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미야베 미유키 지음/청어람미디어

<화차> 때에도 그러했지만 확실히 이 작가는 사회 문제를 잡아내는 것과 사람들의 삶을 보여 주는 데에 재능이 있습니다. 추리 소설이라기보다는 순소설에 미스터리 형식을 빌려 왔다고 하는 편이 보다 어울리는데, 이 <이유>의 경우에는 미스터리라는 말을 붙이기도 애매해져 있습니다. 소설 뒤에 붙어 있는 해설의 설명을 따르자면 이 소설은 르포르타주 (reportage)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네이버 백과사전의 설명을 붙여 보면 르포란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 (reporter)가 자신의 식견을 배경으로 하여 심층취재하고 대상의 사이드 뉴스나 에피소드를 포함시켜 종합적인 기사로 완성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오히려 이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도 '이미 끝난 사건'을 파고들어 여러 사람의 증언을 취하고 사건을 다시 구성하는 보고서의 형식을 가졌으며, 그 형식으로 인해 현실성이 좀 더 부여되는 대신 기술적으로 처음부터 독자는 사건과 거리감을 가지게 되는 단점도 지닙니다. 다만 작가는 처음부터 이 글을 독자가 좀 거리감을 갖고 차분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하려고 쓴 듯한 느낌이니 그게 딱히 단점이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군요.

이 소설은 '아라카와 일가족 4인 살인사건'이라는 가공의 사건을 소재로 이 사건과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해 사건을 샅샅이 재구성합니다. 실제의 우리들도 (비록 평소에는 잊고 지낼 수도 있지만) 주지하다시피, 어떤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 그 사건에는 오로지 가해자와 피해자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그 가해자가 그 때 그곳에 있었고 그런 사건을 벌이게 된 이유, 피해자가 그곳에 있었고 그런 일을 당하게 되었을 이유, 그리고 그들과 관계되어 그들이 그 일을 당하기 직전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삶이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타인과 관계 맺고 살아갑니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관계들 속에서 '사건'의 진정한 모습을 담아 내기 위해 <이유>는 그 여러 가지 삶의 모습 -관계맺고 관계맺어지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바로 우리들의 삶- 을 하나 하나 훑어 갑니다. 르포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거리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인물 하나하나가 살아 있으며 실제로 그곳에 있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은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바로 위 문단에서 '여러 가지 삶'을 보여 준다고 말했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주제를 특정짓기는 힘듭니다. 어떤 사람의 삶에서든 주제를 뽑아낼 수 있으며, 실제로 그 주제는 얼마든지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 사람의 삶을 꼼꼼하게 그려내어 살아 숨쉬게 하고, 인간이란 어떻게 서로와 관계 지으며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이 자체로 하나의 주제가 될 수도 있겠군요. 말하자면 '아라카와 일가족 4인 살인사건'을 중심에 두고, 그와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된 여러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인간극장인 셈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여러 가지 삶들을 보다 보면, '겉치레에 물들어,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한 삶을 살아 보아야 행복해질 수는 없다'라는 <화차>에서도 있었던 메시지도 일관되이 전해지고, '사람이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그리고 또한 작가 나름의 해답이) 전해져 옵니다. <화차> 와 더불어 <이유>까지 두 권을 읽었을 뿐이기에 확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본질을 흐트러뜨리게 만드는 사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그래서 소설에서 그것을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 사건 자체는 꽤 끔찍한 편인데도 사건 자체의 인상이 그다지 강하게 전해져 오지는 않았습니다. <화차> 때에도 그러했습니다만 살인 사건 자체로도 충분히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사건인데 그 사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게 만드는 원인' 쪽에 훨씬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인상을 주더군요. 사건을 언급할 때 서술로 간단하게 넘긴다는 뜻은 사건은 어디까지나 생각을 하게 만드는 방아쇠이며, 정말로 생각을 하게 하고 싶은 부분이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그와 더불어 문체 자체도 기본적으로 따스한 편이기 때문에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는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무겁다'는 생각은 의외로 들지 않습니다. 중시하는 부분의 문제이겠지요.

읽 고 나면 사회를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소설들이 간혹 있으며, <이유>는 그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보다 긍정적이라는 점에서 저는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군요.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 중 망설이고 있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