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럭저럭 모은 무술책들.
본격적으로 모으는 사람에 비하면 그리 많은 양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만..
#
저는 무술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합니다. 당연하게도 무술책도 제법 사게 됐죠. 사실 이런 책들이 아니더라도 무술 관련한 것들은 기본적으로 다 좋아합니다. <권법소년>이나, <사상 최강의 제자 켄이치>나, <공수도 소공자 코히나타 미노루>나, <홀리랜드>나, 뭐 그런 것들이요.
다만 예나 지금이나 한 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그건 '책을 읽는 건 재미를 위한 것이지, 책으로 무술을 배울 수는 없다'였습니다. 실제로 뭔가를 제대로 배워보지 못하면, '책으로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정말 뭔가를 제대로 배워 보면 책에서 보여주는 것은 실제 수련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일 뿐이며, 그나마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무술책은 어디까지나 약간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이지, 제대로 이끌어줄 수 있는 사부가 아닙니다.
물론 저도 아주 꼬꼬마 시절에는, 무술책을 사서 동작을 따라 해본 적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그걸로 제대로 싸울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결정적인 상황에서 그 동작을 믿고 쓸 수 있다는 신뢰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부딪혀보지 않고, 기술을 다듬지 못하고, 무얼 어떻게 해야 나아지는지, 뭐가 제대로 된 건지 알 수 없었죠. 그냥 친구들하고 장난치는 거야 가능했지만, 그게 제대로 쓸 수 있다는 뜻은 아니죠.
#
무술책으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가? 사실 독학이 가능한 분야가 있고 불가능한 분야가 있는데, 무술은 그중 독학이 불가능한 분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책으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책으로는 무술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죠!
..조금 성실하게 쓸까요? 일단 무술책이라고 한 번에 뭉뚱그려 말했습니다만, 무술책에도 몇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기술을 전하는 책, 사상을 전하는 책, 일화를 전하는 책 등이 있죠. 보통 말하는 무술책은 아마 기술을 전하는 책일 테고, 이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기술을 전하면서도 사상과 일화를 전하는 책도 있긴 합니다만, 좀 드물긴 하죠.
기술을 전하는 책은, 유튜브의 홍보 동영상 같은 존재입니다. '아, 이 무술이 이런 식이구나.' 하고 알려주는 홍보 대사와 같은 역할을 하죠. 그걸 잘 따라하면 뭔가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긴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배웠다고는 말할 수 없죠. 애초에 그걸로 배우라고 한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건 '이런 식으로 합니다. 원하신다면 흉내 내셔도 괜찮아요. 아마 제대로 쓰긴 어렵겠지만요. 정말 마음에 드셔서 진짜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드시면, 제대로 도장을 찾아서 배우세요!'라는 것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그 무술을 배우는 입장에서, 그 무술의 기술을 전하는 책은.. ..사실 크게 쓸모는 없습니다. 어차피 도장 가면 다 배우고, 더 자세히 배우고, 제대로 교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책이란 어쨌거나 그 무술을 잘 아는 사람이 신경 써서 정리한 것들입니다. 도장에서 배우는 것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죠. 그 무술이 정말 좋고, 즐거워서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을 때, 또다른 무언가를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 무술의 사상이나 일화를 말하는 책도, 비슷한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걸 모른다고 그 무술을 배우는 데 지장이 생기진 않아요. 양찬이 누구인지, 진화순이 누구인지 몰라도 (영춘권에 어지간히 관심이 있지 않으면 이분들이 누군지 모를 겁니다) 영춘권을 배우는 데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알면 좀 더 재미있죠. 내가 배우는 무술이 이런 식으로 이어져 왔구나, 그분들은 또 그렇게 영춘권을 해왔구나, 하고요. 무술을 배우는 건 단순히 기술을 습득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어져 내려온 경험을 받는 것이기도 하죠.
#
그와 마찬가지 이유로, 다른 무술의 책이라도, 사상이나 일화는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재미있는 부분도 있어서 그냥 흥미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읽어볼 만합니다. 기술이나 이론 측면에서는.. '다른 무술이라도 역시 사람이 사람의 몸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만든 것인 만큼, 통하는 게 많구나'하고 느끼긴 합니다만, 딱히 그걸로 뭘 배우는 건 아니라서 아주 큰 의미는 없긴 하네요.
책으로 다른 무술의 기술을 보는 게 가장 의미 없는 일인 게, 그걸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형태만 아는 것인지라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책으로 그 기술을 봤다고 거기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죠. 결국 실제로 부딪혀가며 해보지 않으면 못 합니다. 그래서 정말 별 의미 없습니다만..
..재밌잖아요, 다른 무술 구경하는 거. (히죽)
그래서 종종 다른 무술 책도 보곤 합니다. 뭐랄까, 그냥 인터넷에서 타무술 영상 보고 타무술 블로그 보는 거랑 비슷하네요. 딱히 뭘 배울 건 없지만, 보면 그냥 재밌거든요. 역시 제가 무술 덕후다 보니 말이죠.
#
해서 여전히 타무술에도 이래저래 흥미는 있습니다만, '타무술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 바닥은 좁고, 제가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 제 블로그에 찾아올 수도 있으며, 제가 적은 글이 제 의도와 다르게 읽히고 전달될 가능성도 없지 않겠죠. 그래서 항상 조금은 조심스러운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