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문학동네

소설이라기보다 거대한 은유라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든 책입니다. 두 시간도 안 되어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읽히는 책입니다만 담고 있는 내용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이 소설에는 산티아고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자신의 보물을 찾기 위해, 그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 여정 자체를 포함하여, 그가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겪게 되는 각종 일들의 비유가 됩니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있을 법한 이야기'라기보다 '작가가 자신의 말을 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느낌이 훨씬 강했습니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잔뜩 있기 때문에 그걸 소설을 통해 말하는 느낌이랄까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었을 때에도 그랬지만, 이 작가는 지금 우리가 고생해 갖고 있는 현실이 부서질까 염려해 꿈을 잃는 삶을 경계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연금술사>에서는 주인공 산티아고가 고생하여 얻어낸 어떤 것들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가를 여러 번에 걸쳐 보여 줍니다. 진정으로 의지할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죠. 사막에서의 연금술사와의 대화에서 (212p) 산티아고가 "내 마음은 고통받을까 두려워하고 있어요." 라고 말할 때 연금술사는 이렇게 답합니다: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

그러나 이러한 내용만이 전부라면 재미있는 소설이기는 어려웠겠지요.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아 나서는 여정, 스페인으로부터 아프리카로, 그리고 사막을 넘어 이집트까지 이르는 동안의 사건과 풍경은 은유의 느낌을 강하게 풍기기는 해도 그 자체로 재미있습니다. 이를테면 <천로역정>이나 <나니아 연대기> 등이 은유이지만 그 이야기 자체로도 재미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겉에 설탕을 바른 약처럼,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임에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이 프랑스어로 번역된 포르투갈어 원본을 한국어로 중역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번역자 소개를 보다 보니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사람이 번역자라 '어라 이거 프랑스 소설이 아닌데 왜 불어불문학과 졸업자가 번역을 했지?' 하고 보니 프랑스어판을 중역한 것이더군요. 번역이란 손실 변환인 법인데 그걸 두 번 거쳤으니 문장의 맛이 좀 더 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가능하다면 원본으로부터 직접 번역한 것을 읽고 싶다는 사소한 (실은 사소하지 않은) 바람이었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