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수확
대쉴 해미트 지음, 이가형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대실 해밋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유명한 이름이라 알고 있었습니다. 하드보일드계의 3대 거장을 대실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라고 하는데 제 경우에는 레이먼드 챈들러를 가장 먼저 읽었고, 그 다음이 로스 맥도널드였으며 가장 마지막이 대실 해밋이 된 셈입니다. 챈들러야 하드보일드를 접한 게 이 사람 것이었으니 그렇다 치고, 실제로는 맥도널드보다 해밋을 먼저 구하고 싶었지만 해밋을 읽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딱히 거창한 문제는 아니고 간단히 말하면 서점에 맥도널드는 보여도 해밋은 안 보이더군요- 무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의 지평을 연 선구자적인 사람인데도 말이지요. 원체 하드보일드라는 장르가 국내에서 주류가 아니다보니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DMB (동서 미스터리 북스)의 번역이 70년도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와 번역으로 욕을 먹는다고는 해도,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책을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한다는 점만은 칭찬받아 마땅하겠습니다. DMB 덕분에 저도 대실 해밋의 <피의 수확>과 <말타의 매>를 구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제 <피의 수확> 자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죠. 일단은 추리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는 있습니다만 과연 하드보일드랄지 전통적인 의미의 머리를 쓰는 추리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기실 '이 사건이 어떻게 된 걸까' 하는 궁금증조차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의뢰인이 있고 초입에 의뢰인이 피살됩니다만, 그 살해자를 잡는 것도 마찬가지로 초반에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나서 주인공은 이 썩을 대로 썩은 포이즌빌 (PoisonVille: 본래는 퍼슨빌 PersonVille이지만 포이즌빌 毒村이라고들 부릅니다)이라는 도시를 정화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고, 강철 같은 의지와 결단력, 그리고 무시무시한 행동력으로 모든 것을 처리해 나간다는 내용입니다.
통상 하드보일드에서는 추리가 주가 되기보다 사람 그 자체와 동기, 심리 등에 보다 무게를 싣는다는 것은 이미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소설에서는 일어난 사건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 (그것도 주인공이 직접 진행시키는)이기 때문에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그런 궁금증은 의뢰자 피살 사건에서 생길 수 있습니다만 이 사건은 초입에 금방 끝나 버리지요. 이 소설에서 궁금증을 들게 하는 요인이 있다면 '하드보일드는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되겠습니다. 즉 주인공은 행동과 대사만으로 독자에게 자신의 심리상태를 전달하며, 주인공의 생각이 어떠한지는 독자가 그 행동을 보고 읽어 내야 합니다. 주인공이 일단 행동하고 난 후에야 '아, 이래서 그렇게 행동한 거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셈인데,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어떻게 된 것일까'보다 '어떻게 될 것인가'에 더 무게가 실리게 됩니다. 어쨌거나 말 그대로 하드보일드한 주인공입니다. 본인은 자신에게 추리력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의 행동거지나 사소한 단서 몇 가지를 가지고 금방 결론을 도출해내며,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에 탁월한 재능이 있습니다. 심지어 싸움도 잘 하는 편이지요.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머리를 쓰며 읽는 소설이 아니라 다소 시원시원하게 읽을 만한 스타일의 소설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에는 사람이 좀 많이 죽는 편이라, 말 그대로 <피의 수확>이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글이긴 합니다만.
그런 느낌이기 때문에 '엄청나다', '놀라움을 금치 못할 수 없다'라는 감상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글이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효시이며, 수수께끼 풀이보다 인간 그 자체에 중점을 둔 첫 글, 대실 해밋의 첫 장편소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하드보일드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주인공의 하드보일드한 행동거지와 타락한 거리를 살아가는 인간군상들, 다른 건 접어두더라도 분위기 하나만큼은 훌륭합니다.
더불어 이 책의 후반부에는 조르즈 시므농이라는 작가의 <세 개의 렘브란트>와 <살인자>라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추리물이며 나쁘지 않았습니다.
대쉴 해미트 지음, 이가형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대실 해밋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유명한 이름이라 알고 있었습니다. 하드보일드계의 3대 거장을 대실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라고 하는데 제 경우에는 레이먼드 챈들러를 가장 먼저 읽었고, 그 다음이 로스 맥도널드였으며 가장 마지막이 대실 해밋이 된 셈입니다. 챈들러야 하드보일드를 접한 게 이 사람 것이었으니 그렇다 치고, 실제로는 맥도널드보다 해밋을 먼저 구하고 싶었지만 해밋을 읽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딱히 거창한 문제는 아니고 간단히 말하면 서점에 맥도널드는 보여도 해밋은 안 보이더군요- 무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의 지평을 연 선구자적인 사람인데도 말이지요. 원체 하드보일드라는 장르가 국내에서 주류가 아니다보니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DMB (동서 미스터리 북스)의 번역이 70년도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와 번역으로 욕을 먹는다고는 해도,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책을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한다는 점만은 칭찬받아 마땅하겠습니다. DMB 덕분에 저도 대실 해밋의 <피의 수확>과 <말타의 매>를 구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제 <피의 수확> 자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죠. 일단은 추리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는 있습니다만 과연 하드보일드랄지 전통적인 의미의 머리를 쓰는 추리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기실 '이 사건이 어떻게 된 걸까' 하는 궁금증조차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의뢰인이 있고 초입에 의뢰인이 피살됩니다만, 그 살해자를 잡는 것도 마찬가지로 초반에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나서 주인공은 이 썩을 대로 썩은 포이즌빌 (PoisonVille: 본래는 퍼슨빌 PersonVille이지만 포이즌빌 毒村이라고들 부릅니다)이라는 도시를 정화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고, 강철 같은 의지와 결단력, 그리고 무시무시한 행동력으로 모든 것을 처리해 나간다는 내용입니다.
통상 하드보일드에서는 추리가 주가 되기보다 사람 그 자체와 동기, 심리 등에 보다 무게를 싣는다는 것은 이미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소설에서는 일어난 사건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 (그것도 주인공이 직접 진행시키는)이기 때문에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그런 궁금증은 의뢰자 피살 사건에서 생길 수 있습니다만 이 사건은 초입에 금방 끝나 버리지요. 이 소설에서 궁금증을 들게 하는 요인이 있다면 '하드보일드는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되겠습니다. 즉 주인공은 행동과 대사만으로 독자에게 자신의 심리상태를 전달하며, 주인공의 생각이 어떠한지는 독자가 그 행동을 보고 읽어 내야 합니다. 주인공이 일단 행동하고 난 후에야 '아, 이래서 그렇게 행동한 거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셈인데,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어떻게 된 것일까'보다 '어떻게 될 것인가'에 더 무게가 실리게 됩니다. 어쨌거나 말 그대로 하드보일드한 주인공입니다. 본인은 자신에게 추리력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의 행동거지나 사소한 단서 몇 가지를 가지고 금방 결론을 도출해내며,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에 탁월한 재능이 있습니다. 심지어 싸움도 잘 하는 편이지요.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머리를 쓰며 읽는 소설이 아니라 다소 시원시원하게 읽을 만한 스타일의 소설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에는 사람이 좀 많이 죽는 편이라, 말 그대로 <피의 수확>이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글이긴 합니다만.
그런 느낌이기 때문에 '엄청나다', '놀라움을 금치 못할 수 없다'라는 감상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글이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효시이며, 수수께끼 풀이보다 인간 그 자체에 중점을 둔 첫 글, 대실 해밋의 첫 장편소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하드보일드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주인공의 하드보일드한 행동거지와 타락한 거리를 살아가는 인간군상들, 다른 건 접어두더라도 분위기 하나만큼은 훌륭합니다.
더불어 이 책의 후반부에는 조르즈 시므농이라는 작가의 <세 개의 렘브란트>와 <살인자>라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추리물이며 나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