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인간
로스 맥도날드 지음, 강영길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자, 읽은 로스 맥도널드의 글 두 번째입니다. <소름>때에도 그렇지만 이 작가는 파탄난 가정과 이기적인 인간들,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비극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더군요. 소설 뒤에 딸려 있는 해설을 읽어 보아도 그렇고요. 여하간 이 소설의 기본 얼개는 이러합니다. 진 브로더스트라는 여성은 그녀의 남편인 스탠리 브로더스트가 웬 금발 아가씨와 외도를 하지는 않는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스탠리와 그 금발 아가씨는 스탠리와 진의 아들인 로니를 데리고 차를 타고 외출했고, 진 브로더스트는 주인공인 루 아처에게 로니를 다시 데려와 달라고 요청합니다. 로니를 다시 찾으러 이동하는 중에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스탠리 브로더스트는 오두막집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으나 로니는 보이지 않고 금발 아가씨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아처는 계속하여 로니를 찾아 나서고 그 와중에 이 사건들에 얽힌 진실을 밝혀낸다- 는 내용입니다.

이 소설은 인물간의 인간관계가 꽤 복잡합니다. 읽는 도중에, 종이에 그려서 관계도를 작성하면 정리가 좀 될까 하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사람이 한 가정에서 안식하지 못하고 외도하며 자신의 타락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면 어떠한 비극들이 일어나는가, 이 소설에서는 그 결과의 예시를 보여 줍니다. 자신 뿐 아니라 타인도 불행해지죠. 혹은, 타인 뿐 아니라 자신도 불행해진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물론 이 사람들이 전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그러한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닙니다. 외롭고 약하기 때문에 저지르는 일이었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용인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상처를 받으며, 그 상처는 쉬이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 소설에서는 사람이 죽었어요.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처럼 '모든 범죄 동기를 외계에서 받은 것의 반사로 간주 (328p)'하는 것은 타인을 용서하기 위해 사용할 수는 있어도 ---가 했듯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꽤 심도 있고 복잡한 소설입니다만, 정말이지, 진짜로, 농담이 아니라- 이 동서문화사는 왜 이리 번역이 에러랍니까. 책을 읽으며 문장에 집중이 어려웠던 것은 내용의 문제 이전에 번역이 애매하게 되어서라고 저는 강력하게 주장할랍니다. 왜 대화 중 인물간의 어투나 존대말이 시시각각 바뀌며, 문단과 문장의 배열이 종종 헛갈리며, 어휘와 문장이 어귀가 잘 안 들어맞는 겁니까. 번역 좀 더 멋지게 해 달란 말입니다. 제대로 번역하면 분명히 지금 읽은 것보다 더 '멋지다'는 기분을 들게 해 줄 텐데.. 궁시렁궁시렁.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