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변희봉, 고아성 / 봉준호

※ 이 감상글에는 기본적으로 영화 중의 내용이 언급되고 있으며, #4에서는 꽤 심각할 만한 스포일러가 포함되고 있으니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 중 스포일러를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주의하시길 권합니다.


#1 우선,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칭찬부터 (응?)

우선 괴물의 표현이 굉장히 사실적입니다. '오호, 우리나라 영화도 여기까지 왔는가!'라고 할 만큼 헐리우드 우습게 볼 만한 CG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데 나중에 스탭롤 보니 CG는 어디더라 하여간 미국에서 했더만..) 여하간 괴물 하나만큼은 정말 맘에 든달까요.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도 수준급입니다. 적어도 연기에 대해서라면, 뭐라고 흠잡기 힘들 정도. 이런저런 감정표현이나 행동들에 전혀 어색함이 없습니다.

뭐 그런 전차로, 초반에 등장한 괴물의 등장신이나 그에 이어지는 이런저런 이야기, 처음에 저는 DVD를 반드시 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2 그러나, 도대체가 거슬렸던 게

우리나라 정부고 경찰이고 병원이고 주위사람들이고 미국이고간에 죄다 찌질입니다. 아니, 뭐, 실제로도 그런 찌질이 근성이 있을 수 있는 거야 충분히 그렇다고 치죠. 하지만 조금이라도, 숨통이 틜 만하게 찌질해 줘야지, 도대체가 이건 하나같이 막막하기만 한 찌질함이라니.

일테면 미국에서 개입하게 될 때, 우리나라가 괴물을 처리할 만한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어서 개입한다 그랬는데, 그런 결정이 나올 만큼 우리나라가 무능력한 나라인가요. 그 수많은 군인들은 어디다 꼴아박고서 미국까지 개입하게 만든답니까. (처음에 초반부에 괴물 등장하고 한강 통금시킬 때 군대 어디로 가는 모습만 병아리눈꼽만큼 조금 보여주고 나중엔 군인이라곤 코빼기도 안보이더만요. 무슨 예비군도 아니고, 괴물은 알바아니고 다 어디론가 짱박히기라도 했나. "선배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어허 자네가 인생을 모르는구만")

군대에 관해서 다소 덧붙이자면, 전 처음에 군대가 동원됐으나 도저히 괴물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우리 주인공 가족'들이 어떻게 해서 괴물을 처리하는 그런 시나리오를 생각했습니다만. (조금은 뭔가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건 좀 있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 수많아야 할 군인들은 대체 다 어디로 갔답니까?

그리고 경찰이고 병원이고 주위사람이고간에.. 송강호 (극중 이름이 기억이 안 납니다만) 말을 아무도 믿어주질 않는데. 한 사람 정도는 믿어주고 도와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이건 도대체 (가족 외에는) 죄다 송강호를 정신병자로만 몰아가고 있으니. (하긴 뭐 나중에 보니 인권단체에서 일어나긴 했답니다만)

적어도 봉준호 감독이 본 우리나라는 졸라 찌질이들만 사는 나라인게 분명합니다. 제대로 정신 박힌 인간이라곤 없는, 자기 생각에만 바쁜 나라. 네, 물론, 그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죠. 하지만 난 거슬렸습니다.

아, 다만 반미감정인가 뭔가 하는 건 별로 신경쓰이지 않더군요. 외국인이라고 다 찌질했던 것도 아니고. (처음에 용감하게 괴물한테 덤빈 사람도 있었고) 어차피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란, 힘센 나라가 약한 나라를 이용해먹는 거니까. (우리나라가 힘세고 미국이 약했으면 우리나라는 뭐 잘했겠습니까)


#3 그리고 말입니다만,

감독님,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 많았던 거 아닙니까? 괴물이면 괴물, 가족애면 가족애, 어느 하나에만 좀 더 집중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둘 다 잡으려다 둘 다 어정쩡해진 느낌이라고요. 모처럼 멋졌는데 괴물을 좀더 스펙터클하게 보여주던가 모처럼 연기도 잘하는데 가족애로 좀더 멋지게 감동시켜주던가. 나름대로 볼만은 했는데 이래선 그냥 '뭐 볼만은 해' 수준이다 이겁니다.


#4 또 그리고, 이게 진짜 결정적으로 저를 짜증나게 한 겁니다만.

(이하는 심각한 스포일러라 가립니다. 궁금하시면 긁어보세요)

현서를 왜 죽였냐 이겁니다.
죽일거면 아예 처음부터 확실하게 끝내버리던지.
거의 끝부분까진 살려놓다가 결국 죽여버리고.
같이 있던 남자애 녀석을 현서 대신 던져주면 답니까?
그때까지의 모든 내용들은, 모두 '현서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거기 가서 턱하니 죽여버리고,
현서가 살린 남자애를 키우게 된다?

물론, 글쎄- 거기에서 뭘 말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는 것도 아니지만.
진짜 짜증나더군요.

차라리 아버지가 대신 죽고 현서가 살게 되는 스토리로 가란 말야.
그럼 다들 충분히 납득하고 감동해 줄 테니까.

뭐, 아마도 그건 감독의 취향이 아니었던 거겠지요.
'난 그런 식으로 가기는 싫다' 라고 생각했는지도.

하지만 현서가 죽은 걸로 확인된 시점에서 이미 영화는 끝났습니다.
그 뒤에 남자애가 살아 있건, 괴물이 죽었건 어쨌건,
그런 건 그냥 곁다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좀더 덧붙여서, 끝마무리에 괴물이 불탈 때.. 굉장히 어색하다 싶었는데, 잠깐 돌아보니 실제로 휘발유에 불탈 때 그게 리얼한 거라서 그런 리얼함을 살리고자 그렇게 했는데 다들 CG 티가 너무 난다고 한다고 했다더라고 감독이 말한 모양인데.. (실제로 말했는지 어쨌는지, 주워들은 거지만)

사람들이 굉장히 허무하게 죽는 모양이나, 전개의 이런저런 절차를 볼 때 '실제'처럼 툭툭 가버리는 걸 더 선호하는 거 같은데..

내가 지금 영화 보러 갔지, 다큐멘터리 보러 갔냐?



#5 하여간 그래서

감독이 말하고 싶은 걸 이 영화로 말한 모양이고, 그 말한 내용들은 저하고는 죽어라고 안 맞았습니다.

영화 보고 느낀 건
1. 오, 괴물 멋지다.
2. 야, 배우들 연기 잘한다.
3. 오, 현서 예쁘다. (...)

그리고

4. 근데 진짜 깝깝하다, 영화가.

이상인 것이지요.


취향에 맞는 분들은 재미있게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영화가 말하고 있는 내용들이 사람을 꽤 짜증나게 하더군요. 다만, 정말이지 훌륭한 '괴물'을 본 것 만으로 영화의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

뭐, DVD는 죽어도 살 생각이 없습니다만. (초반부엔 '와 이거 DVD 사야겠다' 생각하다가 중반부엔 '이거 왜이리 답답해' 이러다가 후반부엔 '아 씨바 죽을거면 빨리 죽어버려' 라거나 '끝까지 이러기냐!')


여기까지 감상.
앞으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볼 때는 아주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Neissy였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