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이 책을 처음 집어 들고 받은 인상은 이렇습니다. "두껍다." 네, 많이 두꺼워졌습니다. 전작인 <전쟁 전 한 잔>이 357페이지였던 데 비해, 그 후속작인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는 530페이지로 전작의 ½ 분량이 늘었습니다. 이 정도로 두꺼워지면 아무래도 읽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만,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데 든 시간 자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전쟁 전 한 잔>과 비슷한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을 겁니다. 그건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는 두껍지만, 밀도가 높진 않다.

 밀도가 높지 않다는 게 꼭 단점은 아닙니다. 깊이 있게 한 장 한 장을 읽어 나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장점이 못 되지만, 쾌속 질주하는 하드보일드를 읽고 싶은 사람에게는 장점일 수도 있습니다. <전쟁 전 한 잔>이 밀도 있는 영화였다면,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는 드라마입니다. 상대적으로 편하게 읽히죠. 글쎄, 저로서는 아무래도 읽으면서 '좀 더 압축할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인상을 받긴 했습니다만, 그런 건 개인의 취향 문제니까······.

 소재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전쟁 전 한 잔>의 소재가 인종 차별 & 갱 & 학대였다면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는 살인 그 자체를 소재로 합니다. 패트릭의 말을 빌면 '비인간화'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평화스러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간단히 폭력에 의해 그 삶을 파괴당하는가, 그리고 폭력이란 어떻게 전염되며, 인간다움의 실체란 얼마나 흐릿한가. 폭력은 폭력을 낳고, 일의 해결 방법도 결국 폭력인 이러한 세계에서 패트릭 켄지 자신은 그가 상대하는 악당들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괴물을 잡기 위해 그 자신도 괴물이 되진 않았는가. 그러한 의문들을 던집니다. 좀 더 인간 내면으로 파고들죠. 아주 깊숙히, 폐부를 찌를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악당을 폭력으로 쓰러뜨리는 마무리에 쾌감을 느껴왔던 독자를 조금 찔끔하게 만들 만큼은 됩니다.

 아, 동성애도 소재로 등장합니다. 어느 쪽이냐면 동성애에 비교적 중립적 인상을 보이긴 하는데, 작가 자신의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 어떤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여하간 그냥 소잽니다. 이 소재에 대해 심각하게 던져준 내용은 '남 일이면 용납하고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어도 자기 자식 일이 되면 그리 쉽지 않다' 정도가 아닌가 싶은데, 사실 이 소재는 소설 전체의 줄기와 그리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있지는 않아서 이 내용이 없었다 해도 소설 전개에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어느 등장 인물의 행위의 동인으로 작용하긴 합니다만 다른 이유였어도 아마 무방했을 겁니다. 그런 정도.

 패트릭과 앤지 사이에는 어쨌든 발전이 있습니다. 발판을 한 단계 올랐다는 느낌인데, 이 뒤로 작품이 더 나오는 걸 제가 알고 있어서인지 아닌지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만, 이 책 자체로 마무리지어도 좋도록 끝냈다기보다는 다음에 더 나올 걸 염두에 두고 써냈다는 인상이 듭니다. 그저 인상일 뿐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누군가는 죽어버렸고, 그 죽음을 그들은 끌어안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지요, 그리고 한 사람이 두 사람 이상을 사랑한다는 일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ㅡ랄까 흔한 일이죠.

 나름 재미있게는 읽었습니다만, <전쟁 전 한 잔>을 읽지 않으신 분은 우선 그쪽을 먼저 읽고, 그쪽이 마음에 든다면 그 후속 이야기로 즐긴다는 기분으로 읽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 책 단독으로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다만 전작을 읽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아마 다음 권도 읽고 싶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