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비룡소
※ 스포일러 있습니다- 라기보다 전체 이야기를 한 번에 모두 간추려 버립니다. 읽으실 분은 주의하세요.
예전에 한 문답 중 <경험 문답>이란 것에 "중학교 올라와서 유아용 동화책 보고 재밌다고 생각해봤다." 라는 경험이 있었냐를 묻는 문항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답했지요. "지금 봐도 재미있다. 유아용 동화라고 무시하지 마라. 삶이 녹아 들어 있다." 라고. 저런 문항이 나온다는 것은 보통 일반적으로 '동화는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기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동화를 쓰는 사람은 어른이며, 그러므로 그 어른의 경험이나 사고관이 어떤 방식으로든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화라고 하여 대충 술 먹고 발로 쓰거나 하지 않습니다. 한 명의 작가가 고심하여 만들어낸 내용과 문장이며, 그것을 유치하다고 말하는 것은 편견과 교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각대장 존>은, 동화가 얼마든지 심오해질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좋은 근거가 될 것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간단하며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림책이니까요. 읽는 게 빠른 분이라면 이삼 분 안에 충분히 읽고도 남을 겁니다. 이야기를 간추려 보면 이런 건데,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서지만 학교에 가는 도중 번번이 일이 생기고, (하수구에서 악어 한 마리가 불쑥 나와 책가방을 덥석 문다거나, 덤불에서 사자 한 마리가 나와 바지를 문다거나, 어마어마한 파도가 덥친다거나) 그래서 학교에 지각하여 그 이야기를 하지만 선생님은 믿지 않고 벌을 줍니다. "이 동네 하수구에 악어 같은 건 살지 않아! 넌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 또,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300번을 써야 한다. 알겠지?" 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이 그림책의 속표지는 그 300번 쓴 글이 빽빽하게 채워진 것처럼 연출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게 뭘까 싶지만 읽고 나서 다시 보면 씁쓸해집니다) 그렇게 세 번을 반복하고 나자 학교에 가는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이, 학교에 가자 선생님이 털북숭이 고릴라에게 붙들려 천장에 매달려 있고 선생님이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자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답합니다: "이 동네 천장에 고릴라 같은 건 살지 않아요, 선생님." 그러고 돌아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다음날도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 는 문장으로 끝이 납니다.
내용만 봐도 느껴지시겠지만 이 이야기를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단순히 학교에 가기 싫어하던 아이가 거짓말을 안 하게 되고 학교에 잘 나가게 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세계를 갖고 있던 한 명의 인간이 사회로부터의 억압에 굴하여 개성을 잃어버리고 모두가 보는 것만을 보는 보통 사람으로 타락했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으로만 판단하고 구속하려 했던 선생님이 나중에 똑같은 방법으로 당하는 것을 보며 상대 존중의 의미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동화를 읽는 사람의 세계관이나 사고가 어떠하냐에 따라 해석은 천차만별이 되겠죠. 텍스트는 간단하되 그것을 읽고 할 수 있는 생각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좋은 글이죠.
동화책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고 즐길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보다 발달된 지성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성인들에게도 얼마든지 즐겁고 재미있을 책입니다. 대형 서점에 가 보실 기회가 있다면 가끔은 유아 코너에도 들리셔서 동화책을 넘겨 보시기 바랍니다. 잠깐 누군가를 기다리며 읽어도 충분히 다 읽을 수 있을 만큼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할 책은 절대 아니지요. 유쾌한 환상의 세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비룡소
※ 스포일러 있습니다- 라기보다 전체 이야기를 한 번에 모두 간추려 버립니다. 읽으실 분은 주의하세요.
예전에 한 문답 중 <경험 문답>이란 것에 "중학교 올라와서 유아용 동화책 보고 재밌다고 생각해봤다." 라는 경험이 있었냐를 묻는 문항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답했지요. "지금 봐도 재미있다. 유아용 동화라고 무시하지 마라. 삶이 녹아 들어 있다." 라고. 저런 문항이 나온다는 것은 보통 일반적으로 '동화는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기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동화를 쓰는 사람은 어른이며, 그러므로 그 어른의 경험이나 사고관이 어떤 방식으로든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화라고 하여 대충 술 먹고 발로 쓰거나 하지 않습니다. 한 명의 작가가 고심하여 만들어낸 내용과 문장이며, 그것을 유치하다고 말하는 것은 편견과 교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각대장 존>은, 동화가 얼마든지 심오해질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좋은 근거가 될 것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간단하며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림책이니까요. 읽는 게 빠른 분이라면 이삼 분 안에 충분히 읽고도 남을 겁니다. 이야기를 간추려 보면 이런 건데,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서지만 학교에 가는 도중 번번이 일이 생기고, (하수구에서 악어 한 마리가 불쑥 나와 책가방을 덥석 문다거나, 덤불에서 사자 한 마리가 나와 바지를 문다거나, 어마어마한 파도가 덥친다거나) 그래서 학교에 지각하여 그 이야기를 하지만 선생님은 믿지 않고 벌을 줍니다. "이 동네 하수구에 악어 같은 건 살지 않아! 넌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 또,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300번을 써야 한다. 알겠지?" 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이 그림책의 속표지는 그 300번 쓴 글이 빽빽하게 채워진 것처럼 연출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게 뭘까 싶지만 읽고 나서 다시 보면 씁쓸해집니다) 그렇게 세 번을 반복하고 나자 학교에 가는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이, 학교에 가자 선생님이 털북숭이 고릴라에게 붙들려 천장에 매달려 있고 선생님이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자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답합니다: "이 동네 천장에 고릴라 같은 건 살지 않아요, 선생님." 그러고 돌아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다음날도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 는 문장으로 끝이 납니다.
내용만 봐도 느껴지시겠지만 이 이야기를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단순히 학교에 가기 싫어하던 아이가 거짓말을 안 하게 되고 학교에 잘 나가게 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세계를 갖고 있던 한 명의 인간이 사회로부터의 억압에 굴하여 개성을 잃어버리고 모두가 보는 것만을 보는 보통 사람으로 타락했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으로만 판단하고 구속하려 했던 선생님이 나중에 똑같은 방법으로 당하는 것을 보며 상대 존중의 의미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동화를 읽는 사람의 세계관이나 사고가 어떠하냐에 따라 해석은 천차만별이 되겠죠. 텍스트는 간단하되 그것을 읽고 할 수 있는 생각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좋은 글이죠.
동화책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고 즐길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보다 발달된 지성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성인들에게도 얼마든지 즐겁고 재미있을 책입니다. 대형 서점에 가 보실 기회가 있다면 가끔은 유아 코너에도 들리셔서 동화책을 넘겨 보시기 바랍니다. 잠깐 누군가를 기다리며 읽어도 충분히 다 읽을 수 있을 만큼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할 책은 절대 아니지요. 유쾌한 환상의 세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