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골의 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손안의책(사철나무)
<우부메의 여름>과 <망량의 상자>로부터 이어지는, 교고쿠도 시리즈 세 번째 책입니다. 이 책은 교고쿠도 시리즈다우면서도 그렇지 않은 일면이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무난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또 어떤 측면에서 보면 무난함이야말로 이 시리즈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만한 분량의 책이면서 시리즈 세 번째나 되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이야기에 대해서는 차후 이 작가의 또다른 책을 읽어 본 후 말해야 옳겠군요. 그러면 가볍게 <광골의 꿈>에 대한 감상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통칭 교고쿠도 시리즈의 매력을 저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정도로 잡습니다. 하나는 소설 전반부에서 분위기를 열심히 잡고 이 책에서 보여 주는 세계의 기묘함에 독자들로 하여금 빠지게 한 후 후반부에서 그 모든 것을 깨 버린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던 관념을 불필요하다고 생각될 만큼 파헤치고 그것을 깨 버립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첫 번째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만, 소설 전체를 통해 서로 동떨어진 것 같은 단서를 하나 둘 제공한 다음 필요한 단서가 모두 제공되면 그 단서로부터 도출되는 결론, 즉 이 사건의 진실을 쾌도난마적 사건풀이로 제공한다. 이른바 방구석 탐정 (좀 더 제대로 된 표현으로는 두뇌파라고도 합니다) 추젠지 아키히코 (=교고쿠도, 그가 운영하는 서점이 교고쿠도이기 때문에 교고쿠도라는 이름으로 주로 불립니다. 교고쿠도라고 말하면 어감이 작가인 쿄고쿠 나츠히코와 비슷해져서 매우 신경 쓰입니다만 그런 것에 신경 쓰면 지는 겁니다)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은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저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어내기 때문입니다. 괴기적이고 심령적인 설명 이외에는 온전한 설명이 불가능할 것 같던 사건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모조리 설명되며, 그것을 이루어내는 탐정 역의 교고쿠도는 몸으로 뛰어 단서를 얻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단서를 모아 취합하는 것만으로 사건 풀이를 이루어냅니다. 이 소설이 언뜻 변칙적인 소설처럼 보여도 실은 미스터리의 기본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광골의 꿈>에서는 이전 두 편에서 그토록 강하게 느껴졌던 관념파괴의 측면이 상당히 약합니다. 게다가 결말에 있어서도, 물론 비극이긴 합니다만, 전의 두 편만큼 암담하지는 않습니다. 좋게 말하면 온건해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교고쿠도 시리즈로서의 매력을 좀 잃어버린 겁니다. 이 소설에서는 단서가 모두 취합되어 진실이 나타나는 즐거움은 확실합니다만 관념이 특별히 파헤쳐지고 부서지는 일은 없습니다. 앞의 두 편에서 느꼈던 쇼크를 다시 느끼고 싶어 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는 실망이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왜 이렇게 쓰여졌는지 저로서는 확증이 어려운데, 다시 말해서 이 작가의 다른 책을 더 읽어 보기 전에는 관념파괴를 하지 않았던 것인지 하지 못했던 것인지 어렵다는 말입니다. 어느 쪽이든, 후반부에 이르러 모든 미스터리가 쾌도난마로 풀이되는 쾌감에서만큼은 결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으니 그 점에서는 안심해도 좋습니다. 이 시리즈의 특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下권 170p에서 드디어 교고쿠도가 "세상에는 말이지요, 이상한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렇지, 세키쿠치 군?" 하고 말했을 때 '오옷, 드디어 사건이 해결되는구나! 이 자식, 어서 진실을 뱉어라!' 하는 기분이 되었을 겁니다. 그걸 작가도 알기 때문인지 저 문장 위 아래로 무려 한 줄을 비워 특별히 강조시켰습니다만.
물론 이 시리즈의 매력이 단지 저 뿐인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이 소설은 분위기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소설 중 하납니다. 작가 자신이 워낙 요괴소설의 대가인 덕인지, 괴기스런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능력은 일품입니다. 원래 앞의 두 편에서는 이에 더불어 관념파괴까지 같이 행해졌기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려 얼떨떨하게 독자도 깨져 버리고 맙니다만, 이번 경우에는 위에서도 말했듯 그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애당초 세 편이나 이어져 오는 동안 이 소설 특유의 분위기에 이미 독자가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비슷한 정도로 충격이 와도 금방 극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처음부터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부분은 그다지 의도하지 않았던 기분이 듭니다. 역시 미스터리 자체에 좀 더 무게를 둔 느낌입니다. -라고 말하니 위 문단을 부연하는 설명이 되었군요. 부연하는 김에 말해봅니다만, 마지막 부분에서 교고쿠도가 여러 가지 사상이나 이념을 끌어오고 그것을 나름대로 해석해 등장인물들의 문제를 풀어 주는 명장면은 여전합니다. 굳이 관념파괴를 들어 보라면 여기서는 이 정도가 전부인데, 원체 그 사상 이념 사건들이 일본 국내에서 일어난 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영 와닿지는 않더군요. '이 작가 참 공부 많이 했다'는 정도가 솔직한 감상이었습니다. 또한 '상당히 설득력있긴 하지만 이것 또한 작가가 본 세계이지 진정한 세계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게 이 시리즈를 읽을 때의 (사실 어떤 이야기를 읽든 마찬가지지만) 제 기본 방침이기도 하고요.
어쨌거나 그건 그렇고, 거기에 덧붙여 등장인물들이 꽤 매력적입니다. 현실감이 있는 타입이냐고 물으면 그건 좀 애매합니다만, 어느 쪽이든 생동감과 생명력만은 충분합니다. 교고쿠도의 썰 늘어놓는 솜씨도 일품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에노키즈의 뻔뻔하고 당당한 헛소리를 꽤 좋아합니다. 상황상 소설 내에서 만담이 발생해 버리기 때문인데, 진지한 상황에서 대뜸 사람을 웃겨 버리기 때문에 꽤 괜찮은데다 긴장의 실이 너무 팽팽해져 끊어지지 않도록 약간 느슨하게 해 주는 좋은 장치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 보면, <광골의 꿈>은 조금 고어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무난한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사실 다른 많은 미스터리 소설과 비교해 보면 여전히 수위가 높고 이야기하는 내용도 다소 파격적입니다만, 전편보다 더 강한 내용을 기대하던 독자가 보기에는 무난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내용 자체의 파격성이 이전 편에 비해 떨어졌고, 마무리도 (교고쿠도 시리즈 치고는) 무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품 자체의 매력으로 말하자면 충분히 재미있으며, 오히려 무난한 만큼 접한 후의 불쾌감도 별로 없습니다. (그 불쾌감이야말로 교고쿠도 시리즈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실제로는 상당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생각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역시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억울함이겠지요.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손안의책(사철나무)
<우부메의 여름>과 <망량의 상자>로부터 이어지는, 교고쿠도 시리즈 세 번째 책입니다. 이 책은 교고쿠도 시리즈다우면서도 그렇지 않은 일면이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무난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또 어떤 측면에서 보면 무난함이야말로 이 시리즈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만한 분량의 책이면서 시리즈 세 번째나 되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이야기에 대해서는 차후 이 작가의 또다른 책을 읽어 본 후 말해야 옳겠군요. 그러면 가볍게 <광골의 꿈>에 대한 감상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통칭 교고쿠도 시리즈의 매력을 저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정도로 잡습니다. 하나는 소설 전반부에서 분위기를 열심히 잡고 이 책에서 보여 주는 세계의 기묘함에 독자들로 하여금 빠지게 한 후 후반부에서 그 모든 것을 깨 버린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던 관념을 불필요하다고 생각될 만큼 파헤치고 그것을 깨 버립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첫 번째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만, 소설 전체를 통해 서로 동떨어진 것 같은 단서를 하나 둘 제공한 다음 필요한 단서가 모두 제공되면 그 단서로부터 도출되는 결론, 즉 이 사건의 진실을 쾌도난마적 사건풀이로 제공한다. 이른바 방구석 탐정 (좀 더 제대로 된 표현으로는 두뇌파라고도 합니다) 추젠지 아키히코 (=교고쿠도, 그가 운영하는 서점이 교고쿠도이기 때문에 교고쿠도라는 이름으로 주로 불립니다. 교고쿠도라고 말하면 어감이 작가인 쿄고쿠 나츠히코와 비슷해져서 매우 신경 쓰입니다만 그런 것에 신경 쓰면 지는 겁니다)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은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저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어내기 때문입니다. 괴기적이고 심령적인 설명 이외에는 온전한 설명이 불가능할 것 같던 사건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모조리 설명되며, 그것을 이루어내는 탐정 역의 교고쿠도는 몸으로 뛰어 단서를 얻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단서를 모아 취합하는 것만으로 사건 풀이를 이루어냅니다. 이 소설이 언뜻 변칙적인 소설처럼 보여도 실은 미스터리의 기본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광골의 꿈>에서는 이전 두 편에서 그토록 강하게 느껴졌던 관념파괴의 측면이 상당히 약합니다. 게다가 결말에 있어서도, 물론 비극이긴 합니다만, 전의 두 편만큼 암담하지는 않습니다. 좋게 말하면 온건해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교고쿠도 시리즈로서의 매력을 좀 잃어버린 겁니다. 이 소설에서는 단서가 모두 취합되어 진실이 나타나는 즐거움은 확실합니다만 관념이 특별히 파헤쳐지고 부서지는 일은 없습니다. 앞의 두 편에서 느꼈던 쇼크를 다시 느끼고 싶어 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는 실망이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왜 이렇게 쓰여졌는지 저로서는 확증이 어려운데, 다시 말해서 이 작가의 다른 책을 더 읽어 보기 전에는 관념파괴를 하지 않았던 것인지 하지 못했던 것인지 어렵다는 말입니다. 어느 쪽이든, 후반부에 이르러 모든 미스터리가 쾌도난마로 풀이되는 쾌감에서만큼은 결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으니 그 점에서는 안심해도 좋습니다. 이 시리즈의 특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下권 170p에서 드디어 교고쿠도가 "세상에는 말이지요, 이상한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렇지, 세키쿠치 군?" 하고 말했을 때 '오옷, 드디어 사건이 해결되는구나! 이 자식, 어서 진실을 뱉어라!' 하는 기분이 되었을 겁니다. 그걸 작가도 알기 때문인지 저 문장 위 아래로 무려 한 줄을 비워 특별히 강조시켰습니다만.
물론 이 시리즈의 매력이 단지 저 뿐인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이 소설은 분위기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소설 중 하납니다. 작가 자신이 워낙 요괴소설의 대가인 덕인지, 괴기스런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능력은 일품입니다. 원래 앞의 두 편에서는 이에 더불어 관념파괴까지 같이 행해졌기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려 얼떨떨하게 독자도 깨져 버리고 맙니다만, 이번 경우에는 위에서도 말했듯 그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애당초 세 편이나 이어져 오는 동안 이 소설 특유의 분위기에 이미 독자가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비슷한 정도로 충격이 와도 금방 극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처음부터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부분은 그다지 의도하지 않았던 기분이 듭니다. 역시 미스터리 자체에 좀 더 무게를 둔 느낌입니다. -라고 말하니 위 문단을 부연하는 설명이 되었군요. 부연하는 김에 말해봅니다만, 마지막 부분에서 교고쿠도가 여러 가지 사상이나 이념을 끌어오고 그것을 나름대로 해석해 등장인물들의 문제를 풀어 주는 명장면은 여전합니다. 굳이 관념파괴를 들어 보라면 여기서는 이 정도가 전부인데, 원체 그 사상 이념 사건들이 일본 국내에서 일어난 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영 와닿지는 않더군요. '이 작가 참 공부 많이 했다'는 정도가 솔직한 감상이었습니다. 또한 '상당히 설득력있긴 하지만 이것 또한 작가가 본 세계이지 진정한 세계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게 이 시리즈를 읽을 때의 (사실 어떤 이야기를 읽든 마찬가지지만) 제 기본 방침이기도 하고요.
어쨌거나 그건 그렇고, 거기에 덧붙여 등장인물들이 꽤 매력적입니다. 현실감이 있는 타입이냐고 물으면 그건 좀 애매합니다만, 어느 쪽이든 생동감과 생명력만은 충분합니다. 교고쿠도의 썰 늘어놓는 솜씨도 일품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에노키즈의 뻔뻔하고 당당한 헛소리를 꽤 좋아합니다. 상황상 소설 내에서 만담이 발생해 버리기 때문인데, 진지한 상황에서 대뜸 사람을 웃겨 버리기 때문에 꽤 괜찮은데다 긴장의 실이 너무 팽팽해져 끊어지지 않도록 약간 느슨하게 해 주는 좋은 장치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 보면, <광골의 꿈>은 조금 고어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무난한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사실 다른 많은 미스터리 소설과 비교해 보면 여전히 수위가 높고 이야기하는 내용도 다소 파격적입니다만, 전편보다 더 강한 내용을 기대하던 독자가 보기에는 무난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내용 자체의 파격성이 이전 편에 비해 떨어졌고, 마무리도 (교고쿠도 시리즈 치고는) 무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품 자체의 매력으로 말하자면 충분히 재미있으며, 오히려 무난한 만큼 접한 후의 불쾌감도 별로 없습니다. (그 불쾌감이야말로 교고쿠도 시리즈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실제로는 상당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생각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역시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억울함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