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창해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떤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의 원작이 있다면 저는 그 원작을 읽고 영화는 그다지 보지 않는 주의입니다. 책은 호러소설의 성격을 띄고 있었고 제가 사온 책인데도 건방지게 저보다 먼저 읽은 (...) 동생의 말에 의하면 "이런 걸 보면 영적으로 피폐해지는 것 같아" 라고 하덥니다만, 솔직히 전 이 책을 읽고 메마른 느낌이 들지도 않았고 그다지 무섭지도 않았으며, 그저 좀 화가 나거나 슬펐습니다.

사이코패스 (Psychopath). 정신 질환의 일종입니다. 이 반사회성 인격장애에 대해 소설 속의 범죄심리학자 가나이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 간단히 요약하면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남을 속이는 것, 충동적인 것, 불끈 화를 내며 폭력을 휘두르는 것, 위험에 대해 무모하게 행동하는 것, 무책임한 것, 그리고 양심의 가책이 결여되어 있는 것 등이 들어 있습니다." (238p) 그리고 이것은 단순하게 후천적 요인에 의해 학습되어진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그러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도덕심이나 양심, 죄책감 등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이 소설, <검은 집>에서는 그 사이코패스를 등장시키고 그 사이코패스가 돈을 갖기 위해 태연히 사람을 죽여 가며 보험사기극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주인공인 와카쓰키 신지는 보험 조사원이며 이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일으킨 보험 사기에 의문을 갖고 진상을 살피는 중에 사이코패스의 위협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통상의 인간이라면 보험금을 타내려고 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죽이려 들지는 않을 겁니다. 신지의 말을 빌리면 "그러나 나를 죽여야 할 동기는 없잖습니까? 나를 죽여봤자 보험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구요." 거기에 가나이시는 이렇게 답합니다. "자 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할 때, 그것을 방해하면 고양이는 미친 듯이 화를 내지요. 가령 주인이라 할지라도 피를 흘릴 정도로 날카롭게 할큅니다. 그들의 정신 상태는 고양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모처럼 보험금을 손에 넣으려고 할 때 당신이 방해했다고 생각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복수로 치달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을 해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으며 자신의 친자식에게조차 애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이코패스가 상대라, 상대가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는 공포에 신지는 점차 맞닥뜨려지게 됩니다.

소설 자체에 대해서는, 사이코패스와 보험 사기라는 내용을 적절하게 버무려 읽을 만 하게 쓰여졌습니다. 한 가지 아무래도 잘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이건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뒤에 후술하고 가려 두겠습니다. 어쨌거나 이 소설에서 중요한 함의는 사이코패스입니다. 사건이 어떻게 풀리는가보다도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러한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 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번 감상에서는 이 사이코패스라는 기질에 대한 감상을 해 보겠습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선천적인 것이며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인가 하면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 말을 적는 것보다 이미 이 부분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한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쪽이 나으리라 생각하니 간단히 인용해 보겠습니다.


타고난 것인가 만들어진 것인가

사이코패시의 원인은 무엇일까? 학자들에 따라서 뇌에 어떤 이상이 있거나 유전자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가정과 사회 환경이 그들을 사이코패스로 만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로버트 헤어 박사의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이코패스는 타고난다. 그러나 그 발현 양상은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즉,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사이코패스의 성격 특성들은 타고나는 것으로서 치료도 개선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살인자나 사기꾼이 될 운명을 타고난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시를 가진 사람이 일상화된 폭력을 접하며 자랄 경우, 그들은 나중에 폭력 성향이 심각한 범죄자가 되기 쉽다. 그러나 정상적인 가정에서 안정된 보살핌을 받고 자랄 경우, 다소 인간성이 나쁘다는 평판을 듣기는 해도 사회적인 성공을 누리며 살아갈 수도 있다. 물론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힌다는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자신의 욕구를 법적 사회적 제재를 벗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면에서 후천적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의 욕망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사이코패스의 치료가 어려운 이유는 그들 스스로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데 있다. 따라서 사이코패스의 치료는 기존의 치료 프로그램이 전제로 하는 인간의 양심에 호소하는 방법 -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자신의 미래나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을 움직이는 - 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다. 사이코패스만을 위한 맞춤형 치료 프로그램은 그들의 양심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반사회적인 행동을 통해서는 그들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하고, 그들의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충족시킬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어쩌면 오직 승자만이 살아남는 무한 경쟁사회에서 사이코패스는 성격장애자가 아니라 생존에 적합하게, 그러나 너무 앞서 진화해버린 미래형 인간인지도 모른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고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한다면 우리들은 사이코패스의 피해자이기 이전에 그들의 공범일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후세로 대물림하는 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로버트 D. 헤어 저
<진단명 사이코패스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이상인격자)>의 책 소개글에서 인용



범죄자 형이 타고난다는 것과 그 발현 양상이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 대해서, 저는 기본적으로 이것이 사이코패스뿐 아니라 다른 모두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이고, (타락 이후 인간은 모두 죄의 영향력 아래 태어난다고 생각하기에) 성악설을 믿죠.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만 보아도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을 수 있겠지만, 가만히 놔두면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자라나고 죄책감도 양심도 없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당연히 버릇이 나빠지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제멋대로이고 타인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아이를 보면 다들 '부모가 잘못 키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소위 <올바른 것>에 대한 마음은 기본적으로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가 올바르게 훈육하지 않아도 올곧게 자라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건 그 사람의 기질이 보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알도록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하죠. 그러나 많은 비행 청소년은, 부모가 올바르게 훈육했더라면 그렇게 크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 올바른 훈육이 없었기에 제멋대로 크게 됩니다. 이 경우 가만히 놔두면 안 될 기질이었는데 올바르게 훈육하지 못한 경우겠죠. 그리고 사이코패스의 경우에는 그런 기질적 요인이 원래부터 아주 강한 경우라고 봅니다. 훈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났다 하더라도 선을 넘지 않게 해 주는 양심이 원래부터 아주 약하겠지요.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현재의 환경입니다. 배금주의가 판치고, 무슨 짓을 하건간에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버리는 것은 비단 사이코패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양심에만 호소해서는 고칠 수 없다는 것 역시 사이코패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 주위를 둘러 보면 우리 주위에는 양심이 닳아 더 이상 제대로 작용을 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먹지 못할 것을 가지고 먹을 것이라고 파는 사람들도 그런 예겠죠. 골판지 만두건 쓰레기 만두건 비슷하지 않을까요. (골판지 만두는 조작이라는 소리도 있긴 합니다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이 죽게 되든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사이코패스만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게 오히려 무리겠죠. 환경은 오히려 그런 기질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반사회적인 행동을 통해서는 그들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하고, 그들의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충족시킬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야 한다"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치료법이 비단 사이코패스에게만 적용되는 치료법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드는 건 제 지나친 걱정일까요.

화두인 사이코패스에 대한 Neissy의 썰을 설파했으니, 소설 자체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해 보겠습니다. 당연히 스포일러가 될 테니 가려두겠습니다만, 책을 안 읽었어도 영화를 보신 분은 열어 보셔도 괜찮습니다. 잠깐 검색해 봤는데 반전 (솔직히 전 그걸 보자마자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될 정도라 전혀 반전이 아니었을 만큼 사실 반전 치고는 약합니다만..)이 똑같아서 영화를 본 사람에겐 스포일러랄 것도 없겠더군요. 다만 기본 줄기만 같고 세세한 전개는 다른 모양이덥니다만. 뭔가 제대로 다 표현되지도 않은 모양이고.


아무튼 한 번쯤 볼 만한 책이긴 했습니다만 좀 얕다 싶은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이코패스라는 극단적인 기질과, (비단 사이코패스만이 아니더라도) 기질적 요인을 환경이 방치하거나 혹은 악화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 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 수 있겠군요. 적어도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해 주는 호러소설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