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짬히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노트를 가져가서, 일단 거기다가 쓰고,
집에 돌아와서 컴퓨터로 다시 옮기(는 김에 퇴고도 하)는 겁니다.
옛날에 노트로 데스트로이아와 붉은 영혼 (이쪽은 초반부만) 쓰던 기억이 새록새록이군요.
뭐랄까 어제오늘 노트로 11장 반을 썼는데..
컴으로 옮기니 분량이 꽤 되더군요.
다 옮기는 데 다섯 시간은 소모한 듯합니다;
(단순 타자가 아니라 퇴고를 겸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여하간 이렇게 계속 쓰면 27일에 13장 시작하겠다는 약속은 지킬 수 있을 듯합니다.
뭐, 열심히 써야겠지요.
13장 맛보기
==========================================
「어쨌든 살아만 있어주면 돼」
13장. 재기
그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어빈에게 있어 더없이 익숙했다. 어깨까지 닿는 다갈색의 머리칼,
상냥하지만 어딘지 슬픈 듯한 눈동자, 부드러운 듯하나 약간은 거
친 살결. 말랐다기보다도, 차라리 거의 뼈밖에 남지 않은, 보고 있
으면 안타까워지는, 그래서 자신이 지켜 주어야만 할 것 같은, 가
냘픈― 그녀는.
그 곳에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공허 속에. 혹은 사자 (死者)들과
함께. 그녀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또는 보고 있는 사이에 급속도로
나빠져 갔다. 원래부터도 약간 희었던 피부는 이미 완전히 핏기
를 잃었고, 희다기보다도 푸르게 변해 있었다.
그녀는 텅 빈 눈으로 어빈을 보고 있었다. 메마른 입이 벌어졌지
만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의 눈으로부터 눈물이 흘러내
렸다. 그리고 그저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말해야 했다.
알 수 있었다, 혹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말해야 했다. 그러나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
았다. 어빈은 눈물조차도 흘릴 수 없었다. 다만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이윽고 그녀의 목에 붉은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약간 비스듬하
게, 그러나 분명하게, 잘려 나가고 있었다. 스르르, 미끌어져 내리
듯이, 목이 떨어졌다. 소리 없이 바닥을 굴렀고, 이윽고 천천히 멈
춘 후 그녀의 공허한 눈은 어빈을 향해 있었다.
그녀의 이름. 그녀의 이름은,
“에브.”
어빈은 잠에서 깨어났다. 잠시 후 그는 이곳이 존즈의 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옆 침대에서는 루크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어빈은 누운 채로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에브를 생각했다.
13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좀 더 진행하면-
“너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쉬노어가 표정을 일
그러뜨리며 외쳤다. “너는 누구냐?”
“질문이 늦군. 나는―,”
병사는 투구를 벗었고, 짧게 커트한 회갈색 머리칼 아래 날카롭고
강인한 인상의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두 눈은 심지 깊고 굳건한
동시에 예리했고, 표정은 여유 있는 동시에 단호했다.
“―로제레트 나하이벨이다.”
“네가 어떻게!”
“미안하지만, 나는 자네를 보러 온 것이 아니네. 내가 알현하려는
분은 여왕 폐하야. 그러니 잠시 가만히 있어 주겠는가.”
그렇게 말한 로제레트가, 실제로 쉬노어를 완벽하게 무시하며 글
렌시아에게 한쪽 무릎을 꿇어 인사했다.
“예와 법도에 어긋나는 일임은 알지만, 어떻게 해서든 존안을 뵈
야겠기에 이렇게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로제레트 나하이벨입니다.
아시다시피, 한때는 르웰의 재상이었지요.”
“……원래 이 자리에 있어야 할 병사는 어떻게 된 것이지요?”
“제 이름과 알현 목적을 말해 주자 흔쾌히 도와주었습니다. 여러
가지 있지만, 쉬노어 퀼튼이 돌아온 뒤 아무도 여왕 폐하를 알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그와 저의 의견이 확실히 일치했습니다.”
“내가 여왕 폐하를 가두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쉬노어가 말했다.
“그래서 이런 방법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옳은 일은 아니며,
처벌이 뒤따를 일이지만,”
“물론, 처벌을 받아야 할 일이다. 너 뿐 아니라 그 병사 또한.” 쉬
노어가 말했다.
“그것은 일단 제가 드리는 말씀을 들어보신 후에라도 늦지는 않
을 것입니다. 만일 들어보시고 합당하지 않다면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들으실 필요 없습니다, 여왕폐하. 저자가 어떤 자인지 아실 것입
니다. 저자의 입은 독사와도 같이 간교하며, 꿀 속에 독을 숨기는
자입니다. 들을 가치가…….”
“왕실의 위엄이 무너지고 있군요.” 쉬노어의 말을 끊으며 로제레
트가 말했고, 쉬노어가 조소하며 외쳤다.
“네가 옳게 말했다. 과연 왕실의 위엄이 무너지고 있지. 어떻게 알
현을 이런 참람한 방법으로 한단 말이냐. 여왕폐하, 이 자를 아직
용납하실 작정이십니까? 이 자는…….”
“나는 자네의 혀에 대해 말하고 있었네, 퀼튼.”
로제레트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이곳에 여왕 폐하를 보러 왔지 자네를 보러 오지 않았네.
내가 무례를 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여왕 폐하에 대해서지 자
네에 대해서가 아니야. 그러므로 내게 대답하고, 내 처우를 결정하
실 분은 오로지 여왕 폐하이시네. 물론, 자네는 여왕 폐하께 조언
을 드릴 수 있겠지. 그러나 그 조언이 강제성을 띤다면 그건 이미
조언이 아니라 강요네. 설마 자네는 여왕 폐하를 좌지우지하기라도
할 생각인가?”
“적어도 논지는 훌륭하군요. 좋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는 글렌시아였다. 때문에 로제레트도 쉬노어도 모
두 입을 다물었고, 글렌시아는 로제레트에게 물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들어보아야겠군요. 나를 보고자 한 이유는
무엇이지요?”
“송구스럽지만 먼저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여왕 폐하.”
로제레트는 차분히 답했다.
“폐하께서는 마족들에 대하여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것이 당신의 방문 목적에 크게 관계 있는 문제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좋아요. ……나는 마족들을 증오합니다.”
글렌시아가 조용히 답했고, 로제레트는 미소지었다.
“당연하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여왕 폐하. 마족들에게 맞서
싸워 승리할 길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잠시 동안 홀 안에 침묵이 깃들었다. “……그대의 말은, 설마.” 이
윽고 미간을 오므리고 글렌시아가 물었다. “2차 성전을 뜻하는 것
인가요?”
“그렇게 부르시겠다면, 적어도 그러한 의미입니다.”
‘실패는 한 번으로 충분한 거요.“
쉬노어가 말했다. 그는 이제 보다 차분해져 있었다. 얼굴을 찡그
리며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미 비싼 대가를 치렀소. 마족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들에게까지 가는 데에 너무도 많은 병력이 소모되었지. 프리크들이
길을 막고 있고, 그것을 뚫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오.”
“퀼튼의 말이 옳습니다, 나하이벨.”
글렌시아는 고요히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여력이 없습니다. 남은 병력으로는 왕국을
지키는 것도 고작입니다. 2차 성전은 무리입니다.”
“병력은 운용하기 나름입니다. 여왕 폐하.”
로제레트가 부드럽게 답했고, 쉬노어가 벌컥 소리쳤다.
“그대 말은, 내가 병력을 잘못 운용했다는 뜻으로 들리는군.”
“의도한 건 아니네. 하지만 그렇게 들렸다면 그 또한 사실이겠지.”
“어디서 궤변을 늘어놓는가!”
“자네의 자격지심 따윈 내 알 바 아니네. 대패 이후 왕국으로 돌
아와 왕국 재건을 핑계삼으며 목숨 연명하고 있다고 해도, 그 또한
내 알 바 아니고.”
이것은 조금 내용이 지나서, 로제레트가 왕국으로 가서의 이야기입니다.
바야흐로 부활이랄까요, 실은 영시에서의 로제레트는 여기서부터가 진짜입니다.
이 느물거림과 빈정거림이 맘에 듭니다 (...)
...라는 것으로, 맛보기는 여기까지.
뭐 스포일러라고 하기도 뭣하지만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