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바르코비악 감독, 칼 어반 외 출연 / 유니버설 (Universal)

아실 분은 다 아시다시피 둠은 게임이 원작입니다. 여태까지 게임을 영화로 만든 작품은 꽤 있었습니다만 그리 만족스러운 건 드물었죠.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대상층이 애매하다는 걸까요. 보여주는 매체가 달라지는 이상 그 특성에 맞게 변해야 합니다만 실제로 그 작업을 원활히 수행하기는 아주 힘듭니다. 무엇보다 힘든 건 게임이란 건 플레이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굉장히 쉽고, 반면 영화는 '보여주는 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 괴리가 느껴진다는 거겠죠. 게임의 세계관을 영화로 제대로 옮겨오기도 사실 힘든 일이고요.

사설이 길었습니다만, 이 '둠'도 게임을 영화화한 작품의 문제점을 거의 그대로 다 지니는 작품입니다. 게임에서 보여줬던 그 포스를 보여주질 못해요. 끝마무리는 칭찬을 약간 하면서 끝낼 생각이니 미리 매를 때려보겠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스토리 라인입니다. 물론 원작인 게임의 스토리 라인, 실수로 게이트웨이에서 악마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내용은 영화화되면서 약간 수정이 있을 필요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주무대가 화성인 건 게임이나 영화나 거기서 거깁니다만. 뭐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게임에서는 그냥 화성이 아니라 화성의 달인 포보스입니다만, 역시 게임과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니 세세한 차이점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하간, 영화화되면서 스토리 라인에 수정이 가해질 필요가 있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만, 영화판 둠은 원작 게임의 스토리 라인에서 상당히 크고, 또한 치명적인 차이를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

첫 번째는 근본적인 스토리 라인에 너무 큰 변화를 넣었다는 겁니다. 원작에서는 악마가 등장하는 거였는데, 영화에서는 그저 유전자 변형으로 인한 괴물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괴물은 인간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주입시켜 괴물로 변형시킵니다. (뭐 자세한 부분은 생략하겠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그런데 이 괴물로 변형시킨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 뻔한 소재 아닙니까. 모처럼 둠을 영화로 만들었으면 게임의 팬부터 확실하게 휘어잡아야죠, 이건 보고 있으면 내가 지금 둠을 보고 있는 건지 레지던트 이블을 보고 있는 건지 회의가 듭니다. 난 네놈 같은 것들을 보려고 이걸 보고 있는 게 아니야!

두 번째 역시 스토리 라인의 차이점이자 구성상의 차이가 되는데요, 그건 영화판에선 '나오는 인간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원래 게임에서는 UAC (우주연합항공회사)의 포보스 게이트웨이에서 악마들이 나오고, 그래서 통신이 두절되었으며, 그 쪽으로 '주인공'과 주인공의 동료들이 투입되고 주인공은 베이스를 지키고 동료들이 일단 기지 내로 돌입하는데 무전기를 통해 총 소리와 비명 소리 등이 나고 결국 모든 것이 침묵하여 주인공은 동료들이 전멸한 것을 깨달았으므로 결국 주인공도 기지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만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중화기는 동료들이 모두 가져가서 무기라고는 권총 뿐이고, 기지로 들어가자 어디에선가 짐승의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나오고. '이걸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나 뿐이다' ..라는 건 물론 게임의 스토리라인이만치 오히려 당연한 귀결입니다만 바로 이 점이 '1인칭 시점'이라는 것과 더불어 상당히 긴장감을 가져올 수 있죠.

그런데 영화는 어떤가 하면, 동료들과 함께 진입하고, 괴물 때문에 하나하나 죽어갑니다. 전형적이고 무난한 방법입니다만, 저더러 말한다면 '이건 둠이 아냐!' 되겠습니다. 물론 게임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가져오면 배우 하나서 설치는 원맨 영화가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만, 모처럼 저 '극도의 긴장감'을 가질 수 있는 시나리오를 어떻게든 잘 사용해 주었으면 좋았을 걸, 이라고 생각하는 건 저 뿐일까요. 결국 이 영화는 다른 흔한 괴물 영화와 별로 다를 것도 없는 그저 그런 킬링타임 무비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혹평이로군요. 사실 그렇습니다. 레지던트 이블 EX라고 해도 믿겠어요. 하지만 이 '둠'에는 다른 괴물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차별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더 락.. ..이 아니라 (전 프로레슬링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더 락에 관심없어요)

'1인칭 시점'입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주인공에게 몇 분 동안 1인칭 시점이 도입되는데, 말할 것도 없이 '보고 있는 시점' 그대로이며 FPS모드에 좀 더 정확히 말하라면 둠의 게임 화면 그대로입니다! 움직일 때 시점이 (당연히) 울렁거리고, 총을 쏘고, 조준경으로 조준해 쏘고, 탄창을 재장전하고, 기계톱을 휘두릅니다! 여기서는 '둠이다!'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네, 제가 '둠'에서 원한 건 이런 거였습니다. 잘 짜여진 스토리 라인? 인물의 긴장구조? 과거의 트라우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어차피 이런 액션 영화 (그것도 게임을 영화화한 영화)에서 수준 높은 스토리 라인 같은 걸 기대하지 않습니다. 게임 팬들이 곧바로 이건 필견이닷!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영화면 아무래도 좋은 겁니다.

그러니까 결론, 스토리 라인은 후졌습니다. (단호) 둠다운 요소는 기껏해야 화성이라는 무대와 총기 정도밖에 없습니다. 호러액션영화로서의 연출은 그리 나쁜 편은 아닙니다만 그 정도는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다 합니다. 그냥 보통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겠죠. 하지만 저 1인칭 시점! 이거 하나 때문에라도 둠 팬들은 반드시 보십쇼. 두 번 보십쇼. (그 부분만 찾아 본다거나 하는 마도는 생각하지 마시길. 후진 스토리 라인이라고는 해도 일단 제대로 다 봐야 저 1인칭 시점에서 감동이 쓰나미로 몰려오는 겁니다)


..아, 그리고 더 락에 대해서 한 마디만. 역시 프로레슬러는 액션이 멋지더군요. (..문제는 액션신 자체는 괜찮았지만 둠에서 그런 액션은 좀 위화감 든다는 거. 애매하다고요, 진짜로)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