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이 책을 다 읽는 데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이 책은 700페이지를 상회하는 두꺼운 책으로, 꽤 유명한 책입니다. 세부사항을 하나하나 파고들면 감상이 꽤 길어지겠지만 여기에서는 요점만 간단하게 잡아 볼까 합니다. 사실 이 책의 요점은 매우 간단합니다: "문명 간의 불평등은 왜 일어났는가?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여러 민족과 국가 간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어느 민족이 어느 민족보다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처음 거주하기 시작했던 대륙과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를 하느라고 700페이지나 들였지요. (엄밀하게 말하면 600페이지 정도. 592p에 에필로그가 있고, 623p에 특별 증보면이 있으며, 674p부터는 추천사나 옮긴이의 글, 참고 문헌이나 색인 등이 딸려 있습니다)
<총, 균, 쇠>가 이렇게 두꺼운 것에는 이유가 있는데, 저 주장이 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세계 각 지역의 예를 하나하나 들어가며 '내 말은 틀리지 않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예를 들 때마다 했던 말을 또 반복합니다. 초반은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중반부 넘어가면서는 좀 진절머리가 나서 속독으로 후딱 읽었습니다. 그래서 중반까지 읽는 데 하루가 걸렸지만 중반부턴 5시간도 안 걸렸습니다. (저 '하루가 걸렸다'는 말은 모두 합쳐 보면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집중이 안 되었던 터라 기간상으로는 두 주가 걸렸습니다) 하려고만 한다면 이 책은 반으로 줄여도 충분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남을 텐데 이렇게 두껍다는 이야기는, 제가 볼 때는 아마 서구 사회에서는 인종간에 우열이 있다는 관념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 반증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살고 황인종인 저로서는 인종간에 우열이 있다는 것을 애당초 받아들이지 않으니 예를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들지 않아도 금방 납득하지만, 저 쪽에서는 이 정도로 해 두지 않으면 안 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대체적으로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은 이러한 것들입니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인구가 밀집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한데 그건 식량 생산을 수렵채집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농경생산을 하는 겁니다. 농경생산을 해야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이 가능해 무거운 짐이 될 만한 물건도 만들 수 있으며, 식량에 여분이 생겨 특별 기능자를 만들 수 있고, 인구 밀도가 높아지고 모르는 사람이 많아지므로 중재자가 될 만한 권위자의 탄생이 나타나며, 고도 발전에 따라 다른 사회를 집어삼키고 그 크기를 키울 수 있습니다. 족장 사회 - 추장 사회 - 국가로의 고리는 여기에서 나오죠. 반면 수렵채집 사회는 이동이 잦으며 식량에 여분이 생기는 일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사회가 고도화되기 어렵죠.
그렇다면 왜 농경생산을 하지 않고 수렵채집을 고집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우리 기준으로만 농경생산을 생각하기 때문인데, 초기의 농경사회는 수렵채집에 비해 반드시 효율이 좋다고만은 할 수 없었습니다. 기술이 전승되고 발전하며 종자도 점차 개량시켰으므로 지금이야 농경이 먹거리가 풍부하지만, 초창기에는 들이는 힘에 비해 얻는 것이 꼭 수렵채집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었다는 점이죠. 게다가 이것 또한 필요 조건이 있는데, 실제로 작물화할 수 있는 식물도 대륙마다 달랐기 때문에 어떤 지역에선 다양했으나 어떤 지역에선 거의 없었으며 기후에 따라 잘 자라는 곳과 그렇지 못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북극의 이누이트를 예를 들어봅시다. 거기에선 농경생산을 하고 싶어도 못 하므로 수렵채집밖에 없습니다)
일단 사회가 고도화되기 시작하면 인구 밀도가 높아지며, 무언가 독특한 것들을 발견/발명해내는 사람도 많아집니다. 실제로는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인 것이 아니라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라,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필요를 찾아내는 법이죠. 당장 우리들도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 '그게 꼭 필요한가?'하다가 쓰다 보면 편리함을 알게 되며 그게 없으면 불편해집니다. 예전에도 마찬가지라 불편하다고 기술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사실 기술이 나오기 전엔 그게 불편한 줄도 모르는 겁니다), 살아가기 힘든 사회에서 신기술이 나와 혁신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굶어죽을 걱정은 없는 사회여야 기술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 연유로 기술 고도화는 농경생산이 시작된 사회에서 나타났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가축인데, 동물을 길들여 쓸모에 따라 사용하는 겁니다. 그러나 동물의 가축화에도 조건이 있어서 아무 동물이나 가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이 가능한 동물들 또한 대륙마다 달랐습니다. 해서 동물 · 식물의 가축화 · 작물화는 인간 사회에 큰 변혁을 가져다주었고, 그 요소들이 조합됨으로 인해 기술에 큰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동물의 가축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이 그들의 질병이 인간에게 전해지면서 새로운 병균이 탄생했다는 점인데, 이 병균의 존재가 후에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침략할 때 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는 무기로 학살되는 것보다도 오히려 병균에 의해 더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것이죠. 스페인인들의 잉카 점령 때에 그러했고, 북아메리카의 경우엔 95%의 원주민이 이 질병으로 죽어갔다고 할 정도입니다. 제목인 <총, 균, 쇠>의 균이 여기에 해당됩니다만, 실제로 이 책에서 총이나 쇠의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총이나 쇠는 어떻게 설명하나 기대했는데 별 말 없더군요. 가축화에서 이어진 균 정도나 좀 비중이 있었으니, 굳이 이 책의 중심 소재를 말하라면 작물, 가축, 그리고 균 ···정도로 압축해도 좋습니다.
가축화 · 작물화가 된 곳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이것은 꼭 자신이 시작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곳에서 먼저 시작되었다면 받아들일 수도 있었죠. (엄밀히 말하면 받아들였다기보다, 가축화 · 작물화를 먼저 효율적으로 성공해 인구 팽창을 한 농경민이 넘어와 발달하지 못한 그곳의 원주민을 제압하고 자신들이 그 땅을 차지했다고 보는 쪽이 빠릅니다. 그리하여 저 쪽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원주민도 신문물을 받아들이면 원주민 또한 나름대로 가축화 · 작물화에 성공하는 것이죠. 본래 말이라는 가축을 몰랐던 인디언이 19세기에는 기마 민족으로 이름을 날렸던 것이 그 한 예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라시아가 다른 대륙에 비해 고도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대륙의 형태를 보면, 아메리카 대륙은 남북 쪽으로 더 길고 아프리카도 그러한데 유라시아는 동서쪽으로 깁니다. 말인즉슨 동위도에 존재한다는 소리로, '같은 기후'이기 때문에 이쪽에서 가축화 · 작물화된 동식물이 전달되기에 더 좋다는 소리입니다. 침략자들이 자신의 문물을 가져갔건 원주민들이 차용해갔건간에, 전해지기 훨씬 좋았다는 소리이죠. 그러므로 유라시아의 팽창이 다른 대륙보다 압도적으로 빨랐으며 이것이 이후 유럽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아시아를 정복한 원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유라시아였고 훨씬 문물의 발달이 빨랐던 중국의 경우에는 대륙 내에 지형상 방어막이 없어 대륙 내 통일을 간단히 이루었는데, 지형이 험준해 통일이 힘들어 수십 수백의 국가가 난립한 유럽과 대조가 됩니다. 물론 더 거대한 국가인 중국 쪽이 하려고만 한다면 훨씬 빠른 기술 발달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실제로 한동안 그러했습니다만, 단일 국가에는 하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지배자가 어리석으면 기술 발달이 저하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유럽은 워낙 국가가 많았으므로 경쟁이 심했고 어떤 곳에서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면 곧 도태되기 십상이었습니다. 이 점이 유럽과 중국의 차이로, (아시아에 중국만 있는 건 아닙니다만 중국만 언급하더군요. 뭐 그리 틀린 말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는 점이 슬픕니다만···) 초반에는 유럽을 압도했던 중국이 결국 서구에 침략되고 만 원인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초기에 발전은 좋았으나 대륙의 축이 세로로 더 길어서 문물 전달이 어려웠다는 점에서 탈락이고 아메리카도 대륙 축이 세로로 깁니다. 교류가 힘들면 발전이 어렵죠. 오스트레일리아는 엘니뇨 현상으로 환경 자체가 뒤죽박죽이라 농경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대륙이라, 현대에 와서도 안정적인 농경은 불가능하다시피 합니다.
대강 이런 소리를 하는 책입니다. 물론 인간 사회는 상당히 복잡한 것이라 저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으며 변수도 상당합니다만 기본적인 라인을 깔아 준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더군요. 저자 자신의 말대로 이런 내용들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선 모든 학문 분야에 상당한 조예를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자신은 여러 가지를 배웠고 파악하며 경험했으므로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만, 저로서는 일단 이 사람이 진화생물학자이며 무신론자(일 것이 뻔하)고, 종교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점에서 점수를 깎았습니다. 어쨌거나 이런 책이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방향 제시이지 깊이 있는 연구는 되기 어렵습니다. (수준이 낮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가이드라인으로만 생각하기에는 예가 워낙 많아 어지간히 두껍습니다만, 어떤 의미에서는 잡학을 키우는 의미에서도 쓸모 있는 책이었습니다. 대체적인 논지는 일단 위에서 다 설명해 두었습니다만, 정말 그런가, 그리고 어떤 예를 어떻게 들 수 있는가가 궁금하신 분은 한 번쯤 보셔도 좋겠습니다.
아 드디어 다 읽었다. 이제 딴 책 좀 읽어야지. (흑흑)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이 책을 다 읽는 데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이 책은 700페이지를 상회하는 두꺼운 책으로, 꽤 유명한 책입니다. 세부사항을 하나하나 파고들면 감상이 꽤 길어지겠지만 여기에서는 요점만 간단하게 잡아 볼까 합니다. 사실 이 책의 요점은 매우 간단합니다: "문명 간의 불평등은 왜 일어났는가?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여러 민족과 국가 간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어느 민족이 어느 민족보다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처음 거주하기 시작했던 대륙과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를 하느라고 700페이지나 들였지요. (엄밀하게 말하면 600페이지 정도. 592p에 에필로그가 있고, 623p에 특별 증보면이 있으며, 674p부터는 추천사나 옮긴이의 글, 참고 문헌이나 색인 등이 딸려 있습니다)
<총, 균, 쇠>가 이렇게 두꺼운 것에는 이유가 있는데, 저 주장이 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세계 각 지역의 예를 하나하나 들어가며 '내 말은 틀리지 않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예를 들 때마다 했던 말을 또 반복합니다. 초반은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중반부 넘어가면서는 좀 진절머리가 나서 속독으로 후딱 읽었습니다. 그래서 중반까지 읽는 데 하루가 걸렸지만 중반부턴 5시간도 안 걸렸습니다. (저 '하루가 걸렸다'는 말은 모두 합쳐 보면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집중이 안 되었던 터라 기간상으로는 두 주가 걸렸습니다) 하려고만 한다면 이 책은 반으로 줄여도 충분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남을 텐데 이렇게 두껍다는 이야기는, 제가 볼 때는 아마 서구 사회에서는 인종간에 우열이 있다는 관념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 반증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살고 황인종인 저로서는 인종간에 우열이 있다는 것을 애당초 받아들이지 않으니 예를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들지 않아도 금방 납득하지만, 저 쪽에서는 이 정도로 해 두지 않으면 안 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대체적으로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은 이러한 것들입니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인구가 밀집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한데 그건 식량 생산을 수렵채집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농경생산을 하는 겁니다. 농경생산을 해야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이 가능해 무거운 짐이 될 만한 물건도 만들 수 있으며, 식량에 여분이 생겨 특별 기능자를 만들 수 있고, 인구 밀도가 높아지고 모르는 사람이 많아지므로 중재자가 될 만한 권위자의 탄생이 나타나며, 고도 발전에 따라 다른 사회를 집어삼키고 그 크기를 키울 수 있습니다. 족장 사회 - 추장 사회 - 국가로의 고리는 여기에서 나오죠. 반면 수렵채집 사회는 이동이 잦으며 식량에 여분이 생기는 일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사회가 고도화되기 어렵죠.
그렇다면 왜 농경생산을 하지 않고 수렵채집을 고집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우리 기준으로만 농경생산을 생각하기 때문인데, 초기의 농경사회는 수렵채집에 비해 반드시 효율이 좋다고만은 할 수 없었습니다. 기술이 전승되고 발전하며 종자도 점차 개량시켰으므로 지금이야 농경이 먹거리가 풍부하지만, 초창기에는 들이는 힘에 비해 얻는 것이 꼭 수렵채집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었다는 점이죠. 게다가 이것 또한 필요 조건이 있는데, 실제로 작물화할 수 있는 식물도 대륙마다 달랐기 때문에 어떤 지역에선 다양했으나 어떤 지역에선 거의 없었으며 기후에 따라 잘 자라는 곳과 그렇지 못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북극의 이누이트를 예를 들어봅시다. 거기에선 농경생산을 하고 싶어도 못 하므로 수렵채집밖에 없습니다)
일단 사회가 고도화되기 시작하면 인구 밀도가 높아지며, 무언가 독특한 것들을 발견/발명해내는 사람도 많아집니다. 실제로는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인 것이 아니라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라,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필요를 찾아내는 법이죠. 당장 우리들도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 '그게 꼭 필요한가?'하다가 쓰다 보면 편리함을 알게 되며 그게 없으면 불편해집니다. 예전에도 마찬가지라 불편하다고 기술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사실 기술이 나오기 전엔 그게 불편한 줄도 모르는 겁니다), 살아가기 힘든 사회에서 신기술이 나와 혁신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굶어죽을 걱정은 없는 사회여야 기술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 연유로 기술 고도화는 농경생산이 시작된 사회에서 나타났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가축인데, 동물을 길들여 쓸모에 따라 사용하는 겁니다. 그러나 동물의 가축화에도 조건이 있어서 아무 동물이나 가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이 가능한 동물들 또한 대륙마다 달랐습니다. 해서 동물 · 식물의 가축화 · 작물화는 인간 사회에 큰 변혁을 가져다주었고, 그 요소들이 조합됨으로 인해 기술에 큰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동물의 가축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이 그들의 질병이 인간에게 전해지면서 새로운 병균이 탄생했다는 점인데, 이 병균의 존재가 후에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침략할 때 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는 무기로 학살되는 것보다도 오히려 병균에 의해 더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것이죠. 스페인인들의 잉카 점령 때에 그러했고, 북아메리카의 경우엔 95%의 원주민이 이 질병으로 죽어갔다고 할 정도입니다. 제목인 <총, 균, 쇠>의 균이 여기에 해당됩니다만, 실제로 이 책에서 총이나 쇠의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총이나 쇠는 어떻게 설명하나 기대했는데 별 말 없더군요. 가축화에서 이어진 균 정도나 좀 비중이 있었으니, 굳이 이 책의 중심 소재를 말하라면 작물, 가축, 그리고 균 ···정도로 압축해도 좋습니다.
가축화 · 작물화가 된 곳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이것은 꼭 자신이 시작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곳에서 먼저 시작되었다면 받아들일 수도 있었죠. (엄밀히 말하면 받아들였다기보다, 가축화 · 작물화를 먼저 효율적으로 성공해 인구 팽창을 한 농경민이 넘어와 발달하지 못한 그곳의 원주민을 제압하고 자신들이 그 땅을 차지했다고 보는 쪽이 빠릅니다. 그리하여 저 쪽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원주민도 신문물을 받아들이면 원주민 또한 나름대로 가축화 · 작물화에 성공하는 것이죠. 본래 말이라는 가축을 몰랐던 인디언이 19세기에는 기마 민족으로 이름을 날렸던 것이 그 한 예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라시아가 다른 대륙에 비해 고도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대륙의 형태를 보면, 아메리카 대륙은 남북 쪽으로 더 길고 아프리카도 그러한데 유라시아는 동서쪽으로 깁니다. 말인즉슨 동위도에 존재한다는 소리로, '같은 기후'이기 때문에 이쪽에서 가축화 · 작물화된 동식물이 전달되기에 더 좋다는 소리입니다. 침략자들이 자신의 문물을 가져갔건 원주민들이 차용해갔건간에, 전해지기 훨씬 좋았다는 소리이죠. 그러므로 유라시아의 팽창이 다른 대륙보다 압도적으로 빨랐으며 이것이 이후 유럽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아시아를 정복한 원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유라시아였고 훨씬 문물의 발달이 빨랐던 중국의 경우에는 대륙 내에 지형상 방어막이 없어 대륙 내 통일을 간단히 이루었는데, 지형이 험준해 통일이 힘들어 수십 수백의 국가가 난립한 유럽과 대조가 됩니다. 물론 더 거대한 국가인 중국 쪽이 하려고만 한다면 훨씬 빠른 기술 발달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실제로 한동안 그러했습니다만, 단일 국가에는 하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지배자가 어리석으면 기술 발달이 저하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유럽은 워낙 국가가 많았으므로 경쟁이 심했고 어떤 곳에서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면 곧 도태되기 십상이었습니다. 이 점이 유럽과 중국의 차이로, (아시아에 중국만 있는 건 아닙니다만 중국만 언급하더군요. 뭐 그리 틀린 말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는 점이 슬픕니다만···) 초반에는 유럽을 압도했던 중국이 결국 서구에 침략되고 만 원인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초기에 발전은 좋았으나 대륙의 축이 세로로 더 길어서 문물 전달이 어려웠다는 점에서 탈락이고 아메리카도 대륙 축이 세로로 깁니다. 교류가 힘들면 발전이 어렵죠. 오스트레일리아는 엘니뇨 현상으로 환경 자체가 뒤죽박죽이라 농경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대륙이라, 현대에 와서도 안정적인 농경은 불가능하다시피 합니다.
대강 이런 소리를 하는 책입니다. 물론 인간 사회는 상당히 복잡한 것이라 저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으며 변수도 상당합니다만 기본적인 라인을 깔아 준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더군요. 저자 자신의 말대로 이런 내용들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선 모든 학문 분야에 상당한 조예를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자신은 여러 가지를 배웠고 파악하며 경험했으므로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만, 저로서는 일단 이 사람이 진화생물학자이며 무신론자(일 것이 뻔하)고, 종교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점에서 점수를 깎았습니다. 어쨌거나 이런 책이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방향 제시이지 깊이 있는 연구는 되기 어렵습니다. (수준이 낮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가이드라인으로만 생각하기에는 예가 워낙 많아 어지간히 두껍습니다만, 어떤 의미에서는 잡학을 키우는 의미에서도 쓸모 있는 책이었습니다. 대체적인 논지는 일단 위에서 다 설명해 두었습니다만, 정말 그런가, 그리고 어떤 예를 어떻게 들 수 있는가가 궁금하신 분은 한 번쯤 보셔도 좋겠습니다.
아 드디어 다 읽었다. 이제 딴 책 좀 읽어야지.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