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나
제니퍼 암스트롱 외 지음, 임옥희 옮김/비룡소

 300페이지가 안 되는 책에 12명의 작가들이 쓴 단편이 실려 있는 짤막한 단편집입니다. 처음에 저는 꽤 많은 기대를 했는데요, 아이들의 시선으로 전쟁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고 해서 아주 신선한 경험을 제공하려니 싶었기 때문이었죠. 따져보자면 그런 경험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완전히 제 기대에 부흡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원인을 일단 좀 짚어보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이 단편들이, 모두 온전히 작가 자신의 경험으로 쓰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 단편들 중 어떤 것은 남북전쟁 이야기도 적혀 있으니까요. 하지만 작가 자신이 경험한 일을 쓰는 것과, 들어서 안 것을 쓰는 것에는 아무래도 차이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법이죠.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을 다룰 때는 더더욱 그렇고요. (전쟁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전쟁에 대해 현실감있게 다룰 수 있을까요? 전 회의적입니다) 게다가 이 단편집의 문체가 이를테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101가지 이야기> 식, 무겁기보다는 오히려 따뜻함을 담은 문체라는 것도 제게 이 단편집을 온전히 마음에 들지 못하게 하는 이유로 작용했습니다. 제게는 이 단편들이, 실제의 경험을 적었기보다는, 작가들이 실제의 사건에서는 한 걸음 떨어져서 그저 알려주기 위해 적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자서전을 대필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다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만) 소설의 경우에는 이런 종류의 현실감이 중요한 법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좀 심하게 개인적인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전쟁─ 6 · 25를 겪은 지 불과 육십 년밖에 지나지 않은 우리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전쟁의 고통에 대해 말하는 미국인의 모습이란 아무래도 덜 진지한 것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공산 국가와 싸우며 이데올로기 문제를 겪기는 했지만 우리 나라만큼 심각하진 않았고, 그들이 여기저기 전쟁에 끼여들거나 벌이긴 하지만 본토 전체가 전화에 휘말리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했으니까요. (남북전쟁이 있긴 했지만 확실히 한국전쟁보다 꽤 오래돼다보니 그들에겐 남북전쟁이 우리가 한국전쟁에 대해 여기는 것보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모양입니다)

 해서 그런 탓에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쯤 읽어볼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전쟁이 어떻게 일상을 파괴하는가, 또한 전쟁의 피해자들은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가에 대하여 나름 생각해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위에 미국인들의 입장 어쩌구 말하긴 했지만 이 단편집이 미국인들의 시각에서만 쓰여지진 않았어요. 1978년 발발해 10년이나 전개된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대해 아프가니스탄인의 입장에서 쓰여진 <헤다이트, 너 어디에 있니>가 그 좋은 예입니다. (이 소설집에서 단 하나만 추천해보라면 전 이걸 들겠습니다. 그리고 이게 이 단편집의 제일 첫머리에 놓여있죠) 소설의 좋은 장점 중 하나는 독자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간접경험시켜주는 것이고, 이 단편집은 간접경험을 충실히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괜찮다고 할 만하겠군요.


 덧. 제가 느끼는 문체의 가벼움은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의 대상 연령이 청소년이기 때문이죠. 비룡소에서는 이걸 청소년 문학선으로 내었고, 이 책을 엮었다고 할 만한 사람인 제니퍼 암스토롱은 후기를 '여러분도 이런 걸 알아야 해요' 라는 느낌으로 적었죠. 그러니 <하얀 전쟁>이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같은 걸 좋아하고 있는 저한테야 (아, 게다가 가장 최근에 읽은 전쟁 문학이 <카탈로니아 찬가>였군요 (...))문체가 가볍게 여겨질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그런 만큼 또 이런 문체가 편하게 받아들여질 사람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는 정도는 덧붙여두겠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