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자단의 정무문 30부작 박스세트 (7disc)
진목승 감독, 고웅 외 출연 / 월드디지털엔터테인먼트

<정무문>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소룡의 <정무문>이고, 또 하나는 이연걸의 <정무문>이며, 마지막 하나가 바로 이 견자단의 드라마 <정무문>입니다. (전자의 두 개는 영화죠) 이 모든 것의 기본 베이스가 되는 건 역시 이소룡의 <정무문>입니다. 실존인물인 곽원갑과 그의 정무체육회를 기본으로, 그의 죽음이 일본인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일본인 살해설에 기반을 두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설일 뿐이며, 실제로 암살이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의 가상의 제자인 진진이 그 복수를 위해 싸우는 내용입니다.

이소룡의 그것은 오로지 진진의 활약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이소룡 영화가 거의 그렇듯이 그의 무술인 JKD (Jeet Kune Do, 절권도)를 멋지게 선보이는 데에 영상의 많은 부분을 할애합니다. 이연걸의 <정무문>은 이소룡의 원작을 기반으로 하여 내용을 보태었는데, 이연걸판에서는 진진이 일본에서 공부했다 돌아오는데 그 때 일본에서 일본인 여성을 만났으며, 그 여성과의 로맨스가 영화의 중요한 축 한 부분을 이룹니다. 이연걸 나름대로 JKD를 선보이긴 하지만 이소룡의 그것과는 느낌이 매우 다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소룡의 무술 자체도 영화에서는 '영화용'으로 어레인지되어 있어, 실제로 사용했던 무술 스타일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일련의 이소룡 영화들,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중에서 최고의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정무문>을 최고라고 꼽곤 합니다. (<사망유희>는 저 리스트에 아예 포함도 안 시켰는데, 그 영화는 미완성 필름을 가지고 만들어낸 졸작이기 때문입니다. 그 영화는 오로지 미완성되었던 이소룡 본인의 영상을 보여 주는 데에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이유인즉슨 정무문이 담고 있는 메시지, 간단히 말하면 일본 제국 시대에 일제에 항거했던 민족정신의 고취가 우리나라에서는 중국 이상으로 먹혀들기 때문입니다. 액션신의 수준으로 볼 때 <맹룡과강>이 가장 뛰어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그렇다 해도 <정무문>이 스토리상 가장 와닿게 한다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민족정신 고취와 더불어 멋진 액션신으로 <정무문>은 무술 영화의 명작으로 이름나 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후대의 무술 배우들이 이 작품을 리메이크하게 된 것이죠. 그 중 하나가 이연걸이고 또 한 명이 바로 견자단입니다.

이 견자단의 <정무문>은 이소룡 원판이나 이연걸판에 비해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이 견자단판은 장편 드라마라는 겁니다. 아이디어 자체는 이소룡 원판을 기본으로, 이연걸판에서의 '일본인 여성과의 로맨스', '진진 외에 다른 정무문 사람들의 액션도 중시한다'라는 내용도 깔고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소룡 원판과 이연걸판에서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었던 엔딩에서는 이소룡 원판의 시퀀스를 따릅니다. 말하자면, 이소룡 원판을 확연한 베이스로 하여 드라마를 위해 에피소드나 인물 갈등을 추가하되 필요한 부분만 이연걸판에서 얻어 왔다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어떻게 만들었는가는 어쨌든간에, 그렇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진진이 곽원갑을 만나고 이후 여러 일들이 있은 후 곽원갑이 죽는 부분까지가 드라마의 전반부이고 곽원갑의 죽음을 기점으로 그 후부터가 드라마 후반부입니다. 이건 말 그대로 드라마라, 갈등 - 해결 - 더 큰 갈등 의 무한반복구조가 계속됩니다. 사실 드라마처럼 긴 영상물은 제 취향은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그럭저럭 볼 만은 합니다. 드라마에 지칠 때쯤 되면 시원한 액션이 나와 주는 식이라서요.

액션에 대해서 말해 보면, 견자단의 경우 실제로 JKD를 배웠으므로 이연걸보다 이소룡 느낌의 JKD를 보다 잘 보여줍니다. 드라마다보니 워낙 시간이 많은 덕분에 가능한 액션은 어지간하면 다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 시리즈에서 아쉬운 점은 나오는 인물들의 맷집인데, '필요할 때까지는 아무리 맞아도 멀쩡하며 필요한 순간이 오면 갑자기 데미지를 입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액션신 자체는 퀄리티가 높은 편입니다만 이 점 때문에 점수를 조금 깎아 먹습니다. 어쩌면 이걸 더 좋아하실 분도 있겠지만,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겠군요. 더불어 액션에서 카메라를 좀 흔들어 대는 편이라 이것도 감점.

그래도 이 드라마는 이소룡을 좋아하시는 분이나 견자단을 좋아하시는 분은 꼭 한 번쯤 보실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소룡만큼의 카리스마는 아니라고 해도 견자단은 현재 이연걸 정도나 상대를 할 수 있을 만큼 카리스마가 강렬한 무술 배우라, 영상에서 보여준 그 액션을 현실에서도 정말 쓸 수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몇 없는 배우입니다. (다소 오버가 있긴 합니다만 연출이니 그 정도는 넘어갑니다) 이소룡의 명작 <정무문>을 기본으로 재해석해 드라마를 만들되 원작에 충실하였고, 애당초 드라마의 시작부터 이 드라마를 '이소룡에게 바친다'고 하고 있습니다. 무술 영화 팬이라면 이런 건 한 번쯤 봐 줘야죠.

그러나 이 DVD 자체에 대해서는 악평을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저는 이 DVD세트를 살 때 당연히 DVD화질을 기대했습니다. 음향 리마스터링 5.1채널 이런 것까지는 기대 안 했지만 (물론 뒤에 돌비 디지탈 스테레오 2.0이라 적혀 있는 만큼 기대하는 게 더 이상하긴 하겠습니다) DVD를 사면서 '오오 DVD다! 이제 예전에 봤던 것과는 다른 깨끗한 영상을 볼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죠. 그러나 막상 DVD를 돌려보자 이건 웬걸, 비디오를 그대로 떠서 DVD로 만든 제품이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본 게 비디오판이었는데 자막 폰트며 뜨는 방식이 그것과 완전히 동일했습니다. 말하자면, 자막이 따로 뜨는 게 아니라 애당초 영상에 합쳐져서 보여집니다. 모처럼 DVD면서 영상이 이래서야 실망이 한가득입니다. 단 하나 좋은 점은 그나마 해상도는 볼만하다는 점입니다. 그래봐야 640x480이라, DVD라고 하기엔 떨어지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이 DVD세트는 부가영상이든 무엇이든 전혀 없으며 비디오를 그대로 뜬 영상을 DVD로 구운 것뿐입니다. 어쩐지 DVD세트치곤 처음부터 가격이 싸게 나오더라니, 싼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기야 합니다만.

..언젠가 제대로 DVD가 다시 한 번 나와 주길 기대합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