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힐
크리스토프 갱스 감독, 로리 홀든 외 출연 / 비트윈

사일런트 힐을 찾아 보게 된 계기는 간단했습니다. 인터넷 기사를 둘러보다가 미국에 실제로 '사일런트 힐'이 있다지 뭡니까. 탄광촌이었는데 실수로 화재가 난 것이 땅 밑의 석탄들에 옮겨 붙게 되었고 그 불씨를 진압하지 못해 열기로 가득한 유령 마을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 타려면 아직도 백 오십 년은 걸릴 것이다, 뭐 이런 이야기였죠. 사일런트 힐이 코나미의 명작 호러 게임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문득 이 기사를 보고서 흥미가 동했습니다. 글쎄, 영화가 나름 호평을 받았다더군요, 그래서 보게 된 겁니다.

물론 저는 게임의 스토리 라인조차 모릅니다. 그래서 이 감상에서는 다른 관련사항 없이 오로지 영화에 대해서만 말하게 될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뭐 평소에는 이것저것 말하는 녀석 같군요. 와하핫)

간단한 스토리 개요를 말해 봅시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어머니가 딸의 이름을 애타게 부릅니다. 딸아이, 샤론은 몽유병 증세가 있었고, 겨우 절벽에서 찾아낸 샤론은 바닥에 쓰러지면서 "사일런트 힐" 을 되뇌입니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어머니는 이 딸을 데리고 유령 마을 사일런트 힐로 갑니다만, 도중 작은 교통 사고가 나서 어머니는 스티어링에 머리를 부딪히고 정신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깨어 보니 딸이 없습니다. 딸을 찾아 헤매는 어머니, 하늘에서 눈처럼 재가 떨어지는 마을, 마을의 각 끝은 절벽처럼 갈라져 벗어날 수 없고, 사이렌이 울리고 나면 모든 것이 암전되고 그로테스크한 괴물들이 나타납니다. 샤론이 그린 그림들, 그리고 그 그림에 덧칠된 괴기스런 광경과 이 모든 상황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Welcome to Slient Hill


저는 사실 이런 영화에서 대단한 스토리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어떤 의미에서는 액션 영화와 비슷한 잣대로 영화를 봅니다만, 이런 류의 영화에서 대체적으로 스토리는 '분위기를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입니다. 대전 격투 게임에서 주인공들이 싸워야 하는 최소한의 이유를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제공하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죠. 그 점에서 보자면 이 영화의 스토리는 딱히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습니다. 마지막의 해결 부분에서 조금 스토리 텔링 중 오버하는 부분이 있다 싶기도 했습니다만, 깊이 있는 이야기를 기대하고 본 거 아니니 뭐 괜찮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백미를 꼽자면 사이렌이 울리고 나면 어둠이 찾아오고, 모든 사물이 '괴기'에 잠식된다는 거였습니다. 제일 처음의 사이렌에서는 그 의미를 몰랐지만, 한 번 겪고 난 후에는 사이렌의 뜻을 알게 되지요. 예고되기 때문에 더 공포스러운 것도 세상에는 있는 겁니다.


사이렌이 울리면, welcome to Horror Hill


이 부분은 사이렌이 울리기 전의 세계가 담담하고 평온해 보이는 세계이기 때문에 더욱 대비됩니다. 세계가 반전되죠. 어두워지면 나타나는 그로테스크한 세계,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것에는 어딘가 고상함이 있습니다. 이 호러 감각은 서양적이라기보다는 동양적입니다. ..제일 마지막의 '해결' 부분에서는 서양 영화 답다, 싶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이 영화는 상당히 잔인합니다. 은근히 거침없달까요.

저로서는 이 영화가 몽환적이며 괴기스런 세계를 잘 만들어 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재미있게 봤어요. 바로 위 문단에서 말한 '사건 해결'과는 별도로, '엔딩' 자체도 꽤 마음에 들었고요. 이런 영화를 보고 있다 보면 색채가 사람에게 주는 느낌에 대해 한 번쯤 돌아보게도 됩니다. (사족입니다만, 저는 밤에 불 끄고 5.1채널로 이 영화를 감상했기 때문에 느낌이 더 좋았을 겁니다. 역시 영화는 이렇게 봐야 제맛. 훗훗)

여담. 이런 영화에 출연하는 아역을 보며 항상 생각하는 건데- 이런 거 찍으면 그 아이 정서에 영향 꽤 먹히지 않을라나.

여담2. 원작이 게임이어서 그런지, 영화에 어딘지 어드벤처 게임 같은 감각도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템'을 사용하고 나면, 그 아이템이 버려진다거나.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