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라이브
프랭크 마샬 감독, 에단 호크 외 출연 / 파라마운트 (Paramount)
안데스 산맥을 넘어가던 중 비행기가 추락했습니다. 죽은 사람도 있지만, 과반수의 사람은 살아남았습니다. 고산지대, 보이는 것은 오로지 눈 덮인 산. 눈보라가 몰아치고, 밤이면 영하 30, 40도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공간. 고립된 그들에게 수색대조차 수색을 포기했다는 비보가 전해집니다. 오로지 그들만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순간, 그들은 어떻게 해서 살아남았을까요.
이 영화의 존재를 알게 한 것은 예전 FANTS 시절 어떤 문답의 문제였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지만, '만약 당신이 영화 얼라이브와 같은 상황에 처하면, 당신은 인육을 먹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 <얼라이브>에서, 식량이 없어 굶어 죽게 될 처지에 처한 이 조난자들은 죽은 사람의 고기를 뜯어 먹고 생존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사실에 기초했다고 쓰여져 있습니다만, 기초했다고 쓰인 건 실제와는 다르게 변형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실제 사건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요. 그러므로 지금부터의 감상은 오로지 '이 영화에서 보여준 상황'에 대해서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들이 처한 곳이 혹독한 환경이기는 합니다만, 비행기 동체 자체는 남아 있고 어느 정도의 짐도 남아 있었기에 밤이 된다고 얼어 죽을 곳은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비행기 밖으로 큰 문제 없이 나가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에는 무려 일광욕을 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밤만 아니면 사는 데에 큰 무리는 없는 모양입니다. 옷도 충분하고 잘 공간도 있고,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건 먹는 부분입니다. 물은 주위에 널린 것이 눈이므로 식수 공급에는 문제가 없지만, 에너지원이 될 만한 식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해결되었는가는 위에서 이미 말해 버렸지요. 죽은 사람에게는 영혼이 없는, 그냥 고깃덩어리라는 전제 하에,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의 죽음으로 우리가 살 수 있다는 성육신적인 의미 하에서, 또한 나 역시 죽으면 너희들을 위해 나를 먹어도 좋다는 생각 안에서, 그들은 죽은 사람의 살을 먹고 2개월 이상이나 생존하게 됩니다.
다만 이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고 생존하는 부분이 전체 영화의 비율에 비해서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만, 오히려 너무 감상적으로 빠지는 것보다는 이 쪽이 더 적절하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일단 인육을 먹는 것이 결정되고, 그에 따른 진지한 부분이 지나가고 난 다음의 과제는 이 산맥을 넘어가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고, 그래서 영화는 그 부분을 중점으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인육을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부차적인 요소지, 그것 자체만으로는 종착지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충격을 주는 부분임은 틀림없습니다. 더구나 여기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결코 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신은 그냥 하늘에 계시옵소서,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나이다'가 아니라, 그들은 그 상황을 신이 준 고난으로 여기고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보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이 인육을 먹을 수 있었던 데에는,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카톨릭 신자였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영혼이 떠난 육신은 그저 단백질 덩어리라는 시각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죠. 그리고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지만, 결코 짐승이 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최후까지 인간인 채로 살아남았습니다. 비록 그것이 보통의 사회에서 부과하는 암묵적인 룰을 넘어서고 말았다 해도.
실제 있었던 이 사건은 1972년 10월에 일어났고, 1972년 12월에 교황청은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프랭크 마샬 감독, 에단 호크 외 출연 / 파라마운트 (Paramount)
안데스 산맥을 넘어가던 중 비행기가 추락했습니다. 죽은 사람도 있지만, 과반수의 사람은 살아남았습니다. 고산지대, 보이는 것은 오로지 눈 덮인 산. 눈보라가 몰아치고, 밤이면 영하 30, 40도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공간. 고립된 그들에게 수색대조차 수색을 포기했다는 비보가 전해집니다. 오로지 그들만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순간, 그들은 어떻게 해서 살아남았을까요.
이 영화의 존재를 알게 한 것은 예전 FANTS 시절 어떤 문답의 문제였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지만, '만약 당신이 영화 얼라이브와 같은 상황에 처하면, 당신은 인육을 먹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 <얼라이브>에서, 식량이 없어 굶어 죽게 될 처지에 처한 이 조난자들은 죽은 사람의 고기를 뜯어 먹고 생존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사실에 기초했다고 쓰여져 있습니다만, 기초했다고 쓰인 건 실제와는 다르게 변형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실제 사건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요. 그러므로 지금부터의 감상은 오로지 '이 영화에서 보여준 상황'에 대해서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들이 처한 곳이 혹독한 환경이기는 합니다만, 비행기 동체 자체는 남아 있고 어느 정도의 짐도 남아 있었기에 밤이 된다고 얼어 죽을 곳은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비행기 밖으로 큰 문제 없이 나가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에는 무려 일광욕을 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밤만 아니면 사는 데에 큰 무리는 없는 모양입니다. 옷도 충분하고 잘 공간도 있고,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건 먹는 부분입니다. 물은 주위에 널린 것이 눈이므로 식수 공급에는 문제가 없지만, 에너지원이 될 만한 식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해결되었는가는 위에서 이미 말해 버렸지요. 죽은 사람에게는 영혼이 없는, 그냥 고깃덩어리라는 전제 하에,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의 죽음으로 우리가 살 수 있다는 성육신적인 의미 하에서, 또한 나 역시 죽으면 너희들을 위해 나를 먹어도 좋다는 생각 안에서, 그들은 죽은 사람의 살을 먹고 2개월 이상이나 생존하게 됩니다.
다만 이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고 생존하는 부분이 전체 영화의 비율에 비해서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만, 오히려 너무 감상적으로 빠지는 것보다는 이 쪽이 더 적절하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일단 인육을 먹는 것이 결정되고, 그에 따른 진지한 부분이 지나가고 난 다음의 과제는 이 산맥을 넘어가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고, 그래서 영화는 그 부분을 중점으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인육을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부차적인 요소지, 그것 자체만으로는 종착지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충격을 주는 부분임은 틀림없습니다. 더구나 여기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결코 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신은 그냥 하늘에 계시옵소서,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나이다'가 아니라, 그들은 그 상황을 신이 준 고난으로 여기고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보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이 인육을 먹을 수 있었던 데에는,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카톨릭 신자였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영혼이 떠난 육신은 그저 단백질 덩어리라는 시각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죠. 그리고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지만, 결코 짐승이 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최후까지 인간인 채로 살아남았습니다. 비록 그것이 보통의 사회에서 부과하는 암묵적인 룰을 넘어서고 말았다 해도.
실제 있었던 이 사건은 1972년 10월에 일어났고, 1972년 12월에 교황청은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