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윤정 옮김/손안의책(사철나무)
..우선 감상을 말하기 전에 한 가지부터 먼저 투덜대 봐야겠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쓸데없이 강한 힌트를 책을 읽기도 전에 받고 말았습니다. 애당초 이 글에 대한 감상은 PaleSara의 이글루에서 보았는데, 물론 그 감상에서 PaleSara는 ○○○라는 식으로 해당 인물명을 가려 놓아서 그것이 아주 강한 힌트는 아니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상글의 리플에서도 스포일러라고 할 만한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뒤통수를 맞은 건 그 PaleSara가 이후 감상한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감상글에 달린 리플이었습니다. l모 님이 다신 리플, "사실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도 반전의 요소를 지녔다고 봐. 범인은 결국 임원 중에 있지 않았잖아. 그런데 처음부터 있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말이야" (긁으면 보입니다. 책 이미 읽으신 분만 보세요 ㄱ-) ..라는 한마디가 카운터를 날리더군요. 벚꽃.. 자체는 이미 읽었기 때문에 스포일러 걱정은 없겠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감상을 보았는데 전혀 엉뚱한 소설의 내용을 언급해 버릴 줄이야. ..물론 이 소설은 미스테리어스한 연출을 채택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성장소설이기 때문에 미스테리가 깨져도 즐길 수는 있는 글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중요한 한 축을 이렇게 간단하게 부숴 놓으면 나는 어쩌란 말이냐. (뒷목 잡고 쓰러진다)
기본 축을 이루는 건 집단 실종이라는 미스테리입니다. 한 인간의 정신 안에 다른 사람들이 갇힐 수 있다는 가설을 전제로, 일단의 인물들이 정신세계 안에 갇힌 거죠. 기본 줄거리를 보여주기로는 역시 책 뒤의 소개가 가장 무난하다 싶으니까, 그걸 인용하겠습니다.
자, 이 소설에서 보여주려는 건 사실 미스테리라기보다는 여기 있는 이 8명의 각각의 이야기입니다. 고3이라면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있고 여태까지 겪어온 이런저런 아픔도 있고 정신적으로도 아직 꽤 불안정할 시기죠. 이 소설의 작가가 1980년생이라는 것과 이 작품이 2004년작이라는 걸 보면, 저 나이대 주인공들의 고뇌와 성장이 표현되는 작품을 써내기 아주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이 소설은 전 3권이나 됩니다만 그 대부분은 미스테리 전개보다는 오히려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할애됩니다. 2권째에서는 미스테리의 별다른 진전이랄 건 없어서 좀 루즈하다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지요. 하지만 청춘소설이라고 생각한다면 크게 무리는 없기도 합니다.
<미스테리>나 <이야기> 양쪽에서 중심이 되는 소재는 역시 <자살>입니다. 이 중의 누군가가 자살한 것인가? 그렇다면 왜 자살한 것일까? 혹시 자살한 것은 내가 아닐까?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 누군가가 자살했다면, 우리는 어째서 별 충격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 왔던 것일까. 친한 친구가 죽었는데도 죄책감 없이 웃고 떠들며 평소처럼 지낼 수 있었을까. 그 친구의 존재를 잊기에 두 달은 너무 빠르지 않은가. -대충 이런 내용이나, 또는 다소 귀엽거나 혹은 다소 심각한 고민거리들이 각각의 회상으로 풀어져 나갑니다. 요컨대 <학교에 갇혔다>는 것은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에게 각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또한 그렇게 과거를 되돌아보고 <죄책감>를 살려내는 것이 이 일을 만든 사람의 의도이기도 하고요.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들에 도덕적으로 틀린 말은 없습니다. 아니 틀린 말이 없다기보다 정말이지 <도덕적>입니다. 다소 감성적인 면도 있습니다만, 저 나이대의 주인공들의 생각이라면 이 정도가 걸맞겠지요. 친구가 자살했다는 충격을 어떻게 그리 쉽게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뭐, 맞는 말이고, 사람을 몰아붙이면 안 된다는 것도, 죄책감이 없는 것도 곤란하다는 것도 맞는 말이고, 그렇지만 역시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믿는 것도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별로 불만은 없습니다만,
-해서 그런 이유로 그렇게까지 공감하면서는 읽지 않았습니다. 반쯤은 '음, 하긴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도 많지'라거나 '이게 통상적인 반응인가?' 하면서 읽었죠. 이건 재미없다거나 했다는 게 아니라, 재미있기는 했지만 소설 자체가 전반적으로 너무 감성적이기 때문에 거리감을 느꼈다는 뜻입니다. 이게 너무 감성적인 건지 내가 너무 메마른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위에서 말했듯 (주인공들의 나이인) 고3에 이런 반응이면 적절하지 라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뭐, 캐릭터들 자체는 마음에 들더군요. 워낙 제가 하드보일드해서 (...)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긴 했고 조금 루즈한 느낌도 들어서, '더 압축할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한 번쯤 읽어 보아도 괜찮은 소설이라고 봅니다. 다만 사서 보기에 3권은 좀 많다 싶군요. 레이아웃을 바꾸면 2권으로도 충분히 나올 수 있었을 텐데요.
덧. PaleSara도 궁금해했던 부분이긴 한데, 등장인물 츠지무라 미즈키는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와 동명이 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 때문에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상당히 방해받았습니다. 작가가 무슨 의도로 이렇게 만든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이 작가의 감성은 저하고는 좀 다르다는 걸 이 부분에서도 느꼈습니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윤정 옮김/손안의책(사철나무)
..우선 감상을 말하기 전에 한 가지부터 먼저 투덜대 봐야겠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쓸데없이 강한 힌트를 책을 읽기도 전에 받고 말았습니다. 애당초 이 글에 대한 감상은 PaleSara의 이글루에서 보았는데, 물론 그 감상에서 PaleSara는 ○○○라는 식으로 해당 인물명을 가려 놓아서 그것이 아주 강한 힌트는 아니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상글의 리플에서도 스포일러라고 할 만한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뒤통수를 맞은 건 그 PaleSara가 이후 감상한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감상글에 달린 리플이었습니다. l모 님이 다신 리플, "사실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도 반전의 요소를 지녔다고 봐. 범인은 결국 임원 중에 있지 않았잖아. 그런데 처음부터 있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말이야" (긁으면 보입니다. 책 이미 읽으신 분만 보세요 ㄱ-) ..라는 한마디가 카운터를 날리더군요. 벚꽃.. 자체는 이미 읽었기 때문에 스포일러 걱정은 없겠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감상을 보았는데 전혀 엉뚱한 소설의 내용을 언급해 버릴 줄이야. ..물론 이 소설은 미스테리어스한 연출을 채택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성장소설이기 때문에 미스테리가 깨져도 즐길 수는 있는 글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중요한 한 축을 이렇게 간단하게 부숴 놓으면 나는 어쩌란 말이냐. (뒷목 잡고 쓰러진다)
기본 축을 이루는 건 집단 실종이라는 미스테리입니다. 한 인간의 정신 안에 다른 사람들이 갇힐 수 있다는 가설을 전제로, 일단의 인물들이 정신세계 안에 갇힌 거죠. 기본 줄거리를 보여주기로는 역시 책 뒤의 소개가 가장 무난하다 싶으니까, 그걸 인용하겠습니다.
눈이 내리는 어떤 겨울날. 수험 준비가 한창인 3학년 2반 학생들은 평소처럼 등교를 한다. 하지만 그날 학교에 온 사람은 평소에 사이가 좋았던 여덟 사람 뿐. 수업 시작 종도 울리지 않고 여덟 명 외에는 인기척도 없다. 눈이 많이 와서 휴교가 된 것일까. 돌아가려던 학생들은 학교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창문도 열리지 않고, 심지어는 깨지지도 않는다. 휴대폰은 불통, 그리고 어느 순간 학교 안의 모든 시계가 5시 53분을 가리키며 멈춘다. 혼란에 빠지는 학생들. 갇힌 거나 다름없는 텅빈 학교 안에서 그들 중 한 사람이 두 달 전에 자살한 급우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그들은 이내 깨닫는다. 자신들 중 어느 누구도 자살한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과, 지금 이곳에 있는 자신들이 원래 7명 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 이 소설에서 보여주려는 건 사실 미스테리라기보다는 여기 있는 이 8명의 각각의 이야기입니다. 고3이라면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있고 여태까지 겪어온 이런저런 아픔도 있고 정신적으로도 아직 꽤 불안정할 시기죠. 이 소설의 작가가 1980년생이라는 것과 이 작품이 2004년작이라는 걸 보면, 저 나이대 주인공들의 고뇌와 성장이 표현되는 작품을 써내기 아주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이 소설은 전 3권이나 됩니다만 그 대부분은 미스테리 전개보다는 오히려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할애됩니다. 2권째에서는 미스테리의 별다른 진전이랄 건 없어서 좀 루즈하다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지요. 하지만 청춘소설이라고 생각한다면 크게 무리는 없기도 합니다.
<미스테리>나 <이야기> 양쪽에서 중심이 되는 소재는 역시 <자살>입니다. 이 중의 누군가가 자살한 것인가? 그렇다면 왜 자살한 것일까? 혹시 자살한 것은 내가 아닐까?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 누군가가 자살했다면, 우리는 어째서 별 충격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 왔던 것일까. 친한 친구가 죽었는데도 죄책감 없이 웃고 떠들며 평소처럼 지낼 수 있었을까. 그 친구의 존재를 잊기에 두 달은 너무 빠르지 않은가. -대충 이런 내용이나, 또는 다소 귀엽거나 혹은 다소 심각한 고민거리들이 각각의 회상으로 풀어져 나갑니다. 요컨대 <학교에 갇혔다>는 것은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에게 각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또한 그렇게 과거를 되돌아보고 <죄책감>를 살려내는 것이 이 일을 만든 사람의 의도이기도 하고요.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들에 도덕적으로 틀린 말은 없습니다. 아니 틀린 말이 없다기보다 정말이지 <도덕적>입니다. 다소 감성적인 면도 있습니다만, 저 나이대의 주인공들의 생각이라면 이 정도가 걸맞겠지요. 친구가 자살했다는 충격을 어떻게 그리 쉽게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뭐, 맞는 말이고, 사람을 몰아붙이면 안 된다는 것도, 죄책감이 없는 것도 곤란하다는 것도 맞는 말이고, 그렇지만 역시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믿는 것도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별로 불만은 없습니다만,
-해서 그런 이유로 그렇게까지 공감하면서는 읽지 않았습니다. 반쯤은 '음, 하긴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도 많지'라거나 '이게 통상적인 반응인가?' 하면서 읽었죠. 이건 재미없다거나 했다는 게 아니라, 재미있기는 했지만 소설 자체가 전반적으로 너무 감성적이기 때문에 거리감을 느꼈다는 뜻입니다. 이게 너무 감성적인 건지 내가 너무 메마른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위에서 말했듯 (주인공들의 나이인) 고3에 이런 반응이면 적절하지 라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뭐, 캐릭터들 자체는 마음에 들더군요. 워낙 제가 하드보일드해서 (...)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긴 했고 조금 루즈한 느낌도 들어서, '더 압축할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한 번쯤 읽어 보아도 괜찮은 소설이라고 봅니다. 다만 사서 보기에 3권은 좀 많다 싶군요. 레이아웃을 바꾸면 2권으로도 충분히 나올 수 있었을 텐데요.
덧. PaleSara도 궁금해했던 부분이긴 한데, 등장인물 츠지무라 미즈키는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와 동명이 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 때문에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상당히 방해받았습니다. 작가가 무슨 의도로 이렇게 만든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이 작가의 감성은 저하고는 좀 다르다는 걸 이 부분에서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