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영춘권/수련단상 2024. 11. 3. 22:36

# 형을 수련한다거나 투로를 해야 한다거나, 거창하게 말하지만 무술의 기본은 같다. 올바른 동작이 되도록 끝없이 다듬고, 대인수련에서 잘못된 버릇이 없도록 또한 끝없이 다듬는다. 사람을 상대로 쓰는 감각 없이 혼자서 무작정 동작을 연습한다고 동작이 늘지 않고, 스파링에만 집착해서 동작 자체를 다듬지 않으면서 기술 수준이 늘지 않는다. 개인수련이건 대인수련이건 서로를 보완하며 같이 발전하는 것이지, 따로 놓고 가는 것이 아니다.

# 좀 세부적으로 말하면, 동작을 무얼 다듬는지 알아야 실제로 다듬을 수 있고, 더 맞고 덜 맞고에 집착하지 않아야 대련이 는다. 약간 다르게 말하면, 내 기분이 당장 좋아지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장기적으로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 개인수련이니, 대인수련이니, 허공에 기술을 연습하든 사람을 상대로 쓰든, 감각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본인이 느끼는 감각은 같지 못한데, 그걸 같게 만드는 것도 연습의 하나다.

# 지내다 보면 터무니없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런 사람에게 울컥해서 쓸데없이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은 안 든다. 그걸 가르쳐준다고 그 사람의 실제 수준이 오르지도 않고, 결국 그 부분만 자기 취향대로 취합해서 또 이상한 주장을 하는 법이더라.

# 위에서 잠깐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을 했지만, 연습하면서 기분이 좋다고 체감하기는 어렵다. 절대적인 의미에서 실력은 계속 향상되긴 하지만, 실력이 향상될수록 더욱 신경쓰게 되는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점점 더 스스로에게 엄격해진다. 연습은 기분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해야 할 걸 하는 느낌에 가깝다. 하고 싶고 하기 싫고가 어딨나, 그냥 하는 거지.

# '내 동작이 이만하면 괜찮다' 싶은 마음이 들으면 보통, 아무것도 모르는 것.

# '내 동작이 뭔가 마음에 들진 않는데, 뭘 고쳐야 할지 잘 모르겠다' 싶으면 제대로 가르치는 사부를 찾을 것.

# '내 동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라, 오늘도 하나라도 더 고치느라 힘들다' 싶으면 일단 제대로 하는 것이라 본다.

Posted by Neissy

잘 알지 못하면서 쉽게 말하는 사람은 늘 있었고, 있어 왔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신경쓸 가치도 없다는 건 알지만, 정말이지 얕게 알면서 뭐가 어떻다느니 말하는 사람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하기야 얕게 알수록 더 쉽게 말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내가 글을 써서 그런 사람에게 뭔가 알려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한 지 오래다. 애초에 이미 이 블로그에 쓰인 글 선에서 그게 그런 거 아니라고 이야기한 게 수두룩하다. 그러니 즉, 새삼스레 이런 글을 적든 말든 그런 사람들에겐 상관없다는 뜻이다. 상관있더라도 그걸 굳이 알려줘야 하나 싶기도 하긴 하고.

하지만 다니면서 그런 꼴을 보면 어쨌든 답답하긴 하다. 가장 위험한 건 아예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란 말이 있는데, 몸이건 지식이건 마찬가지로 적용되지 싶다.

Posted by Neissy

할 수 있는 것이 계속 깊어진다. 중심의 낮음이나 동작의 깔끔함 등이 확실히 계속해서 수준이 높아진다. 어떻게 하면 사부님처럼 할 수 있을까 늘 생각하면서 연습한다. 할 수 없었던 것이 가능해지고, 목표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씩 감을 잡아가는 것이 즐겁다.

이 길에 끝은 없고 나는 이 끝없는 여정에서 조금씩 더 나아가는 것이 너무도 재미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무언가 하나라도 더 낫게 만들려고 수련한다. 그리고 그게 쌓이면, 한 주, 한 달, 일 년이 되면 확실히 달라진다. 일 년 전의 자신에 비해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특별히 기념글을 위해 남겨둔 이야깃거리가 없었던지라, 이번 기념글은 이것으로 끝. 굳이 많은 이야기가 필요할까 싶기도 하다. 14년을 넘게 해도 매일 즐겁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Posted by Neissy

무술적으로 강한 위력을 내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한다면, 사람마다 중시하는 게 조금씩은 다를 것이다. 그건 힘일 수도, 폭발력일 수도, 타이밍일 수도 있다.

사실 어느 하나가 다른 걸 배제하는 게 아니라, 어느 걸 상대적으로 중시하더라도 다른 것들도 따라가야 하는 것들이긴 하다. 어떤 무술은 이렇고 어떤 무술은 저렇지만 끝에 가서는 비슷해진다-는 말도 있긴 한데, 그건 모양새가 결국 똑같아진다기보단, 힘을 우선시하는 타입이라도 결국 속도는 필요하고, 속도를 우선시하는 타입이라도 결국 힘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스타일은 다르더라도 원리로서는 통하게 된다는 느낌에 가깝다고 본다.

그래서 근래의 내가 신경 쓰는 건 어떤 부분이냐 하면, 뭐 종종 적긴 했지만, 몸 전체를 하나로 움직이는 것, 즉 몸이 한덩어리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조여진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따로 놀게 하지 않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요는 몸 전체를 하나로 들이박고, 몸 전체를 하나로 만들어 상대의 공격을 흘려내지만, 몸은 굳어지지 않고 힘이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부분이다. 대략 이런 상태를 방송이라고 하고, 이런 상태에서 힘을 내는 걸 발경 내지 발력이라고들 하는데, 스타일의 차이는 있으나 이런 상태 자체는 많은 무술에서 추구하는 것이므로 일정 수준 이상에 이르면 이 말이 어떤 상태를 가르키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나야 영춘권사니까 영춘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영춘권의 관점에서 바라보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른 무술의 방식과 관점에서 바라보므로 조금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긴 하지만, 뭐 어쨌든 일정 수준 이상이면 어떻게든 말은 통하더라.

그래서 몸을 한덩어리로 쓴다는 부분인데, 이게 능숙해질수록 공격력이 올라간다. 언뜻 영춘권을 팔만 써서 공격하는 짠손공격이라고 오해하는 초보자들이 있지만, 제대로 영춘권을 할 수 있게 되면 팔'만' 쓰는 움직임은 있을 수 없다.

뭐 비단 영춘권만의 이론은 아닌지라, 일정 수준 이상의 무술가를 보면 언뜻 팔만 움직이는 듯해도 그게 팔이 아니라 전신을 사용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꼭 무슨 중국무술이 아니라 복싱을 봐도, 초보자들이 알기 쉽게 몸을 회전시키지 않고 그냥 팔을 날리는 듯한데 그걸 맞으면 상대가 퍽퍽 쓰러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단순히 팔을 날리는 게 아니라 몸 전체를 한덩어리로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움직임이 작고 미세하더라도 그것은 몸을 가만히 두는 것과는 다르며, 몸 전체를 사용해서 무게를 날리는 움직임이므로 매우 강하다. 몸 전체를 사용한다고 하면, 특히나 서브컬쳐에서, 발끝으로부터 끌어올려 몸 전체에 회전을 가하며 그것을 손실 없이 손끝까지 전달한다.. 는 식의 묘사를 볼 수 있는데, 그게 그 자체로 틀렸다고는 못하겠지만 거기에서 중요한 건 회전을 하는 게 아니라 손실 없이 힘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부분이다. 즉 관절이 풀어졌다거나 각도가 잘못되었다거나 힘이 과하게 들어갔다거나 해서 몸을 두 부분 이상으로 따로 놀게 쓰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물론 이것에도 수준이 있어서, 수련하고 다듬어 갈수록 점점 더 정교해져서 움직임이 깔끔해지고 심플해진다. 이게 영춘권을 하면서 아주 재미있는 부분인데, 몸이 단단하면서 부드러워지며, 무거우면서 가벼워진다. 어느 정도 무술을 한 사람은 이게 무슨 표현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듯한데, 어쨌거나 내가 계속 블로그에서 써 왔던 그 내용들이다. 무겁지만 민첩하며, 강하지만 딱딱하지 않다. 그게 점점 더 심화되어, 이전에는 무겁다고 느끼던 걸 무겁지 않게 느끼게 되며, 억지로 빠르게 움직이려 하지 않아도 더 스무스하게 파고들 수 있게 된다. 이런 맛을 알아버리면 무술에 단단히 빠지게 되어, 누가 칼 들고 협박하는 게 아니어도 알아서 수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말해도 결론은 사실 늘 이건데, 그래서 영춘권을 하는 건 정말 즐겁다는 거다. 어떤 무술이 누구에게 맞느냐 하는 건 솔직히 상성 문제도 있긴 하다고 생각하는데, 난 제대로 찾아낸 것 같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