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십 분이 되지 않아 여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상업 도시라는 특성상 빌런트 시에는 유동 인구가 많다. 멀리서 물건을 팔러 온 사람 뿐 아니라 멀리서 물건을 사러 온 사람도 많았으므로 그들을 상대로 할 여관업의 번창은 불가결한 일이었다. (식당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 가지 말로 여관이라고는 해도 장소와 편의성,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에 따라 급이 여러 가지로 나뉘었다. 내가 접어든 여관 골목은 그 중 최하급이었고, 길바닥에서 자는 것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의 잠자리를 제공하는 정도의 여관들이 가득 들어찬 곳이었다. 낡고 허름한 건물과 다 떨어진 칠, 경첩이 닳을 대로 닳아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는 문 등이 이 골목의 여관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단어였다.

한낮이었으므로 호객 행위를 하는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이 골목은 한산했고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 서넛이 내 옆을 스쳐지나갔을 뿐이었다. 아이들 특유의 꺅꺅대는 비명이 골목에 울려퍼졌고 흐릿하게 먼지가 피어올랐다. 찾는 건물 앞까지 도착했을 즈음에는 허리께까지 피어올랐던 먼지도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아이들의 뜀박질 소리도 갈림길 저 편에서 들려왔다.

이 주위의 다른 여관과 마찬가지로 쇠락한 이층짜리 여관이었다. 벽의 회칠은 적어도 두 번 덧칠했음이 떨어져 나간 부분을 통해 엿보였다. 나무로 된 창문은 닫혔거나 열렸지만 대체로는 열려 있었다. 안은 어두워서 들여다 보이지 않았다. 나무 문에 달린 금속제 손잡이는 햇볕에 달구어져 따뜻했다. 문은 닫혀 있었으나 잠겨 있지는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건물 안에 갇힌 공기 특유의 퀴퀴한 향이 나를 반겼다. 바깥 공기보다는 시원했다. 정면에는 사무를 보기 적절해 보이는 책상과 오래 앉아 있기에 편안하면서도 쉽게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은 의자가 있었다.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이 책상의 양옆으로 복도와 그 복도에 딸린 방문이 있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오른편에 붙었다. 아직 2층으로 올라갈 필요는 없었다.

복도에 붙은 방문이 모두 같은 형태는 아니었다. 성인 남성의 시선이 닿을 만한 위치에 숫자가 달린 명패가 붙었으나 그렇지 않은 문도 하나 있었다. 그 명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관리인실’.

나는 그 문을 두드렸다. 대답은 없었다.

한 번 더 두드릴까 망설이던 차에 왼편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자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에서 주인이 나오고 있었다. 머리가 부석했으나 당장 잠을 보충해야 할 만큼 피곤해 보이지는 않았다. 관리인실 앞에 선 나를 보더니 반갑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그저께 그분이로군요. 또 로처 씨를 보러 오셨습니까?”

날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싹싹한 태도가 몸에 붙은 남자였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확인이라고요?”

주인이 되물었다. 그는 내게서 심상찮은 기운을 감지한 듯 나를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그러나 그는 당장 쓰러질 만큼 수면이 모자라지는 않았어도 내게서 무언가를 찾아낼 만큼 정신이 맑지도 못했다. 이내 그는 포기하고 물었다.

“무슨 일이죠?”
“로처 씨가 죽었습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내 말을 그는 잠시간 이해하지 못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가, 눈썹을 약간 찌푸리더니, 이윽고 입을 벌렸다. 질 나쁜 농담을 들은 표정으로 그가 외쳤다.

“죽었다고요?”
“당신은 전혀 모르셨습니까?”

나는 고집스럽게 물었다. 주인은 내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이 이야기를 전에 들은 적이 전혀 없는 사람의 표정을 지었다.

“죽었단 말인가요? 아니, 어떻게? 언제?”
“당신이 나보다는 뭔가를 더 알 걸로 기대하고 왔는데요.”
“난 아무 것도 몰라요. 정말로 로처 씨가 죽었습니까? 어디서, 어떻게? 그 사람 갑자기 죽을 만큼 약해 보이진 않았는데.”

주인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연출한 표정이 아니었다. 물론 그는 어젯밤 자신은 이 여관에서 밤을 새웠으므로 로처의 죽음과는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필요 없는 말을 지껄이지도 않았다. 나는 이 중년 남자가 빈센트 로처의 죽음에 아무 관계도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약간 피곤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에 로처 씨가 하수구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간밤에 강도를 당했다고 보안관보는 생각하더군요.”
“오, 이런.”

주인은 기도문을 몇 마디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 사람이 간밤에 안 돌아왔었군. 난 또 어디서 뻗어 자고 있는 줄로만 생각했지.”
“어제 아예 없었습니까?”
“없었지요. 낮까지는 아마 있었겠지만, 사실 없었을 수도 있고, 아시다시피 그런 손님이란 있는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기 힘든 법이니까. 그제 당신이 데리고 와서 어제 낮까지 아마 골아떨어졌을 테고, 저녁쯤에 다시 술을 먹으러 나갔던가? 뭐 그랬던 거 같네요. 강도라니, 불쌍하게도.”

말을 마친 그가 손을 들어 검지로 쇄골을 긁었다. 문득 그에게도 생각이 떠올랐고, 그래서 그는 흥미를 담은 눈동자로 나를 보았다.

“그럼 당신은 관에서 나온 건가요?”
“비슷합니다. 보안관보 조수랄까요.”
“그래요. 그렇군요.”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태도가 바뀌지는 않았다. 사실 이미 충분히 친절했다. 다만 그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납득했고,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스스로 제의했다.

“그럼 그 사람의 방을 살펴보실 생각인가요?”
“그랬으면 좋겠군요.”

주인은 시민의식을 최대한 발휘해 방을 안내하려 했지만 나는 이미 로처의 방이 어디인지 알고 있으며 혼자 조용히 살펴보고 싶다는 말로 그를 떼냈다. 보수를 하지 않으면 조만간 두서너 군데는 부서질 것 같은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갔고 어렵지 않게 로처가 있던 방을 찾았다.

방문은 잠겨 있었으나 주인에게 받은 열쇠를 꽂아 돌리자 금세 열렸다. 여전히 작고 초라한 방이었다. 침대 위에 침구가 흐트러져 있었고 빈 위스키 병이 바닥 한켠에 쓰러져 있었으나 그 뿐이었다. 격투의 흔적이나 사람을 끌어낸 자국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은 안에서 빗장이 걸린 채 잠겨 있었으며 문도 문제가 없었다. 이 방은 아주 깨끗했다. 일 분 안에 청소를 마치고 다음 손님을 받을 수 있는 방이었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가 주인에게 열쇠를 돌려 주었다. 주인의 눈빛이 내게 대답을 촉구했고 나는 간단히 답했다.

“아주 깨끗하더군요. 로처 씨가 강도를 당한 건 이 안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당연하죠.”

주인은 안심했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는 자신도 2층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기색이었으나 나는 아직 그에게 묻고 싶은 일이 있었다.

“지금 이 여관에 묵는 사람은 얼마나 있습니까?”
“몇 사람 안 됩니다.”

주인은 어색한 어조로 답했다. 처음으로 그가 머뭇거렸다. 나는 권위를 가진 남자가 자신에게 무언가 숨기는 사람을 바라볼 때 사용할 법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책상을 향해 걸어갔다. 서랍을 열더니 명부를 꺼내 펼치고 나에게 보라고 건네 주었다.

명부에 사용된 종이는 질이 아주 거칠었다. 이름과 숙박비 지출 여부만 적혀 있었는데 종종 펜이 걸렸는지 획이 끊어지는 일도 있었다. 나는 최근 목록에서 빈센트 로처의 이름을 찾아냈다. 그 위로는 이름이 적혀 있었으나 그 아래로는 아무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현재 시점에서는 그가 이 여관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로처 씨보다 먼저 왔던 사람들은 지금은 없습니까?”

명부를 돌려주며 내가 묻자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요 한 주간 있었던 손님이라고는 로처 씨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더 묵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어쨌거나 우리 여관은 강도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걸 잘 아셨겠지요? 잘못 이름이 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주인의 걱정에는 일리가 있었다. 나는 그러마고 답했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물었다.

“로처 씨를 찾아온 손님은 없었습니까? 아니면 이 여관에서 묵지는 않았더라도 이 여관에 들어와 로처 씨를 보았다거나 한 사람도 괜찮습니다. 이 여관의 이름은 빼 드릴 테니 조금이라도 생각나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주인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한순간 그의 오므려진 미간과 찡그려진 눈동자에서 무엇인가 떠오르는 듯도 싶었으나 그는 이내 고개를 털어버렸다. 그는 더 이상 아무 것도 관여하고 싶지 않은 남자의 목소리로 답했다.

“없습니다, 아무 것도.”
“아무 것도?”
“네, 아무 것도.”

그에게 더 캐물어도 나올 것은 없었다. 나는 몸을 돌렸고, 혹시라도 생각나는 일이 있다면 5번가의 보안관 사무소를 찾아와 달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답하고 문을 닫았다. 안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발소리를 보아 곧바로 2층으로 가는 듯 했다.



하수구에 되돌아갔을 무렵에는 이미 로처 부인이 도착해서 시체의 얼굴을 확인하고 있었다. 여관으로 향했을 때보다도 더 수가 많아진 군중 사이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자 텔포드 보안관보가 나를 보고 가볍게 인사했다. 나는 그 옆으로 다가갔고 시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를 눈짓했다. 텔포드가 설명했다.

“캐럴린 로처 씨입니다. 악기상을 했다는 빈센트 로처의 부인이라더군요. 이야기가 맞아떨어지기에 얼굴을 확인해 보라고 했어요.”

그 말을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잿빛이 약간 섞인 금발을 허리까지 길렀고 잘 다듬어진 눈썹과 하얀 피부, 길다란 팔다리를 지닌 전형적인 미인이었다. 수려한 이마와 매끈한 콧날을 가졌으며 입술은 아주 약간 두꺼웠다. 회색과 하늘색을 기본으로 무늬를 넣은 원피스를 입었는데 일반 시민이 입기에는 충분히 고급스러웠다. 왼손 약지에는 탁한 은색의 반지가 보였다. 텔포드에게로 다가온 그녀가 사슴을 생각나게 하는 물빛 눈을 적시며 말했다.

“그이가 맞아요. 어디를 갔나 했더니 이런 곳에서…….”

그녀는 채 스물 다섯도 안 되어 보였다. 연분홍으로 선이 들어간 백색 손수건을 꺼내어 눈을 닦았으나 닦아낼 눈물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웠다. 마치 지금 해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갑작스레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된 사람치고는 매우 침착했다. 천천히 그녀가 말했다.

“전혀 짐작하지 못한 건 아니었어요. 사업이 실패한 뒤 이이는 너무도 크게 좌절했고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사람처럼 굴었으니까요. 내 얼굴을 보고 있는 것조차 힘들었던 것 같았고 지난 주에 말도 없이 나가 버렸죠. 저는 남편을 찾았지만, 아실 테죠, 이 도시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건 사막에서 모래를 찾는 것만큼 힘든 일이에요. 그래도 어떻게든 소식이 들려올 거라곤 생각했지만, 아, 이런 형태로 일이 드러나고 보니 조금은 짐작했다고 해도 마음이 너무나 괴롭네요.”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을 막지 못해 몹시 유감입니다.”

텔포드가 재빠르게 애도를 표했다. 캐럴린 로처는 조심스럽게, 그저 약간의 신호가 될 정도로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안관보께 분노를 터뜨리는 건 온당치 못한 일이겠지요. 일이 이렇게 되었지만 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래요, 강도라고 했나요? 누가 그랬는지 알아내기는 어렵겠지요?”

보안관보는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답했다.

“전력을 다해 이 살인 사건을 수사하겠습니다.”
“솔직하게 진실을 말해 주세요. 이이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낼 수 있는가요? 살인자를 본 사람이 나타나거나 아니면 그 살인자의 행위를 멀리서라도 목격한 사람이 나타날 확률이 있을까요?”
“찾아내겠습니다.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텔포드 보안관보는 로처 부인이 오기 전보다 두 배는 의욕에 넘쳤고 세 배는 믿음직스러워졌다. 그는 마치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만 수십 건 이상 해결한 경험이 있는 노련한 보안관처럼 보였다. 불행히도 로처 부인은 현실적이었다. 그녀는 나를 돌아보았다.

“당신도 보안관보인가요?”
“프리랜서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로처 씨를 죽인 이가 누구인지 찾고 있지요. 이틀 전에 로처 씨와 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로처 부인은 내게서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듯이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맑았고 피부는 백옥같았다. 나는 무례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로처 부인이 나지막히 말했다.

“거짓말을 할 분처럼은 보이지 않는군요.”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면 곤란에 처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저를 불신하라는 뜻은 아닙니다만.”
“빈센트는 당신을 좋아했겠군요. 당신과 그이가 정말로 친구였다면요. 하지만 당신이 그런 것으로 제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겠지요.”

나는 살짝만 미소지었다. 로처 부인이 무언가 더 말하려 할 때쯤 텔포드가 끼어들었다.

“수레가 도착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수레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마가 훤칠하게 벗어진 중년 남자가 이끄는 대로 고동색 노새가 더운 듯이 입을 헤벌리고 수레를 끌어 하수구로 내려왔다. 기름칠이 덜 된 듯 수레바퀴가 간혹 새된 소리를 질렀으나 귀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하수구까지 내려온 남자가 쓰러진 로처를 발견했고 텔포드에게 물었다.

“이 사람입니까? 보안관보님.”

텔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중년 남자는 장의사였으며, 굳이 장의사를 부르러 갈 것도 없이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찾아온 사람 중 하나였다. 수레까지 가져온 장의사는 이 남자 하나뿐이었으므로 이 사람이 선택되었다. 남자는 솜씨 좋게 빈센트 로처를 수레에 실었으며, 나와 텔포드가 거들었다. 시체 위에 천을 덮어 옆에서 들여다보지 못하게 한 다음 장의사가 물었다.

“이대로 가면 되겠습니까? 제 말은, 뭔가 아직 여기서 더 할 일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은지 묻는 것이지요. 그런 것이 없다면 이대로 모셔가겠습니다. 그런데, 가족분은 어디에?”

텔포드는 로처 부인을 소개했고, 장의사는 예의 바른 태도를 잃지 않으며 물었다.

“식 전까지 안치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저희 장의사에서 장례 전까지 모실 수도 있습니다. 약간의 금전을 받습니다만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으리라 자부합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맡길 테니까요.”

로처 부인의 목소리에서는 이 일로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투가 묻어났다. 장의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최고의 선택을 하신 거라며 몇 마디 더 늘어놓은 후 정중하게 노새를 이끌었다. 노새는 장의사만큼 정중하게 수레를 이끌지는 않았다.

그 뒤를 따르며 텔포드가 나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트로닉 씨? 혹시라도 로처 씨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려면 로처 부인과 대화를 해 보아야 할 것 같은데요.”

이 남자는 자신이 그 일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의 기대를 꺾는 것은 안된 일이었지만 나로서는 그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생각은 없었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일은 내가 하죠. 텔포드 씨는 이 사건의 목격자가 없었는지 그 쪽을 탐색해 주십시오. 아무래도 그런 일은 권한이 확실한 사람이 해야 옳을 테니까요.”
“과연 그렇군요.”

텔포드는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무심한 척을 하려 너무 애쓰지 않았다면 완벽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서 떨어져 로처 부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눈치가 좋은 편이었다.

“저이의 죽음에 이상함이 있었나요?”
“확연하게 드러난 중에서는 없습니다.”

내가 대답했고 그녀는 기묘하다는 듯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당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하수구로부터 거리 위로 완전히 올라갔고 군중들이 약간씩 물러서며 길을 비켜 주었다. 흥미가 사라진 사람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갔으나 새로 구경 오는 사람도 있었다. 빌런트 시에서 살인 사건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의 대화를 들을 만큼 가까이 와 있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로처 씨의 상처는 한 군데 뿐이었습니다. 목 뒤를 맞아 한 방에 간 거죠. 고통은 거의 없었거나, 아니면 의식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말이 로처 부인에게 그다지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고통스럽지 않게 죽었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녀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고,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이 살인자가 강도라면, 무척 솜씨 좋은 강도입니다.”
“무슨 뜻이지요?”
“후두부를 얻어맞아 일격에 쓰러진다는 일 자체는 흔하진 않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그로 인해 사람이 죽는 것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하지만 이 사건이 강도라는 데에는 조금 재고의 여지가 있겠지요.”
“텔포드 보안관보는 강도로 확신하는 모양이던데요.”
“저는 정말로 확신해도 좋을 때가 오기 전까지는 확신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사건에는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있습니다. 들어 보시겠습니까?”

로처 부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우리는 나란히 걸었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우리보다 너댓 걸음 정도 앞서 있는 수레를 바라보았다. 잔돌을 밟을 때마다 덜컹거리고 바퀴 이음매에서 신음소리를 내는 그 수레 안에 천에 가리워진 빈센트 로처의 시체가 있었다. 이윽고 로처 부인은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의 말이 제게 더 큰 고통을 줄 거라는 예감이 드는군요. 하지만 말해 줘요. 알아야 할 것이라면 알아야겠지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틀 전에 로처 씨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근래 그의 상태가 어땠는지 조금 압니다. 그는 깨어 있을 때면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잤습니다. 말하자면 정말 강도가 그를 노렸다면 그를 죽이지 않아도 간단히 털어갈 수 있었으리라는 겁니다. 제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도 사실 인사불성이었으니까요.”
“그것만으로는 의심의 근거가 희박하다고 생각되네요. 당신의 말이 옳을 수도 있지만, 강도를 당했을 때 빈센트가 제대로 깨어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은가요?”

그녀의 지적은 타당했다. 나는 그 의견을 긍정하며 말했다.

“물론 깬 상태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의문이 한 가지 남습니다. 로처 씨의 몸에 난 상처가 후두부의 멍 하나 뿐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긁힌 자국 하나 없었지요. 로처 씨를 죽인 사람이 누구든, 솜씨 좋게 뒤로 돌아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매끈한 둔기로 깔끔하게 쓰러뜨렸다는 이야깁니다. 부인께서는 격투를 모르실 것 같으니 설명드립니다만, 보통의 몽둥이로 후두부를 치면 긁힌 자국이 조금이라도 남습니다. 깨끗하게 충격만 전달시키는 것이 아니라 휘둘러서 긁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런 자국이 없다는 것은 이런 말이 됩니다: ‘매끈하게 잘 다듬은 둔기로, 제대로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에 돌아가 일격에 쓰러뜨렸다.’ 일반적으로 납득할 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정도의 기량이 있는 사람을 그냥 강도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뻔더러, 그런 기량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런 것이 가능할 만큼 로처 씨의 상태가 나빴다면 굳이 칠 것도 없기 때문이지요.”

내 이야기를 들을 수록 로처 부인의 얼굴이 우울해졌다. 그녀는 거의 침울하게 수레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고, 원망마저 섞어서 나를 돌아보았다.

“당신의 말은 확연한 증거는 아니에요. 가설이죠. 빈센트의 상태가 나빴는데 강도가 쳐서 저렇게 되었을 수도 있어요.”
“부인의 말이 맞습니다. 그냥 강도였던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어느 쪽이든 가능성입니다. 확인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왜 저를 괴롭히는 건가요?”
“짐작하시겠지만 부인께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프리랜서라고 했었지요.”

여기에서 부인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그녀가 할 말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렸고, 이윽고 그녀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집은 이미 파산했어요. 빈센트는 잘못 빚을 끌어다 썼고, 가재도구와 집까지 모두 저당잡혔지요. 저는 빈센트가 돌아오기만 기다렸지만 이제 저렇게 된 걸 알았으니 어떻게 할 방법도 없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저에게는 당신에게 드릴 조사비가 없다는 뜻이에요.”
“그건 관계없습니다. 제가 내켜서 하는 일이니까요.”

내 말을 캐럴린 로처는 신중하게 곱씹었다. 앞서 가는 수레를 따라 열 발자국 가량을 더 나아간 다음 그녀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왜 이 일을 신경쓰는 거죠?”

나는 미소지었다.

“로처와 친구였으니까요. 만약 이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이 내가 납득하는 방식으로 매듭지어지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해 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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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질나게 하기 파트 Ⅲ .. 바야흐로 마지막 웹 공개입니다. 이후로의 전개는 책이 나오길 기다려서 읽어 주시길. 와하하. (생각해보니 이런 방법이 정말 사악하다는 것을 깨달은 Neissy였슴다. 광고로는 나쁘지 않긴 하네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