이야기를 읽으며 인식하는 상황 그 자체를 무너뜨리는 데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을 피해가는 것만으로도 안 졌다는 기분은 들죠.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결론부터 말하면, 안 졌습니다. 그러나 이기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안 질 수 있었느냐, 이 소설에서 의도적으로 독자를 기만하기 위해 써 나간 문장의 함정에 어떻게 하면 빠지지 않을 수 있는가? 방법은 간단합니다. 주어지는 정보 하나하나 (특히 광고 카피)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대상에 대하여 어떤 표현과 어떤 문장을 사용했는가를 찾아보고, 소설 내에 주어지는 어떤 상황도 반드시 무엇이라고 미리 선입관만 내리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이 소설에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소설은 어느 정도는 페어플레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눈썰미가 있으시다면 여러분 역시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선 이런 류의 소설로 먼저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언급했습니다만, 그 소설들과 이 <살육에 이르는 병>에는 한 가지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1인칭이지만 이 소설은 3인칭이며 더구나 세 명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는 점입니다. 이건 무슨 말이냐면 화자가 '나'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맹점으로 트릭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이 소설이 서술을 통해 트릭을 만든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외에 서술로 혼란이 발생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조금 생각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를 보아도 알 수 있듯, '사건의 발생 시기나 장소'나 '인물들의 관계'에 무언가 혼란을 발생시키는 겁니다.

서술 트릭은 오로지 소설이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소설이 다른 매체와 다른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든 부분을 묘사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묘사하고 싶은 부분만 묘사하고 설명하고 싶은 부분만 설명합니다. 어떤 소설이라도 반드시 비어 있는 공간이 나타나기 마련이며, 그 부분은 독자가 알아서 그려 넣어야 합니다. 바로 이 점입니다. 사실 작가는 분명히 말하지 않고 뭉뚱그려놓았는데도 독자가 알아서 확연하게 그려 넣고는 그 부분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서술 트릭에 당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고로, 작가가 분명하게 묘사하지 않은 부분은 무조건 다 의심해보면 됩니다.

그런데 의외로 사건 자체에서는 뭉뚱그려져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오히려 범죄 묘사에 있어 지나치리만큼 세세하고 잔혹합니다. '이렇게까지 묘사해야 할 필요가 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을 읽고 저는 '이야기를 위해 장치를 만들었다기보다 장치를 위해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장치에 심취한 느낌이 든다'는 평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도 거의 그런 느낌이 듭니다. 살해, 시간, 사체 훼손 등의 내용들을 지나칠 만큼 세세하게 서술합니다. 무엇 때문에? 이 작가가 범죄를 사모하는 나머지 열정을 담아 범죄행위를 서술했을 리는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 소설의 모든 부분은 일종의 장치이며 이런 류의 소설에선 더더욱 그렇습니다. 공포문학단편선을 말했습니다만 이 소설이 엽기적이고 고어하긴 해도 호러소설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트릭의 본질을 흐트러뜨리기 위해서입니다. 정말 보아야 할 부분은 신경쓰지 못하도록 일부러 더 잔혹했을 수 있습니다. -라는 건 물론 추측입니다만.


그래서 속지는 않았지만, 확실하게 진상을 밝혀내지도 못했다는 의미에서 일단, 이기지도 못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이기지도 못했다는 기분이 드는 건 약간 다른 이유가 있는데, 이런 소설 이렇게 봐서 안 속아도 별로 재미 없습니다. (...) 이런 류의 소설은 별로 생각 안 하고 보다가 마지막에 가서 '우악 이게 이거였구나! 제기랄!' 하는 쪽이 훨씬 재미있달까요.

어쨌거나 그런 소설입니다. 광고 카피에서는 '연쇄 살인범의 심리, 사회 병폐의 고발 그리고 최강의 반전'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로는 반전에 사활을 건 그런 소설로 읽히는군요. (문장 수준 자체는 높은 편이긴 합니다) 원체 이런 류의 스타일이 거기에 목숨을 걸기야 합니다만, 특정 부분에서 말장난을 치면서 독자를 속이는 느낌을 받게 되다 보니 읽고 나면 어딘지 허탈해지기까지 하덥니다. 게다가 내용 자체가 워낙 잔혹하고 고어하다보니 읽으면서도 영 찝찝하죠. 이런 류의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겠지만, 구입해서 읽어볼 정도로 굉장한 책은 아닙니다. (구입한 PaleSara군에게서 빌려 읽으면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긴 합니다만. 핫핫)

서술 트릭을 사용하는 소설을 읽어 보면, 소설이 독자에게 제공하는 세계는 모호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독자가 머리속에서 세계를 재구축하는 장르가 소설임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확실히 영상매체와 달리 소설은 다소 추상적이며,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 이전에 '만들어진 세계' 자체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맹점을 공략하는 것이 서술 트릭이며, 이런 트릭을 사용하는 데 있어 엄밀한 의미에서 페어플레이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