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마음산책
우 선 먼저 밝혀 두면, 여기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Smilla's Sence of Snow를 의미합니다. 스밀라는 주인공인 여성이고, 이 여성의 눈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하드보일드풍 추리소설입니다. 1인칭이죠. 번역은 북하우스에서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를 멋지게 번역해 주었던 박현주 씨가 했고 저에게는 꽤 마음에 듭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한 소년이 죽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사야, 주인공인 스밀라와 친했던 남자아이입니다. 그는 7층 높이의 지붕에서 추락사해 죽었으나 스밀라는 소년에게 고소 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이상한 죽음을 그녀는 이상하게 여겼고, 그래서 그 죽음을 납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진실을 찾아 나섭니다. 키 백육십 센티미터에 몸무게 오십 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이 여성은 하드보일드에서 흔히 그러하듯이 자신의 몸으로 부딪히고 싸우며 진실 위에 둘러쳐진 거짓을 벗겨 나갑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제가 읽어본 '추리소설' 딱지를 달고 있는 소설 중에서 가장 '진실'이 중요하지 않은 작품입니다. 가로 14 세로 22.5 센티미터 크기에 육백이십 장이 넘어가는 분량이 되기에 많은 사건이 펼쳐지고 그 마무리도 장대하리라 기대할 수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분량의 많은 부분은 주인공인 스밀라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그 묘사에 할애됩니다. 스밀라는 반은 그린란드인, 즉 어머니가 이누이트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과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릅니다. 제목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입니다만, 이누이트의 눈을 지칭하는 단어는 백여 가지 이상이나 되는 모양이더군요. (이 감상을 위해 잠시 찾아 보았는데 이누이트의 눈에 대한 언어 근 백 가지가 정리된 정도는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단어가 그만큼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남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컨대 이 소설에서 스밀라라는 반 이누이트 혼혈 여성을 주인공으로 쓰고 그 주인공의 눈으로 세계를 본다는 뜻은 그만큼 보통 보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세계가 드러난다는 소리죠. 이 소설이 추리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는 있고 하드보일드의 형식을 차용하고는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이 페터 회라는 작가가 스밀라라는 여성의 눈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기 위해 빌린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것, 현상을 새로이 보는 것, 그 외의 다른 일들은 말하자면 양념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뭔가 손에 땀을 쥐는 전개나 쾌도난마의 사건풀이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칠 만큼 묘사가 세세하고 감성적이기 때문에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따로 적어 가며 되새기기라도 하지 않으면 현재 주인공이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고 그 곳에 가 있는지 헛갈릴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그만큼 문장과, 그녀가 보여 주는 세계는 아름답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데에 제가 닷새 (그 중에 하루는 빼도 좋지만)나 걸린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대강 '아 사건이 그리 되는 거군'이라고 생각하며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세계가 이 소설에서는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림 한 장을 보아도 대강 보는 것과 세세히 음미하는 것의 차이는 큽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세세히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세계를 보여 주고 있지요. 육백 페이지 내내 그러합니다. 위에서 말했듯, 벌어지는 사건은 그 세계를 펼치기 위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해도 오히려 무방할 정도입니다.
관념적이지만 또한 행동적이며 감성적이지만 감상적이지는 않습니다. 스밀라라는 여성의 성격 자체가 그러하며 그녀를 통해 펼쳐 보인 세계가 그러합니다. 문장을 즐기는 감각과 새로운 세계를 즐기는 마음이 있다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덴마크와 그린란드에 대한 즐거운 여행이 될 것입니다. 이 여름에서도 저는 눈과 얼음이 주는 서늘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마음산책
우 선 먼저 밝혀 두면, 여기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Smilla's Sence of Snow를 의미합니다. 스밀라는 주인공인 여성이고, 이 여성의 눈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하드보일드풍 추리소설입니다. 1인칭이죠. 번역은 북하우스에서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를 멋지게 번역해 주었던 박현주 씨가 했고 저에게는 꽤 마음에 듭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한 소년이 죽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사야, 주인공인 스밀라와 친했던 남자아이입니다. 그는 7층 높이의 지붕에서 추락사해 죽었으나 스밀라는 소년에게 고소 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이상한 죽음을 그녀는 이상하게 여겼고, 그래서 그 죽음을 납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진실을 찾아 나섭니다. 키 백육십 센티미터에 몸무게 오십 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이 여성은 하드보일드에서 흔히 그러하듯이 자신의 몸으로 부딪히고 싸우며 진실 위에 둘러쳐진 거짓을 벗겨 나갑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제가 읽어본 '추리소설' 딱지를 달고 있는 소설 중에서 가장 '진실'이 중요하지 않은 작품입니다. 가로 14 세로 22.5 센티미터 크기에 육백이십 장이 넘어가는 분량이 되기에 많은 사건이 펼쳐지고 그 마무리도 장대하리라 기대할 수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분량의 많은 부분은 주인공인 스밀라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그 묘사에 할애됩니다. 스밀라는 반은 그린란드인, 즉 어머니가 이누이트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과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릅니다. 제목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입니다만, 이누이트의 눈을 지칭하는 단어는 백여 가지 이상이나 되는 모양이더군요. (이 감상을 위해 잠시 찾아 보았는데 이누이트의 눈에 대한 언어 근 백 가지가 정리된 정도는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단어가 그만큼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남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컨대 이 소설에서 스밀라라는 반 이누이트 혼혈 여성을 주인공으로 쓰고 그 주인공의 눈으로 세계를 본다는 뜻은 그만큼 보통 보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세계가 드러난다는 소리죠. 이 소설이 추리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는 있고 하드보일드의 형식을 차용하고는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이 페터 회라는 작가가 스밀라라는 여성의 눈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기 위해 빌린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것, 현상을 새로이 보는 것, 그 외의 다른 일들은 말하자면 양념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뭔가 손에 땀을 쥐는 전개나 쾌도난마의 사건풀이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칠 만큼 묘사가 세세하고 감성적이기 때문에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따로 적어 가며 되새기기라도 하지 않으면 현재 주인공이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고 그 곳에 가 있는지 헛갈릴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그만큼 문장과, 그녀가 보여 주는 세계는 아름답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데에 제가 닷새 (그 중에 하루는 빼도 좋지만)나 걸린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대강 '아 사건이 그리 되는 거군'이라고 생각하며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세계가 이 소설에서는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림 한 장을 보아도 대강 보는 것과 세세히 음미하는 것의 차이는 큽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세세히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세계를 보여 주고 있지요. 육백 페이지 내내 그러합니다. 위에서 말했듯, 벌어지는 사건은 그 세계를 펼치기 위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해도 오히려 무방할 정도입니다.
관념적이지만 또한 행동적이며 감성적이지만 감상적이지는 않습니다. 스밀라라는 여성의 성격 자체가 그러하며 그녀를 통해 펼쳐 보인 세계가 그러합니다. 문장을 즐기는 감각과 새로운 세계를 즐기는 마음이 있다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덴마크와 그린란드에 대한 즐거운 여행이 될 것입니다. 이 여름에서도 저는 눈과 얼음이 주는 서늘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