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 -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
프랭크 밀러 외 지음, 김지선 옮김 / 세미콜론

右 - 배트맨 허쉬
밥 케인 원작, 제프 로브 글, 스콧 윌리암스.짐 리 그림, 박중서 옮김 / 세미콜론

 간단하게 감상할 작정이어서 두 개를 합쳐 감상합니다. 일단 두 작품 모두 '단순히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써서 싸우는 하드보일드 히어로'라는 배트맨의 매력을 꽤 잘 살렸습니다. 영화 <다크 나이트> 감상을 할 때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단순히 힘이나 돈빨로 밀어붙이는 않고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고뇌하는 게 제가 배트맨에게 반한 이유죠.

 배트맨은 실제로 힘 자체는 대단한 히어로가 아닙니다만 상대의 약점을 찾아 그 부분을 공략하는 맛이 잘 살아나기 때문에 결코 무시못할 히어로가 됩니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운다면 능력적으로는 배트맨이 슈퍼맨을 절대 이길 수 없음에도 종종 승리하는 게 그런 이유에서죠. 재미있는 점은 이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배트맨 허쉬> 둘 다에서 배트맨과 슈퍼맨의 싸움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스티스>에서도 한 판 붙었군요. 물론 이게 가능한 이유는 슈퍼맨이 진심으로 배트맨을 죽이려고 달려들지 못하기 때문인데, 그에 대해 배트맨은 허쉬에서 다음과 같이 독백하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었더라면, 클라크는 자신의 슈퍼스피드를 이용해서 나를 시멘트 속에 처박아버렸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 알았다. '크립토나이트'말고도, 그에겐 한 가지 큰 약점이 있었다. 속을 들여다보면, 클라크는 근본적으로 선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배트맨의 팬들은, 설령 그의 적이 슈퍼맨이 된다 하더라도 배트맨이 그의 약점을 공략하여, 그리 순순히 당해주지만은 않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뭐 저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만.

 흠, 우선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일단 먼저 밝혀두면 영화 <다크 나이트>와는 전혀 관계 없습니다. 물론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다크 나이트'라는 호칭 자체가 본디부터 배트맨의 또 하나의 호칭이죠. (이를테면, 여담입니다만, 배트맨 만화 중에는 Legends of the Dark Knight라는 만화도 있습니다) 자, 그럼 왜 다크 나이트 '리턴즈'냐? 나이를 먹고 은퇴했던 배트맨이 다시 돌아온 이야기라 그렇습니다. 이분이 나이를 먹더니 옛날에는 간단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이 이제는 힘들다며 독백하는 문장이 여기저기에 보입니다. 한때는 전설이었던 남자이지만 (여전히 건장하다고는 해도) 노인이 되어 싸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뭐 그건 그렇다치고.

 은퇴했던 배트맨이 돌아오자 잠잠했던 숙적들도 다시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배트맨의 존재가 오히려 악을 불러들인다'는 이야기도 좀 나옵니다. '배트맨 역시 기본적으로 법을 무시하고 사적으로 정의를 해결하려는 존재이기 때문에, 공적인 정의를 무너뜨린다'는 소리죠. 글쎄, 무엇이 옳을지는 좀 생각해볼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시민이 히어로가 될 때에 비로소 히어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것도 그렇다치고. 어쨌든, 여기서의 배트맨은 꽤 거칩니다. 특히 조커와의 싸움을 마무리지을 때는······ 흠, 좀 충격적이었죠. 이에 대해서는 직접 보시는 쪽이 좋겠습니다.

 그림 이야기는 좀 덧불여둬야겠군요. <신시티>를 그린 프랭크 밀러의 그림이라고 해서 기대하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큰 기대를 가지시면 안 됩니다. 오래된 작품이거든요. 그림체도 색감도 80년대의 것입니다. 보기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 시점에서 '오 멋지다'고 생각될 그림은 못 됩니다. 굳이 말하라면, 어딘가 바랜 느낌이 듭니다. 살 생각이 있다면 미리 염두해 두시는 쪽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허쉬>는······ 말 그대로 최근의 만화여서, 분위기나 그림체가 세련됩니다. 짐 리의 그림체는 미국 만화답고, 그의 그림에 색을 입힌 알렉스 싱클레어의 감각도 훌륭합니다. <저스티스>가 리얼계라면, 이쪽은 카툰 계열이군요. 내용은 적당히 숙적들이 나와주고, 밑바닥에 깔린 모종의 음모를 파헤치고, 적당한 (위에서 언급했듯 슈퍼맨과의 빅매치도 포함한) 액션과 적당한 러브신 (캣우먼이 좀 예쁘네요)이 적절하게 조합되어있어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배트맨을 부를 때 탐정 (The detecive)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호칭이 배트맨의 속성 중 하나를 적절하게 설명해 주는군요. 어쨌든, <허쉬>는 일단 그림의 퀄리티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만화입니다. 배트맨을 좋아한다면 아마 꽤 마음에 들 겁니다. <저스티스>처럼, 그림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거든요.

 개인적으로는 <허쉬>쪽이 더 마음에 들긴 합니다만, <다크 나이트 리턴즈>도 볼만하긴 합니다.


 덧. <허쉬> 초반부에 나오는 조무래기 악당의 머리띠에 '이용철'이라는 말이 쓰여 있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했더니 짐 리의 본명이 이용철인 모양이더군요. (원화를 그린 짐 리는 한국계로, 서울 출신이랍니다) 작가가 만화에 등장해서 캐릭터에게 얻어맞는 시추에이션이라니, 옛날 만화에서는 종종 봤지만, 푸하 (...)
Posted by Neissy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