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건 뭐랄까, 역시 소설이란 걸 처음 쓸 때보단 꽤 원숙해졌다는 거다. 완전하다고는 말하기 힘들겠지만, 캐릭터들이 살아 있다. 각기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가지고, 자신의 경험과 행동 양식에 의거하여 움직인다. 솔직히 말하자면, 영시에선 정말이지 이걸 쓰고 싶었다. 어떤 캐릭터가 어떤 행동을 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니까.

한 캐릭터는 어떤 상황에 있어서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능한 선택은 여러가지였어도 실제로 택할 수 있는 것은 사실 한 가지. 하나의 행동은 다음의 행동을 유발하고, 또 그 행동은 다시 다른 행동을 유발하고. 어떤 캐릭터가 형성되는 데에 주위의 여러 캐릭터들이 필요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 받고 달라지고 변하고. 한 캐릭터의 성격 형성에 있어 그 캐릭터의 부모가 큰 역할을 담당하고 또한 그 캐릭터의 부모는 그런 담당을 하게 되는 이유를 또다시 주위에서 제공받고.

데스트로이아를 쓸 때는 이런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캐릭터는 그냥 캐릭터고, 적당히 개성적인 성격만 만들면 그만이었으니까.

붉은 영혼을 쓸 때는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이 어렴풋이 있었으나 별로 신경쓰고 쓰지 못했다. 결과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그 사이의 여러 작품들은 뭔가가 제대로 나올 만큼 길게 쓰질 못했고 (혹은 완결내지 못했고)

이런 걸 제대로 쓰기 시작한 건 영혼의 시가 처음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가. 사건은 캐릭터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캐릭터를 어떻게 변화시켜 가는가.

많은 미흡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물론 그게 보인다는 건 앞으로 나는 훨씬 더 성장할 여지가 많다는 거지. 부족한 게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세계관이나 설정 같은 걸 그리 중시하지 않는다. 어떤 거창한 메시지가 그렇게 중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캐릭터들이 살아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 캐릭터들이 살아 있게 만들기 위해 세계관이나 설정을 다듬는 정도다.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인다면, 그 살아 있는 모습에서 사건은 일어나고 굳이 무엇인가를 강조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메시지가 전해지기 마련이다. 하긴 실제로 설정을 해 둘 때는 세 가지가 함께 짜여지지만. 그거, 인물과 사건과 배경이라고 했던가? 제대로 글 속의 '세계'가 살아 숨쉬게 하려면 모두 다 신경쓸 수밖에 없다. 이걸 먼저 짜기 시작하느냐 저걸 먼저 짜기 시작하느냐 그 차이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내게 글이란 조각과 같다. 나무 안에 형상이 숨겨져 있고, 나는 그 형상을 끄집어내기 위해 나무를 다듬는다. 단어를 손보고, 문장을 고치고, 배열을 재배치함에 따라 그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갈 길은 멀다. 그래서 기쁘다.아직 아직 성장할 수 있으니까. 지금 쓴 글보다 더 나은 글을 써나갈 수 있음을 아니까.

나중의 글을 위해 여력이나 멋진 사건 따윌 남겨둘 필요가 없다. 나중이 되면 더 멋진 걸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옛날에 데스트를 쓸 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런 걸 여기다 집어넣어서 나중에 쓸 거리가 없어지면 어쩌지?' 그런데, 소재는 도처에 널려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그 무엇이든 소재다. 아픔도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범죄가 일어났거나 미담이 있었거나 사기당했거나 배신당했거나 친한 이와 결별했거나 내가 당했거나 당신이 당했거나 그게 다 소재다. 경험하는 만큼 소재가 늘어난다. 쓸 거리는 널려 있다. 무엇을 잡아서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작가로서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느냐도 결국은 그 문제겠지.

자, 일단은 영혼의 시 최종장을 내가 가능한 최고의 퀄리티로 뽑아낼 때다. 무엇을 아껴둔다는 생각은 하지도 말자. 그 때가 되면 더 멋진 걸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걸 쏟아붓자. 단, 절대로 오버하지 말고. 과한 건 모자람만 못하니까.

내가 누구냐고?

나는 글쟁이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