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김언수 지음/문학동네

<핑퐁>을 감상했을 때 했던 질문을 똑같이 다시 한 번 던져 봅니다. "당신, 이것보다는 좀 더 잘 쓸 수 있지 않았어?"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보다 호평을 주었겠지만, 처음에 불필요한 기대를 했던 덕분에 그 반동으로 오히려 점수를 깎아 먹었습니다. 소설에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면 <캐비닛>이라는 제목을 들어 보셨을 법도 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 작가에게 글만 쓸 수 있도록 지원해 준 친구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시작하여, 작가의 발랄한 상상과 신선한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는 이 소설. 이 시점에서 이미 제 감상하는 투가 이미 그다지 내키지 않는 투라고 느끼실 분도 꽤 되겠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 소설에서 저는 딱 하나만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이런 깨는 상상을 가지고도 이제는 문단에서 팔릴 만한 시대가 왔구나.' 물론 박민규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이제는 엽기발랄한 소설이 잘 팔리는 시대이긴 합니다. 그러나 <캐비닛>의 현 인기에는, 거품이 있습니다. 거품이 없었더라면 좀 더 호평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선 <캐비닛>이 어떤 스타일의 소설인지, 소설을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설명하실 필요가 있겠군요. 주인공 공덕근은 Y공기업의 부속 연구소에서 일하는 엑스레이 기사이고, 할 일이 거의 없는 한량 월급쟁이입니다. 심심함을 이기다 못해 사층 연구실의 한 자료실에 들어갔고 그 중에서 (유일하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던) 13호 캐비닛에 관심을 가집니다. 네 자리 번호를 돌려 맞추는 자물쇠를 하나하나 숫자를 다 대입해 보는 무식한 작업으로 열었고, 그 안에 있던 서류를 읽게 됩니다. 그 서류란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붕괴되어 있는 사람, 이른바 심토머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는 서류였으며, 그를 기점으로 주인공은 그 연구실의 주인 권박사와 만나게 되고 이 심토머들에 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독자들에게 보여 주게 됩니다. 한 마디로 말해, 열심히 구라를 칩니다.

쉽게 말하면 그냥 판타집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말 되는 것처럼 써놓고 그 에피소드마다 하나씩 독자에게 무언가 전달하려 합니다. 물론 현실의 어떤 상황에 대한 작가의 이해를 기반으로 썰을 풀어 나가죠. <마음을 열어 주는 101가지 이야기> 류의 책을 연상하셔도 좋겠습니다. 훨씬 엽기적이고 훨씬 깹니다만. 어쩌면 이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몸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남자라거나 혀 대신 도마뱀을 키우는 여자라거나,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그런데 저는 읽는 내내 찝찝했고 약간 불쾌했으며 그냥 얼른 읽고 끝내버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슬픈 일이죠.

제가 고상해서 '난 이런 저질스런 이야기 못 읽어' 했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 내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작가가 독자에게 던져주려는 메시지가 (소설이란 게 워낙 다 그렇지만) 꽤나 뻔한 것으며 그 수준이 그리 높은 것도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쭉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짤막하고 비슷비슷한 구성의 에피소드로 무슨 단편집처럼 쭉 이어집니다. 처음 몇 편이야 흥미롭게 읽지만 중반쯤 가면 이미 좀 지겨워집니다. 단편을 여러 개 모아서 짜집기해 붙인 소설이라는 게 인상인데, 중요한 건 이 이야기들 사이에 별 연속성도 관련성도 없으며 한두 개쯤 빼도 <캐비닛>이라는 소설로 기능하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럴 바에야 엑기스를 모아서 좀 더 힘이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쪽이 임팩트가 있습니다. 제게 묻는다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고 너무 여러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들지 않았나 싶군요.

작가가 독자에게 던져주려는 메시지가 뻔한 것이었는데 그 수준이 그리 높은 것도 아니었다는 말을 조금 다시 해 보겠습니다. 3장에 '부비트랩'이라는 편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작가는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부비트랩이라고 말합니다. 뱀이라는 인계철선을 통해 정교하게 유혹물을 설치했다면서 이로 인해 기폭장치가 작동하고 불행이 연속적으로 터져나왔다고 합니다. 오 제기랄, 문외한은 물론 그런 식으로 가볍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걸 소재로 글을 쓸 때는 좀 공부하고 연구한 다음 쓰는 게 작가의 기본 아닙니까? 자유의지의 개념 하에서 선악과란 인간이 '자의로 신을 섬긴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상징물'이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필 수도 있지만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바람을 안 피운다는 개념과 동일한 소리가 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아내 말고 여자가 아무도 없다면 남편이 바람을 안 피우는 게 뭐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신학을 조금만 알아보면 금방 나오는 대답인데, 이 작가는 별로 생각 안 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대로만 글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비단 '부비트랩'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설 내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통해 작가는 열심히 자신의 평소 생각을 적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공감대를 얻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얕습니다. 질보다는 물량으로 밀어 붙이는 듯한 얕음이 엿보입니다. 신선한 이야기나 독특한 이야기로 튀는 작가라는 말은 안 통합니다. 신선한 설정에 목숨 거는 작가는 장르문학을 찾아보면 수도 없이 볼 수 있습니다. 소설의 생명력은 그런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읽고 별 감흥 없이 다시 책장에 꽂히는 글을 원한다면 그래도 별로 상관없겠습니다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적어 보면, 막판에 권박사가 죽고 난 다음 이야기가 급반전을 이룹니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 등을 소개하는 선에서 그치던 이 소설은 갑자기 웬 스릴러가 됩니다. 주인공은 캐비닛의 정보를 노리는 어느 집단에게 쫓기게 됩니다. 한 마디만 하죠. 이질적입니다. 이런 식으로 스토리를 이어나가려 했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에피소드 중심으로 가지 말고 내용을 보다 전개하면서 에피소드를 부드럽게 섞어 줬어야 훨씬 매끄럽게 읽혔을 겁니다. 동떨어져 첨부된 부록을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래서는 곤란합니다. <캐비닛>이라는 이 한 권을 가지고 작가는 하고 싶은 말과 보여 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습니다. 의욕과잉이었고, 결과적으로 본편만 350페이지라는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함량미달이라는 슬픈 사태를 낳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작가에 대해 영 아니라고 말하는 뜻은 아닙니다.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참신함에 대해서만은 높은 점수를 줄 만 합니다. 위에서 장르 문학 이야기를 했지만, 이 책보다도 훨씬 얕은 공부를 가지고 생각 없이 글 쓰는 작가가 사실 장르문학엔 수두룩합니다. <캐비닛>은 그 정도는 아니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한 책도 아닙니다. 제게 묻는다면 습작 정도죠. 그러나 앞으로 나올 책들은 조금 기대해 봐도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때는 좀 더 고수준의 글을 볼 수 있길 바랍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