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초는 계속 심화한다. 단순히 다른 것의 발판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그 자체로 가장 자주 쓰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보는 게 맞다.
# 이를테면, A의 수준이 낮거나 하는 이유로 상황상 잘 쓰지 못한다면, A가 안 통하는 상황에서는 B를 쓴다? 혹은 C도 익힌다? 이것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은, A가 안 통하는 상황에서 A가 통하도록 A의 수준을 올린다거나, 애초부터 A가 통하는 상황을 만든다는 것도 포함한다. 그 정도의 수준이 되었을 때에 A에서 B, C로 이어지는 것도 더 유의미해진다.
# '기술을 수집한다'는 행위에 대해 경계한다면 그래서다. 수준 낮은 기술을 여럿 모으는 것보다, 수준 높은 기술 몇 가지를 가지고 있는 쪽이 쓰기 좋다는 뜻이다. 수준 높은 기술로 여럿을 알고 있는 게 낫지 않느냐고? 물론 그러면 좋다.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가 그렇게 수준 높게 여럿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있다는 전제하에. 수준 높은 이종격투기 선수급의 기술이라면 아주 좋겠지만, 그걸 일반적인 취미 수준에서 수준 있게 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특히 생활체육 수준에서라면, 상대적으로 적은 기술을 수준 높게 파는 게 충분히 효율적이라고 본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적당한 기술 여럿보다 정말 자신 있게 써먹을 수 있는 기술 하나가 낫다.
# 결국 기초로부터 모든 기술이 이어져야 옳다. 가장 기본적인 연습이 실제로 사람에게 쓸 때 들어가는 방법까지 모두 이어져야 한다. 연습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은 없다.
# 강한 펀치를 치기 위해서는 강한 몸이 만들어져야 하는 건 맞다. 근력이 필요한가? 물론 근력은 도움이 된다.
# 강한 근력을 제대로 된 폼을 만드는 것보다 우선시할 수 있는가? 그건 물론 당연히 아니다.
# 몸 전체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 다리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몸에서 만들어진 힘이 제대로 팔을 통해 뻗어나갈 수 있는지. 힘을 낼 때 팔의 각도는 제대로 잡혀 있는지. 한마디로, 몸 전체로 들이받는 힘을 팔 하나로 버텨낼 수 있는 자세를 만들어냈는지.
# 그렇다. 나는 충권의 위력이 사람 하나 보내기엔 충분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충권을 뭐 하러 이렇게 연습하겠는가?
# 근거리에서 월백에 대고 연습할 때도, 제대로 치면 그 위력에 몸이 울리고 주먹뼈가 시큰거릴 정도다. 그런 걸 사람한테 치는데, 위력이 없을 수는 없다. 충권은 가장 기본이 되는 기본 기술이며, 그걸로 사람을 보낼 수 없다면 다른 어떤 기술을 써도 의미가 없지 않을까.
# 몸이 울리게 친다고 해서 머리도 같이 울린다거나 힘을 빠락빠락 준다거나 하면 물론 안 된다.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쳐야 위력도 나오고, 자신의 몸이 다치지 않으며 연습할 수 있는 법이다. 힘이 빠져야 강하다는 이야기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실제적인 문제다.
# 자세한 사항은 도장에서 문의하시압.
# 이랄까 자신의 충권이 만족스럽지 않고 더 발전시키고 싶다면, 더 잘하는 사람의 동작 (최우선적으로 사부님)을 보고 내 것과 무엇이 다른지 연구하고 따라가는 게 최선이다. 당연히 충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러니까 무술을 계속한다는 건 생각보다 할 일이 훨씬 많은 것이다.
# 그리고 나는 내 영춘권에 만족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여태까지 쌓아온 것에는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그걸로 만족하느냐 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 그래서 연습은 아무리 해도 모자라다..
# 몸이나 기술을 다듬어 간다고 할 때, 현재로서는 개인적으로 '조여진다'는 느낌에 가깝다. 역으로 말하면 연결이 느슨해지거나 허물어지지 않게 한다고도 할 수 있다. 힘의 흐름이나 감각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실제적인 구조와 각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건 스스로의 감각이나 거울 등을 보면서 하는 것도 좋고, 영상을 찍어가며 확인해보는 것도 좋다.
# 치사오에 있어서 기술 향상을 위해 중요한 한 가지 부분은, 속도로 때우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속도에 변화를 주거나 타이밍을 엇갈리게 하는 건 실제로 쓸 때는 유용한 방법이지만, 치사오에서 자신의 기량 향상을 위해서는 빠른 속도로 얼버무리거나, 속도에 갑작스런 변화를 주어서 혼란시키는 방법은 쓰지 않는 쪽이 낫다고 본다.
# 얼버무린다는 말을 했는데, 기술 자체의 레벨을 올리는 게 아니라 속도로 때우는 식이 되면 당장 통할 수는 있어도 기술 자체가 변화하지는 않는다는 문제가 생긴다. 그런 식으로 하면 통하는 것 같기 때문에 기술 수준을 올리는 데 집중하지 못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잘 안 된다 싶을 때 힘을 써서 막거나 뚫는 것도 피하는 쪽이 좋다.
#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치사오에서는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서 스무스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쪽이 좋다. 느리게 하라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 자신이 할 수 있는 실제 실력 이상으로 빠르려 하거나, 가능한 이상으로 강한 위력을 내고자 할 때의 문제. 그런 식으로 내는 기술은 오히려 경직과 반동을 가져온다. 이상한 버릇이 붙어서, 그런 걸 연습하면 할수록 나빠지는 건 물론이고, 당장 눈앞의 상대에게조차도 기술을 내기 전에 쉽게 읽히기 때문에 기술이 생각만큼 강하지 못하다.
# 빠르면 좋다. 강하면 좋다. 이건 당연한 전제다. 하지만 현재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억지로 끌어내려 해선 안 된다. 억지가 붙지 않고 자연스럽게 빠르고 강하게.
#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연습 말고 뭐 있나.
가끔 있는 일상에서의 영춘권 응용 몇 토막.
# 차도 인도 구분이 사실상 없는 길을 걷다가 갑자기 차 한 대가 꽤 들이대는 걸 본 순간 보법으로 옆으로 피했다.
#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 구역으로 가는데 빈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있는 걸 본 순간, 오히려 중심을 낮추며 보법으로 파고들면서 부드럽게 유리문을 연달아 두 개를 열고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아내님이 감탄.
# 겨울에 도장에서 운동 후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앞 나무데크에 살얼음이 끼여 있었다. 한순간 쫙 미끄러졌지만 보법으로 균형을 잡으며 살아났다. 메고 있던 가방과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 가방도 함께 살아났다.
# 공장에서 옆으로 슬라이드되는 큰 문이 있는데, 이걸 열 때 무의식적으로 쌍깐사오 (횡으로 치는 기술)를 사용했다.
내게 무술이란 위급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순조롭게 본능 레벨로 스며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