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월급날이었습니다. 생활고에 찌들어 돈이 없어™를 외치고 다니던 가난한 알바생도 어쨌든 월급날이 찾아오면 두둑한 돈봉투를 들고 잠시나마 흐뭇한 마음에 젖습니다. 휴대폰비며 차비며로 순식간에 십여 만원이 날아가고 나면 좀 슬프긴 하지만 그거야 뭐 생활지출비니 기본으로 빼두고.

각설하고 월급날이니 행복한 기분으로 서점엘 갔습니다. 인터넷 서점이 싸기 때문에 그쪽에서 책을 구입하는 게 책 한 권은 더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알지만 (한 달에 사들이는 책 양이 좀 되니까요. 인터넷에서 절약되는 돈을 모아보면 그쯤은 나옵니다) 그래도 역시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손에 들고 내용을 훑어보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맛을 버릴 수가 없어요. 책이 잔뜩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공간이 바로 서점입니다. 비바 서점.

항상 가는 서점이 수원역사의 북스리브로, 꽤나 큰 대형서점이기 때문에 그냥 가서 공짜로 책을 읽고 올 수도 있지만, 요새는 서점에서 그냥 책을 읽고 오는 건 딱히 끌리지 않더군요. 서점은 도서관이 아니니까 사 줘야지! ..라는 건 아니고, 왠지 요새는 '책을 산다'는 것 자체가 좋더군요. 문화상품은 제 값 주고 이용해야지라든가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만, 뭐랄까 그냥 책을 볼 때랑 책을 사서 볼 때랑은 기분이 완전히 달라요. 뭔가 뿌듯함과 동시에 좀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게 되죠. 여하간, 서점에 가면 왠지 책을 한 권은 사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요즘은 추리소설에 빠져 있기 때문에 오늘도 추리소설 쪽을 둘러봤습니다. 화차를 읽고 마음에 들었던 미야베의 '모방범'? 음, 이건 사모을 생각이긴 하지만 한번에 질러버리기엔 조금 부담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질러버려야지 생각하고 이쪽은 스킵. (요새는 인터넷 서점으로도 휴대폰 결제가 가능해서 편하더군요. ..사실 그게 핸폰비가 올라가게 만드는 결정적 원인) 그렇다면 딕슨 카? 으음, 사 둔 해골성을 아직 못 봤습니다.

..랄까, 시배스천 폭스의 '새의 노래'를 아직 붙들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새로 구입했던 책들을 아직도 다 못 읽고 있었습니다. 뭐 이제는 다 읽었고, 오늘 내로 감상도 올려 볼까 하는 중입니다만.. (이거 페이지수가 압도적입니다. 열린책들 페이퍼백판을 샀습니다만 무려 600페이지 상회. 그 분량에 가격은 7,800원이었다는 게 구입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만) 하여간 자금 압박 이전에 아직 안 읽은 책이 댓 권은 되는 상태이기 때문에 '산 책도 아직 다 안 읽었으면서 뭘 또 지르냐' 하는 마음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서점에 있고 자금이 있으면 어쨌든 책 한 권은 사 가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책임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둘러보다가 눈에 뜨인 게 황금가지 밀리언셀러 클럽.

그리고 보인 게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요새 이 책의 제목은 들어 알고 있었죠. 관련 포스트 (링크 걸어두죠.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이 청소년 유해도서로 선정!' 을 참조하세요)에 의하면, 시체를 토막내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상자, 들개, 모텔 탈출기 등이 지적) 수거 후, 포장하여 '19세 미만 구독 불가'로 수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전에 배틀 로얄도 수거된 후 포장된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배틀 로얄 1권에는 19세 미만 구독 불가 딱지가 붙어 있지요. (2권을 먼저 사버려서 2권에는
붙어 있지 않습니다) 여하간 오늘 본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에는 딱지가 없더군요. 아직 수거되지 않았던 모양인지.

그래서 집어들었습니다. 너는 이미 지르고 있다.. ..랄까, 물론 이걸 산 진짜 이유는, 여기 수록작인 '모텔 탈출기'가 예전에 통신에서 감명깊게 읽은 단편이었기 때문이죠.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모텔에 데리고 간 여자애가 죽어버려서 그걸 처리하려고 온갖 고생을 다 했는데 충격적 결말을 맞이하는 그 단편.

서점에 가면 반쯤은 충동구매가 됩니다. 예전부터 '이걸 사겠다'고 마음먹고 쇼핑 리스트를 만들어놨다가 계획성있게 구입하는 건 힘들죠. 그리고 그렇게 사는 건 왠지 재미없기도 하고. 저는 '소설이란 감성의 영역이며, 따라서 소설 구입도 감성에 따라 하는 것이 사람된 도리다!'라고 주장해보렵니다.

뭐, 책을 사는 건 여러 취미 생활 중에서 저렴한 취미에 속합니다. 무절제하게 친구를 부르다가 빚을 감당 못 해 무서운 친구가 찾아오게 될 정도로 무식하게 책을 사모으지만 않는다면야 책 산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다른 거 다 접어두고, 일단 책은 재미있어요.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또다른 세계에 참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재밌죠. 활자가 가득 박힌 책, 재미있는 책을 구입해서 책을 읽다가 한 차례 책에 코를 들이대고 후웁- 하고 숨을 들이마쉬면 이건 그야말로 엑스터시 (...).

그러니까 저는 돈이 생기면 줄창 서점엘 갑니다. 서점은 파라다이스. 브라보.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