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빈센트 로처를 다시 본 것은 이틀 후의 오후였다. 날씨는 이틀 전이나 마찬가지로 적당히 따스했고 동시에 적절히 시원했다. 나는 그저께 그러했듯이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중이었다. 중천에 떴던 해가 좀 더 기울어져 지면에 건물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햇볕을 완화시켰으므로 그늘을 찾아 다닐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양지로 나가야 할 필요가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양지에 잔뜩 모여 있는 일단의 사람들이 눈에 뜨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길가 너머로 둑이 있었는데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하수로가 보였고 그곳으로부터 흐른 물이 개천을 따라 흘렀다. 빌런트 시의 자랑 중 하나인 하수시설이었는데 이것이 설치된 덕분에 도시 전역에서 냄새가 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냄새가 나지 않는 대신 특정한 곳에서 강하게 냄새가 나는 차이였지만, 눈에 띄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마련이다.

길가로부터 둑을 두르고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양달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그 모여 있는 장소만으로도 흥미를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군중의 성별이나 나이에 특정한 규칙은 없었다. 군중 바깥쪽에서는 대열에 끼여들지 못한 아이들이 발돋움을 하고 있었으나 안으로 파고들 가망은 없어 보였다.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안쪽을 기웃거리는 남자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누가 죽었답니다.”

누가 죽었는지는 그 사람도 몰랐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안으로 파고들었다. 몇 번인가의 신음과 불평, 그리고 약간의 욕설을 들은 끝에 나는 군중의 중심으로까지 들어서는 데에 성공했다.

몇 걸음 너머 하수구에 한 남자가 얼굴을 땅으로 향해서 쓰러져 있었고 그를 보안관보의 복장을 한 남자가 살펴보는 중이었다. 보안관보는 전혀 안면이 없는 남자였으나 쓰러진 남자는 언젠가 보았던 적이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구김이 가득하고 때가 잔뜩 탄 회색 외출복과 머릿기름으로 가득한 머리칼은 내 기억 속에서 한 남자의 이름을 끄집어 올렸다. 나는 왼눈썹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로처?”

내가 다가가자 보안관보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이마가 넓고 콧등이 얇은 고수머리의 청년으로, 살인 사건을 능숙하게 처리할 만큼 많은 경험을 쌓은 보안관보는 아닌 듯이 보였다. 그가 황급하게 말했다.

“관계자가 아니신 분은 가까이 오시면 안 됩니다.”
“그 사람 죽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가까이 오지 마세요.”
“만일 내가 관계자라면 어떻습니까?”
“관계자라고요?”

보안관보는 눈살을 찌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넓은 이마에 세 가닥으로 주름이 잡혔다. 잠시 고민하는 듯했으나 그리 오래지는 않았다. 그는 쓰러진 남자를 돌아보았다가 다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원나온 보안관처럼은 안 보이는데.”
“당신의 관계자는 아니지만, 저 사람의 관계자일 순 있죠.”
“이 사람이 누군지 안다는 겁니까?”
“짐작으로는 그렇습니다.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요.”

보안관보는 조금 더 망설였다. 그러나 곧 고개를 끄덕였고 나를 남자 옆으로 인도했다. 남자의 몸을 옆으로 돌리자 고개도 함께 돌아가면서 옆으로 꺾여 땅으로 늘어졌다. 남자는 눈을 감은 상태였으며 얼굴 한쪽 면은 멍든 것처럼 자줏빛으로 물들었고 입은 헤벌어져 있었다. 내가 보았을 때와 많이 다르지는 않았다. 안색이 창백하다는 것과 불러도 대답할 수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술에 뻗은 사람과 죽은 사람은 생각만큼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나는 이 남자를 다시 원래대로 해놓았고 보안관보가 확인했다.

“당신이 아는 사람이 맞습니까?”
“불행히도 그런 것 같군요.”

내 대답에 보안관보는 한시름 놓았다는 얼굴을 했으나 그다지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사람의 이름이 뭡니까?”
“빈센트 로처.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비슷한 이름일 겁니다.”

내 대답에 보안관보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했다. 보안관보의 코앞에서 보안관보를 조롱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는 내 얼굴을 살폈고 내 표정에서 심술기를 찾아볼 수 없자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군요. 당신이 아는 사람이 맞습니까?”
“아는 사람이 맞긴 합니다. 단지 이틀 전에 처음 본 사람이고, 그 때 이 사람은 술에 잔뜩 취해 있었지요. 이 사람이 자기 이름을 빈센트 로처라고 말해 주었지만 내가 그 발음을 정확하게 알아 들은 것인지는 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빈센트 로처나, 그와 비슷한 어떤 사람의 이름이라고 해서 찾아 보면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이 거리에 한두 명 정도는 있을 겁니다. 그는 예전에는 악기를 팔았다고 하더군요.”
“악기상. 그렇군요.”

보안관보는 진심으로 안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체를 눈짓하며 내가 물었다.

“어떻게 죽은 겁니까?”
“후두부를 맞았습니다. 한 방이었을 테고 이 사람은 별로 고통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여기 목 뒤에 멍이 생긴 게 보이지요? 이건 시반 (屍班: 시체의 피부에 나타나는 자줏빛의 반점)이 아닙니다. 그 증거로 등은 깨끗해요. 오히려 시반은 얼굴이나 가슴, 배에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색을 보면 죽은 지 열 시간 정도 쯤 된 것 같이 보이는데. 그러니 이건 시반이라기보다 내출혈의 증거죠. 어지간히 강하게 얻어맞았던 모양이군요.”
“당신의 결론은?”
“강도 사건이죠. 술에 취해 돌아다니다가 어젯밤에 한 대 얻어맞고 갔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군요.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인수시킬 생각이었습니다.”
“그 일을 좀 도와도 괜찮겠습니까?”

로처의 왼손을 살피며 내가 물었다. 로처의 왼손 약지에 반지는 없었다. 한때 반지가 끼워져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흐릿하게 밝은 부분만 남았을 뿐이었다. 보안관보는 머뭇거렸다.

“일반 시민에게 그렇게까지 도움을 받을 일은 아닌데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틀 전에 이 사람을 만났습니다.”

나는 잠잠한 어조로 말했다.

“그 때 이 사람을 좀 더 살펴 줬더라면 여기서 이런 식으로 재회하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꼭 당신을 돕기 위해서라기보다 내 양심이 편치 않아서 그럽니다. 당신이 내게 이 일을 돕게 해 준다면 당신은 일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어서 좋고, 나는 내 죄책감을 조금 줄일 수 있어서 좋겠지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좋아요. 알겠습니다.”

보안관보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이름을 밝혔다.

“나는 길리언 텔포드라고 합니다. 여기 5번가와 6번가를 맡고 있지요. 사무소는 5번가에 있으니 그리로 찾아오시면 될 겁니다.”
“얀 트로닉입니다.”

텔포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잠깐 있다가 눈을 빛내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흥미롭다는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트로닉 씨? 설마 그 트로닉 씹니까?”
“저를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전 보안관보에 현재는 프리랜서 해결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키르헨펠 자작가 사건이 불과 두 달 전에 있지 않았습니까. 그 사건은 우리들 사이에서는 전설이 되었지요.”

텔포드가 말하는 키르헨펠 자작가 사건은 내게는 그리 좋은 기억을 남겨 주지 않은 사건이었다. 나는 귀족을 상대해야 했고 마법사와 싸워야 했다. 그 때 내가 보다 잘 행동했더라면 ------를 죽게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저 가정일 뿐이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수정본 에피소드 1에서는 사람이 좀 죽습니다. 수정본을 안 본 사람한테는 스포일러니 지워 두었습니다. Neissy 주)

“그렇게 잘 처리한 사건이 아닙니다.”
“어쩐지 보통 사람과는 달라 보인다 싶더니 트로닉 씨였군요. 그렇다면 이 사건에 대해 무언가 견해를 갖고 계실 지도 모르겠군요. 혹시 특별한 생각이 있습니까?”
“지금 당장은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군요.”

나는 우울하게 대답했다. 로처의 시체에는 특이점이 없었다. 나는 텔포드의 견해를 부정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강도 사건이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군요. 혹여 이 사람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없었는가를 확인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범인을 찾기는 힘들겠지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원한, 그렇죠.”

텔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가 로처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는 제대로 찾을 생각도 없을 것이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 것은 내가 그의 말을 긍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텔포드는 손을 들어 주름이 잡히는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로처라고 했지요. 빈센트 로처. 잘 하면 저녁이 오기 전에는 이 사람을 아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있겠죠. 그러면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지도 알아 볼 수 있을 테고요. 제 생각에는 이게 그다지 복잡한 사건은 아닐 것 같습니다만.”
“나도 그러길 바랍니다.”

내가 담담하게 대꾸했고 텔포드는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내 생각을 읽지 못했다. 그가 가볍게 고개를 으쓱했고 이윽고 몸을 돌려 사람들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이 중에 빈센트 로처를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조금 이름이 달라도 비슷하다면 일단 알려 주십시오. 원래 악기상이었던 남자라고 합니다.”

그가 외치는 사이 나는 다시 빈센트 로처를 살폈다. 그는 살았을 때에도 보기 좋은 몰골은 아니었는데 죽은 뒤 열 시간이나 하수구에 처박혀 있었기 때문에 온몸이 오물로 지저분했다. 약간은 희미해진 알콜 냄새와 뒤섞여 악취가 코를 찔렀다. 알몸을 가리는 기능말고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닳아빠진 회색 외출복과 그보다 더 상태가 안 좋은 속옷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이 남자를 털어간 사람이 누구든 무척이나 깨끗하게 털어간 셈이었다. 누가 이 남자를 털어갈 생각을 했을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생전의 그는 기껏해야 잔돈푼 정도 가졌을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나 누군가가 그의 왼손의 반지를 보았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텔포드 보안관보는 사람들과 대화하느라 바빴다.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 바람에 금방 그의 목소리가 묻혔고, 그러면 그는 소리를 높여서 일단 조용하라고 외쳐야 했다. “뭔가 있습니까?” 다가가 묻자 그가 반갑게 나를 돌아보았다.

“아주머니 한 분이 캐럴린 로처라는 사람을 안다고 하더군요. 나이대로 봐서는 아마 빈센트 로처의 부인이 아닐까 싶은데 혹시 싶어서 불러 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트로닉 씨는 뭔가 찾아냈습니까?”
“아니오, 하지만 생각난 게 하나 있어서 잠깐 갔다올까 하는 참입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만, 가능하다면 제가 올 때까지 로처 부인을 보내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어차피 인수하고 이동해야 하니까 로처 부인이 바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트로닉 씨의 부탁이니 특별히 신경쓰죠.”

텔포드가 싹싹하게 확약했다. 나는 이곳은 그에게 맡겨 두고 군중 사이를 되돌아 거리로 빠져나왔다. 들어올 때보다 사람이 더 많아졌고 나에게로 궁금증 어린 시선과 질문을 쏟아댔지만 나는 아무 답도 해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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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질나게 하기 파트 Ⅱ ←

오늘도 하루 종일 글만 썼고- 딱히 포스트 올릴 것도 없고- 한 3화까지만 내리 공개해 볼까요? ←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