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의 유골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북하우스
1137 년 잉글랜드의 한 수도원. 피와 화염으로 얼룩진 성지의 전쟁터에서 젊은 날을 보낸 전직 십자군 출신의 수도사 캐드펠은 이곳에서 평화로운 노년을 보낸다. 그러나 잿빛 담으로 둘러싸인 이 성스러운 공간에도 세속의 온갖 욕망과 권모술수는 횡행하는 법. 영광스러운 시루즈베리 수도원의 영예를 위해 웨일스의 궁벽한 마을로 성녀의 유골을 찾아나서는 날. 일행을 맞는 웨일스 토박이들의 은밀한 검은 눈에는 수세기를 이어온 평온한 삶의 뿌리를 일순 뒤흔들어버린 이방인들에 대한 말없는 적의가 넘쳐흐르는데······. (책 뒤표지의 소개글에서 인용)
12 세기 영국으로 들어가 캐드펠과 함께 여행을 하고 돌아온 기분입니다. 이런 소설 마음에 들더군요. 추리소설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지만 오히려 그냥 순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살인이 일어나고 그 살인자를 추적하는 과정이 있긴 합니다만 소위 말하는 정통파 추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요. 정통파 추리소설 역시도 소설이니만큼 <인간>을 잊지는 않지만, 이 <성녀의 유골>은 그런 다른 소설보다도 <인간 그 자체>를 중심에 놓는 느낌입니다. 탐욕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이기가 있고 순수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가득하니 즐겁게 읽히지 않을 리가 없지요.
성녀의 유골을 찾아나서는 것은 카톨릭의 성자숭배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시루즈베리에 수도원은 이렇다할 성자를 모시지 않았고 그래서 수도원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적절한 성인을 물색하다 저 웨일스의 위니프레드 성녀를 찾아낸 것이지요. 웨일스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나 성녀를 데려가겠다고 말하는 저 잉글랜드 사람들을 고깝게 여길 리 없고요.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얽히고, 또 그 와중에서 인물간의 관계가 얽힙니다. 여러 가지 사건들을 깔끔하게 풀어 나가는 작가 엘리스 피터스의 필력은 존경할 만 합니다. (꽤나 칭찬하는 듯이 보이겠군요. 사실, 간만에 아주 만족스레 읽은 소설입니다)
물론 저는 성자숭배를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했어도 인간은 인간이고, 마땅히 하느님께만 (이 소설은 카톨릭을 근간으로 했으니 하느님으로 하죠. 뭐 호칭이 다를 뿐이니까) 돌아가야 할 영광을 인간이 가지는 것을 저는 마땅찮게 여기지 않으니까요. 하긴 이건 제가 개신교 교단 중에서도 이런 것을 극단적으로 경계하는 교단에 있기 때문에 더할 지도 모릅니다. 제가 있는 곳은 장로교 개혁 합신인데, 여기서는 교회 본당 안에 십자가조차 두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두면 하나님이 아니라 십자가에 기도할 사람들이 생겨날 것을 우려해서이지요. 뭐 이러니만큼 성자숭배쯤 되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일단 이 소설이 중세 영국을 기반으로 하니만큼 성자숭배가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겠군요. 이건 소설에 아쉬운 점이라기보다도 그저 스스로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건이 전개되는 와중에 마땅히 합리적인 현대인이라면 의문을 가질 법한 상황 전개가 나옵니다만, 그 시대 그 사람들이라면 저렇게 생각하고 지나갈 수도 있겠다는 느낌도 동시에 들더군요. 사실 그 시대를 살아봤거나 하다못해 좀 공부라도 해 봤어야 이게 그럴 법하다 아니면 아무리 그 시대라도 그리 넘어가지는 않는다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저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좌우간 <그 시대 사람의 몸을 빌은 현대인들이 그곳에 있다>는 느낌이 아닌 <그 시대 사람들이 저곳에 있다>는 느낌이라 좋았습니다. 스타일은 좀 다릅니다만, <장미의 이름>과도 비견될 만하다고 감히 말해보죠.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북하우스
1137 년 잉글랜드의 한 수도원. 피와 화염으로 얼룩진 성지의 전쟁터에서 젊은 날을 보낸 전직 십자군 출신의 수도사 캐드펠은 이곳에서 평화로운 노년을 보낸다. 그러나 잿빛 담으로 둘러싸인 이 성스러운 공간에도 세속의 온갖 욕망과 권모술수는 횡행하는 법. 영광스러운 시루즈베리 수도원의 영예를 위해 웨일스의 궁벽한 마을로 성녀의 유골을 찾아나서는 날. 일행을 맞는 웨일스 토박이들의 은밀한 검은 눈에는 수세기를 이어온 평온한 삶의 뿌리를 일순 뒤흔들어버린 이방인들에 대한 말없는 적의가 넘쳐흐르는데······. (책 뒤표지의 소개글에서 인용)
12 세기 영국으로 들어가 캐드펠과 함께 여행을 하고 돌아온 기분입니다. 이런 소설 마음에 들더군요. 추리소설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지만 오히려 그냥 순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살인이 일어나고 그 살인자를 추적하는 과정이 있긴 합니다만 소위 말하는 정통파 추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요. 정통파 추리소설 역시도 소설이니만큼 <인간>을 잊지는 않지만, 이 <성녀의 유골>은 그런 다른 소설보다도 <인간 그 자체>를 중심에 놓는 느낌입니다. 탐욕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이기가 있고 순수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가득하니 즐겁게 읽히지 않을 리가 없지요.
성녀의 유골을 찾아나서는 것은 카톨릭의 성자숭배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시루즈베리에 수도원은 이렇다할 성자를 모시지 않았고 그래서 수도원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적절한 성인을 물색하다 저 웨일스의 위니프레드 성녀를 찾아낸 것이지요. 웨일스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나 성녀를 데려가겠다고 말하는 저 잉글랜드 사람들을 고깝게 여길 리 없고요.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얽히고, 또 그 와중에서 인물간의 관계가 얽힙니다. 여러 가지 사건들을 깔끔하게 풀어 나가는 작가 엘리스 피터스의 필력은 존경할 만 합니다. (꽤나 칭찬하는 듯이 보이겠군요. 사실, 간만에 아주 만족스레 읽은 소설입니다)
물론 저는 성자숭배를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했어도 인간은 인간이고, 마땅히 하느님께만 (이 소설은 카톨릭을 근간으로 했으니 하느님으로 하죠. 뭐 호칭이 다를 뿐이니까) 돌아가야 할 영광을 인간이 가지는 것을 저는 마땅찮게 여기지 않으니까요. 하긴 이건 제가 개신교 교단 중에서도 이런 것을 극단적으로 경계하는 교단에 있기 때문에 더할 지도 모릅니다. 제가 있는 곳은 장로교 개혁 합신인데, 여기서는 교회 본당 안에 십자가조차 두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두면 하나님이 아니라 십자가에 기도할 사람들이 생겨날 것을 우려해서이지요. 뭐 이러니만큼 성자숭배쯤 되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일단 이 소설이 중세 영국을 기반으로 하니만큼 성자숭배가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겠군요. 이건 소설에 아쉬운 점이라기보다도 그저 스스로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건이 전개되는 와중에 마땅히 합리적인 현대인이라면 의문을 가질 법한 상황 전개가 나옵니다만, 그 시대 그 사람들이라면 저렇게 생각하고 지나갈 수도 있겠다는 느낌도 동시에 들더군요. 사실 그 시대를 살아봤거나 하다못해 좀 공부라도 해 봤어야 이게 그럴 법하다 아니면 아무리 그 시대라도 그리 넘어가지는 않는다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저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좌우간 <그 시대 사람의 몸을 빌은 현대인들이 그곳에 있다>는 느낌이 아닌 <그 시대 사람들이 저곳에 있다>는 느낌이라 좋았습니다. 스타일은 좀 다릅니다만, <장미의 이름>과도 비견될 만하다고 감히 말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