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 한 잔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데니스 루헤인의 하드보일드,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첫 권이며, 데니스 루헤인의 데뷔작입니다. 잘 써냈습니다. 의뢰 → 숨겨진 진실 → 적당한 액션 → 진상에 도달이라는 장르문학의 기본 공식에 더불어 인종 차별이니 갱이니 아동 학대니 하는 소재를 맛깔나게 잘 버무려놔서, 비교적 편하게 읽으면서도 또 생각할만한 거리를 던져주는 괜찮은 소설을 만들어놨어요.

 켄지&제나로 시리즈는 이 책 외에는 <비를 바라는 기도>[각주:1] 한 권만 읽어보았는데, 그것이나 이것이나 사실 감상은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기본은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거기에 현대인이 생각할만한 문제거리를 잘 섞어놓았고, 터져나오는 액션은 영화 뺨치게 강도가 세고 화려하다" 이 소설의 액션에서는 M16이나 UZI 등이 나오는데 갱 영화 저리가라 할 정돕니다. <비를 바라는 기도> 때에도 '이거 액션이 센데?'라고 느꼈는데 데뷔작인 <전쟁 전 한 잔>에서부터 이미 심상치않군요. 갱 간의 '전쟁'입니다. 데뷔작에서부터 이리 터뜨려 놓았으니 후속작에서 그보다 얌전할 수가 없겠지요.

 이 감상의 제목을 할리우드 하드보일드라고 적어놓았는데, 전 이 말이 좀 마음에 듭니다. 영화화하기 좋은 소재, 액션, 그리고 문장을 지니고 있어요. 이 소설의 문장에는 영화의 기법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액션에서 더욱 그런 느낌이 나요. 어느 쪽이냐면 애당초 액션 연출 자체를 영화에서 많이 얻어왔다고 느껴집니다. 읽다 보면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달까요.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는, 인종 차별 & 갱 & 학대 등의 소재가 들어가있지만, 글 자체는 그다지 무겁지 않습니다. 무겁게 읽어나가기에는 주인공인 패트릭 켄지의 어조 자체가 활달합니다. 활달하다고는 해도 하드보일드 내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만, 이 주인공의 삶이 어둡기는 한데 어둡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액션 영화 주인공의 어두움 정도랄까요. 필립 말로나 루 아처 같은 세심함이나 묵직함보다는 마이크 해머 같은 화끈한 경파함이 엿보입니다. 전쟁 전에 한 잔 하고 시작하자고요.

 화끈하다 하면 주인공들이 대체로 다 화끈합니다. 패트릭 켄지 & 앤지 제나로. 주인공 패트릭은 그렇다치고 여주인공인 앤지도 만만찮은 인물은 아니죠. 딱부러지는 여자. <비를 바라는 기도>만 읽어보았던 입장에서, 여기에선 다른 사람과 결혼한 상태인 앤지가 좀 뜻밖이었습니다만 (유부녀였단 말인가!) 어쨌거나 참 그녀답지 않게 살고 있다 느껴졌지만 또 참 그녀답게 마무리를 하더군요. 아, 그리고 화끈하다 하면 역시 부바 로고프스키를 빼놓아선 안 되겠죠. 제 친구는 이걸 켄지&제나로 시리즈가 아니라 켄지&부바 시리즈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이 시리즈의 액션성을 강화하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하는 친구가 바로 주인공들의 친구인 부바 로고프스키입니다. 무기업자이자 머리보다 행동이 앞서는 남자. 위에서 미키 스필레인의 마이크 해머를 언급했는데, 마이크 해머가 훨씬 더 격투와 무기에 익숙하고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 사용한다면 이런 남자가 될 겁니다······ 주인공들의 든든한 친구이며 비빌 언덕이죠. 터미네이터 같은 남자입니다. 생각하며 추리해나가는 하드보일드의 틀 안에서, 할리우드 영화 같이 다 때려부수는 액션신을 만들어보자면 이런 남자도 필요할 겁니다.

 개성 강한 인물들, 적절한 추리 요소, 화끈하게 때려부수는 액션성, 생각해볼 사회 문제. 이 모든 것들을 잘 섞어놓았으니, 이런 소설이 인기를 끌지 않았다면 아마 그게 더 이상하겠습니다······ 데뷔작이라니, 아니 이게 데뷔작이라니, 좀 너무할 정도네요. 이 시리즈는 이미 이 첫 권에서 완성되었습니다. 하드보일드 좋아하십니까?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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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5번째 권이자 현재 출판된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마지막 권. 국내에는 4번째인〈가라, 아이야, 가라〉와 5번째인〈비를 바라는 기도〉만 출간되었었고, 최근 들어서야 1번째인〈전쟁 전 한 잔〉부터 순서대로 출간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