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할 때는 잘된다고 생각하던 것이 긴장된 상황에서는 잘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건 원래 실력이 있었는데 긴장돼서 실력이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본래 문제가 있었는데 어물쩍 넘어갔던 부분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본다. 긴장되거나 긴장되지 않거나, 정신이 있거나 없거나, 화가 났거나 침울하거나 등에 상관없이 몸에 이미 배어 있어서 그렇게 움직여 버리고 마는 것만이 진짜다.

실은 평소에도 집중했어야 했을 부분을 괜찮다고 생각해서 넘겨버린 것들이, 정말로 자신의 것이 되어 있는지 시험받는 상황에서는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니 긴장된 상황에서 무언가가 잘되지 않는다면, 그건 '원래 나는 할 수 있는데'가 아니라 '아직 이런 것들이 모자랐구나' 하고 다시 잡아야 한다. 몸은 정직하다. 정말로 계속해서 배어 있는 것이 아니면 쓸 수 없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나 긴장이 어느 정도 몸을 굳게 만드는 건 사실이고, 그게 주는 영향이 또 전혀 없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결국, 무술이란 그런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익숙한 것을 쓰기 위해 평소에 연습하는 것이다. 내가 긴장하든 긴장하지 않든 몸이 그냥 그렇게 움직여 버리는 수준을 노리지 않으면, 무술을 위급한 상황에서 쓰기 위해 연습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생각하던 것을 문득 정리했다. 아무리 봐도 연습이 모자라다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고 나는 나지. 내가 목표로 하는 길은 끝이 없고 여전히 멀다.

Posted by Neissy

저번에는 50cm, 이번에는 25cm 눈이 내렸다. 내렸다 하면 폭설인 이번 겨울이라 눈을 원없이 치우고 있는데, 눈을 치우고 있다 보니 눈삽을 미는 자세가 영춘권 자세로부터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사실 딱히 의식한 건 아니었는데 이젠 그 자세가 힘 내기 편하더라.

중심을 낮추고, 팔을 몸 앞에 두고 공간을 만들며 힘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면서 몸 전체로 힘을 쓰는 자세. 치워야 할 눈 양이 워낙 많다 보니 이렇게 하더라도 뻐근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몸 특정 부분이 피로해지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피곤해지는 것이니 힘을 쓰는 상태로서는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상에서의 활용이야말로 나에게 있어서의 실전이다... ...같은 말을 할 생각은 아니지만, 어떤 영역에서건 영춘권이 몸에 배인 실감이 나면 꽤 즐겁다. 의식하지 않고 움직여도 몸이 영춘권적으로 움직이면 그게 최상이니까.

Posted by Neissy

영춘권의 대인수련에서 치사오는 높은 비중을 갖고 있다. 치사오가 대인수련의 전부는 아니지만, 영춘권을 영춘권답게 다듬는 데에 치사오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치사오는 다소 약속대련의 성격을 띤다.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당해주는 건 아니지만, 일단 상대가 치고 들어왔을 때는 기술을 받아주는 성격이 있다는 의미에서다.

이건 기술 향상을 위해 당연한데, 어설픈 기술을 무조건 무너뜨린다면 아직 어설픈 상태에서 그 수준을 올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에 따라 적절히 수준을 올려가며 받아주는 정도를 조절한다.

다만 언제까지나 지나치게 받아주기만 하는 경우로 가면, 들어가지 않을 공격을 공격이라며 하고, 들어오지 않을 공격을 받아주는 데 익숙해지는 상황이 생긴다. 그런 건 연습을 위한 연습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연습할수록 잘못된 감각을 몸에 배게 만들 뿐이다. 결국 공격은 제대로 하고, 방어도 제대로 해야 한다. 그 강도를 조절할 뿐이다.

무술을 잘 모르는 사람의 경우, 서로 있는 대로 강하게 치는 걸 실전적이라고 여기는 일이 있는데, 그렇게 치고받는 경험 자체는 필요하지만 그걸 그리 자주 할 필요는 없다. 일단 그런 스파링이 너무 많으면 몸이 못 버티고, 그 스파링이 기술 향상에 기여하는 부분도 의외로 그리 높지 않다.

기술 향상에는 적당히 서로 아프지 않게 조절하는 스파링이 좋다. 적절한 긴장감을 주면서도, 몸을 제대로 쓰는 방법과 타이밍을 익힐 수 있다. 이런 스파링도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기본은 같다. 허술하진 않지만 억지로 하지 말 것, 승패를 겨루는 게 아니라 서로 다듬는 것임을 잊지 말 것.

그런 연습으로 치사오는 매우 좋은 수련법이다. 한마디로 치사오라고 말해도 실은 치사오를 하는 방법이나 수준에서 이런저런 조절이 가능하기에, 단순한 기술연습으로부터 제법 실전적인 대련까지 가능하다. 영춘권을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덧. 치사오는 약한 것이 아니라, 강한 것이다.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울 뿐이다. 힘을 쓰지 않지만 위력적이어야 하고, 둔하지 않지만 무거워야 한다.

Posted by Neissy

# 공개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교류를 이어오는 타무술가가 몇 있다. 공통점은 상대를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교류를 통해 자기 무술의 강함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 상통하는 것도 있고, 내가 대인수련하는 것과 다른 방식이어서 새로운 것도 있다. 일반적으로 대인수련 수준이 올라간다 해도, 같은 무술끼리는 아무래도 같은 규칙을 공유하기 때문에 합의된 규격 안에서 움직이게 되는데, 다른 무술은 규칙이나 규격이 다르기 때문에 움직임에 의외성이 있고, 그에 대한 반응은 내가 하는 무술을 더 잘 다듬게 해준다.

# 도장 내에서의 대인수련이건 타무술과의 교류건 대전제는 같다. 어떤 것이 잘 되지 않는다면 그걸 보완할 기회로 삼고, 잘 된다 싶다면 그걸 더욱 깔끔하게 다듬는다. 상대를 같이 강해지는 파트너로서 존중한다. 이게 서로 더 발전하고 향상하는 길이다.

# 주의. 타무술의 경우, 얕은 수준에서 쉽게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같은 무술 내에서의 대련에서는 무언가가 잘되거나 잘되지 않을 때 그게 절대적인 게 아니라 단지 수련자의 수준이 낮아서 그렇다는 걸 알 수 있는데, 타무술의 경우에는 그걸 수준 문제가 아니라 무술 자체의 문제로 여기는 수가 있다. 하지만 그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며, 수련자의 수준이 오름에 따라 현격한 변화를 보인다. 게다가 비슷한 수준이라도 수련자에 따라 잘하고 못하는 게 다른 법이니, 교류 몇 번 했다고 이 무술이 이렇다 저 무술은 저렇다고 판단하지 않는 게 좋다.

# 그러나 서로 간에 합의가 되고, 서로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타무술간의 교류는 꽤 도움이 된다. 같은 무술끼리는 당연스럽게 합의가 되어 중요성을 간과하던 것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경우도 있고, 사부님이 언뜻 이야기한 것이 사실은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일도 있다. 그 점에서는 사실, 타무술과의 교류건 도장 내에서의 대인수련이건 비슷하다: 당연히 여기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진지하게 쌓아가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다.

# 결국 근본적으로는 대인"수련"이다. 더 강해지기 위한 수련이고 자신이 무얼 다듬어야 하는지 깨우치는 과정이다. 그런 마음을 잊지 않으면 누구와 대련해도 배울 수 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