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키리
톰 크루즈 / 브라이언 싱어

 <발키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실화라는 무게가 전해주는 울림은 더욱 깊은 감동을 전달하지만,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다음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고 생각하며 가슴 졸일 여지를 없애버리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라 하더라도 흥미롭게 볼 수 있게 만드는 연출력인데,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흥미롭게 보게 해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도 있었군'이라 여길 정도로는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

 어쨌든 이 "발키리 작전"에서 실제로 히틀러가 죽지 않았다는 건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메시지는 어느 쪽인가 하면: "때로 우리는 다소 무모하더라도 옳은 일을 위하여 행동하여야 할 때가 있다." 라거나, "어느 쪽을 택하는가, 당신의 선택이다" 라는 느낌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죽었지만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으리라, 40년대 당시 미쳐 있던 독일에서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의인 10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식이랄까요.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슈타펜버그는 영어식 발음입니다) 대령과 "발키리 작전"에 대한 이야기 몇 가지를, 제가 가진 자료인 <타임 라이프 북스 - 제 2차 세계대전 - 나찌스 第3帝國>으로부터 인용해 적어두겠습니다. 아마 영화만 보신 분들이 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실 듯합니다.


 ··· 시타우펜베르크 (Neissy 주: 책이 오래된 것이라 시타우펜베르크라 적혀있음. 책에 있는 그대로 옮깁니다)는 우수한 참모 장교였다. 동료는 그의 모습을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클라우스의 방문을 열면 그는 반드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산더미처럼 서류가 쌓여 있었고, 그는 왼손에는 전화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연필을 들고 앞의 서류에 뭔가를 써넣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 찬 태도로 지껄이고 평소와 같이 크게 웃고 있는가 하면, 금시 돌연 나무라는 소리를 지르거나 명령을 내리기도 하고 있었다. 클라우스는 어려운 일을 몇 가지씩이나 동시에, 그것도 그 각각에 전력을 집중하여 할 수 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

 ··· 이전의 계획에서 히틀러에게 대하여 사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영국제로서 일종의 플라스틱 폭탄이었다. 이 폭탄엔 금속제 껍질이 없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폭풍의 효과에 의존하고 있었다. 신관은 소리도 연기도 나지 않았다. 작은 유리 캡슐이 부서지면, 산성액이 유출되고, 그것이 용수철을 누르고 있는 와이어를 부식시켜 자른다. 이 과정이 끝나면, 용수철이 격철을 뇌관 속에 밀어넣어 폭탄을 파열시킨다. 기폭장치는 10분간에 장치되었다.
 시타우펜베르크는 때때로 세 손가락으로 뻰찌를 들고 유리 캡슐을 부수는 연습을 해 왔다. 그는 이제는 수초 내에 브리프 케이스를 열고 뻰찌를 쥐고 캡슐을 부술 수가 있게 되어 있었다. ···

 ··· 1944년 7월 20일 낮 12시 42분, 폭탄은 파열했다. 시타우펜베르크가 훗날 얘기한 바에 따르면, 그것은 마치 전황보고소가 150mm 포탄의 직격을 받은 것과도 같았다. 천정엔 구멍이 뚫리고, 닫힌 창에서 유리가 부서져 날고, 내부에서 부상자와 빈사 상태에 빠진 사람의 신음 소리와 절규의 소리가 들려왔다. 시타우펜베르크는 손가락으로 담배를 튕겨 내버리고 승차했다. 틀림없이 히틀러는 죽었다. ···

 ··· 시타우펜베르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으나, 히틀러는 놀랍게도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 폭발 순간, 그는 지도를 조사하기 위해 테이블 위로 몸을 내밀고 있었다. 테이블의 두꺼운 위 판자가 폭탄에 대해 완충효과를 발휘했다. 게다가 브란트 중령이 시타우펜베르크의 브리프 케이스를 이동시켰기 때문에, 우연히도 테이블의 완강한 나무 받침대가 총통에겐 또 하나의 방패가 되었던 것이다. ···

 ··· 시타우펜베르크는, 장거리 무선장치가 없는 비행기로써 긴장감으로 가득찬 여행을 마친 뒤, 드디어 3시 45분 랑그스도르프 비행장에 착륙했다. 올브리히트에게 전화를 걸어 무엇 하나도 실행되어 있지 않음을 알고서, 그는 크게 동요했다. 쓸데 없는 말은 일절 하지 않고, 시타우펜베르크는 올브리히트에게 히틀러는 죽었다고 보증하고, 발키리 작전을 즉시 개시하도록 재촉했던 것이다.
 올브리히트는 신속히 행동했다. 그러나 방향을 잘못 잡고 있었다. 그의 최초의 치명적인 행위는, 자신의 상사인 예비군 사령관 프리드리히 프롬 대령에게 간 것이다. 살찌고 붉은 기가 도는 얼굴의 프롬은, 훨씬 전부터 반란이 준비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종종 대의를 위해 협력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양다리를 걸친 자여서, 확인전화를 요구했다.
 불과 2~3분전 총통의 명령으로 라스텐부르크의 통신이 원상복구되어 있어서, 놀라서 말도 못하고 올브리히트는 수화기를 프롬에게 건네줬다. 카이텔의 목소리가 "히틀러의 목숨을 노린 사건은 있었으나, 총통은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엔 귀빈인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뭇솔리니를 접객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

 … 벡크는 프롬의 자살허가를 받았다. 프롬의 강압적인 명령으로 폰 시타우펜베르크 백작, 올브리히트, 해프텐과 또 한 사람의 모반자는 가운뎃뜰로 끌려 나갔다. 거기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빛을 받으며 총살대에게 처형당했다.
 프롬장군도 너무나도 오랫동안 지나치게 반란을 갖고 놀았던 탓으로 1944년 7월 20일의 운명적인 날에 뒤이은 대학살 때에 처형당했다. …

 … "시타우펜베르크 백작 일족은 뿌리채 일소될 것이다"라고 하인리히 히믈러는 맹세했다. 독일 전역에서 시타우펜베르크라는 성씨가 붙은 사람은 남김 없이 남녀, 어린이를 불문하고 체포당했다. …

- 나찌스 第3帝國, pp.189-193


 그리고 아래는 책으로부터 스캔한 사진 몇 장입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