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먹어라




내 앞에는 고기가 놓여있다. 인간의 고기다.



눈을 뜨자 사방이 어둠이었다. 나는 누워있었고 바닥은 딱딱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았으며 바람은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눈을 감기 전에 보았던 풍경이 이런 풍경이 아니었던 것만은 명백했다.

아니, 명백한가? 머릿속이 안개에 잠겼다. 깨어나기 전에 어디에 있다고 생각했는지, 상이 부옇게 흐려져서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좋다, 기억나는 것부터 떠올려보자. 내 이름은? 한동욱. 나이는? 스물셋. 어디에 살았지? 기억나지 않는다. 무얼 하며 살았지? 기억나지 않는다.

맙소사, 청문회 중의 정치인이라도 이보다는 더 잘 대답하겠군.

몸을 더듬어 보았는데 내가 입은 옷은 긴팔 셔츠와 면바지 같았다. 신발은 캔버스화처럼 느껴졌다. 내 옷과 내 신발인가? 기억나지 않았다. 눈썹이 찌푸려졌다.

지금 내 상황에 적합할만한 단어가 하나 떠오른다. ‘기억 상실.’

전혀 없는 경우는 아니다. 나에게 있으리라고 생각한 일은 아니었지만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어느 영화인가에서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을 주위 사람들이 치유해준 장면이 떠오른다. 어쩌면 이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해줄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온통 어둡고 빛 한 점 없다.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여전히 어두웠다. 눈을 감든 뜨든 아무 차이가 없었다. 익숙해질 수 있는 어둠이 아니었다. 나는 손을 앞으로 내밀어 휘저어보았다. 만져지는 것은 없었다. 더듬더듬 발도 내밀었다. 단단한 바닥이 만져진다. 좀 낫다. 허공을 떠도는 기분이지만 적어도 발 디딜 공간은 있는 셈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나는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다. 불안해하며 나아간다.

갑자기 손에 무언가가 만져져서 흠칫했다. 딱딱한 무언가였다. 쓰다듬어 보았다. 아마도 벽 같았다. 돌. 혹은 콘크리트. 나무는 분명히 아니다. 벽. 안심이 됐다. 벽이 있다는 말은 이 어둠이 끝없이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뜻이다. 벽이 있으니 문도 있을 것이다. 나는 벽을 짚어가며 조심스럽게 옆으로 이동했다.

벽이 이어진 끝에 모서리를 만났다. 다시 벽이 이어졌고, 다시 모서리를 만났다. 그 후에야 벽도 모서리도 아닌 것을 만날 수 있었다. 금속, 차가운 금속이다. 판판했으며 아무 무늬도 만져지지 않았다. 금속판 중간에 그어진 미세한 세로선이 판을 양분하고 있음을 감촉으로 알아냈다. 기억으로부터, 엘리베이터 문이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음을 끌어냈다. 그렇다면 문을 여는 스위치가 이 근처에 있어야 한다. 그러길 바라며 금속판 주변 벽을 만지기 시작했다.

빙고.

버튼이다. 금속판으로부터 한 뼘 가량 오른편 벽에 손바닥만한 금속판이 붙어있었고 그 금속판 가운데에서 네모난 플라스틱 버튼이 하나 느껴졌다. 이것이 엘리베이터라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가장 아래층이거나 가장 위층이라는 의미리라. 눌렀다.

변화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원하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금속판 위에 현재 층을 나타내는 번호가 불빛으로 뜬다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소리가 들렸다. 내가 있는 이 공간 안에서. 자그맣게 무언가 터지는 소리. 아주 희미했지만, 그 소리를 듣지 못하기에는 이 안이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리고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사람 같은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 이십 미터 가량 멀리에서 들렸다. 벽을 짚어가며 문을 찾을 때 느낀 대로, 이 공간 안은 무척 넓었다. 그런데, 이 소리는 무슨 소리였지?

축하합니다. 당신은 권리를 획득했습니다. 천장으로부터 목소리가 들렸다. 기계로 합성한 음성 같았다.

뭐야? 나는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목소리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대신 소리 없이 금속판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문처럼. 희미한 빛줄기가 새어들더니 점점 커졌다. 눈이 찌푸려졌고 나도 모르게 감겼다. 이제는 눈을 감아도 눈꺼풀 위로 빛이 덮였다. 찡그리며 눈을 조심스럽게 다시 떴다. 두께가 한 뼘은 될 법한 굵은 금속문 너머로, 기껏 십 미터 정도로 보이는 짧은 복도가 보였다. 복도 끝에 손잡이를 돌려 여는 문이 있었고 천장에는 형광등이 붙어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회칠조차 하지 않은 콘크리트 복도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내가 있던 장소를 돌아보았다. 아주 넓었다. 30평은 될 듯했다. 어두웠을 때 예상했던 것처럼 아무 것도 놓여있지 않은 곳이었다. 빛이 비치는 영역으로 미루어보기로는 내가 지금 있는 문 외에는 출구가 없는 듯했다. 그리고 자그마한 폭발 소리가 들렸던 위치, 즉, 내게로부터 이십 미터 떨어진 지점에는.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사람이 맞을 듯했다. 구부러져 쓰러져있고 그의 머리 부근 바닥에 검붉은 무언가의 액체가 번져 있었지만. 그리고 그 액체가 조금씩 번진 범위를 넓히고 있었지만. 그래서 설령 사람이 맞다 해도 지금은 살아있지 않으리라 직감되었지만.

뭐야? 내가 외쳤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목소리가 답해주지 않으리라는 것은 예측하고 있었다. 나는 저 사람에게 다가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이 문이 계속 열린 채로 있어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맙소사, 나 때문에 저렇게 된 건 아니겠지? 누구라도 그렇지 않다고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목소리가 말했다. 권리를 얻은 게 나라고. 무엇에 대한 권리란 말인가? 가봐야 할지 나는 조금 더 망설였다.

그 때 금속문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되었다. 이 상황이 어딘가 비정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일단 바깥으로 나가보자. 어둠 속에서 시체와 같이 있고 싶진 않다. 나가서 다시 문을 열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문이 닫히기 전에 재빨리 방을 나섰다. 언뜻 금속문의 형태가 보였는데, 사람이 끼이면 다시 열릴 법한 방지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 끼이면 그대로 반 토막 날 것처럼.

문이 닫혔다. 이 복도에 문을 다시 열 수 있는 스위치는 보이지 않았다.

복도를 다 지나는 데에는 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번 문도 금속이었는데, 방금 것과 달리 열기 어렵지 않았다. 나는 손잡이를 돌렸고, 이 문을 밀었다.

홀이 있었다. 떠오르는 단어 중 이 표현이 가장 적합했다. 거의 70평은 되어 보이는 널찍한 공간이었다. 콘크리트인 듯했는데 희게 페인트칠되어 있었다. 천장까지의 높이는 삼 미터 가량 남짓. 그리고 홀을 사방으로 둘러싼 벽에 띄엄띄엄 문이 늘어서 있었다. 내가 나온 문도 그 중 하나였다. 문을 닫으며, 나는 이 문이 홀 쪽에서는 손잡이를 찾아볼 수 없게 만들어졌음을 깨달았다.

멀리 홀 중간에 금속 원통 같은 것이 보였는데, 바닥으로부터 천장에 이르도록 빈틈없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금속 원통 근처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도 하나 보였다.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외쳤다. 저기요.

그는 내 목소리를 들었다. 내 쪽으로 고개가 향하더니 머뭇거리다가 다가왔다. 나도 그를 향해 걸었다. 점점 그의 모습이 뚜렷해졌다. 그는 남자였고, 이십대 초반으로 보였으며, 귀를 가릴 정도로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 문양 없는 회색 셔츠와 회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내 것과 같았다. 그와 좀 더 가까워졌다. 키는 나보다 조금 작았고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은 경계를 띠고 있었다. 확신 없이 불안해 보이는 눈이었다. 아마 내 눈도 그와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한다는 것이 오히려 서로의 경계를 누그러뜨리는 데에 조금 도움이 되었다. 그와 나는 두 발짝 정도 사이를 두고 서 있었다. 내가 먼저 물었다. 여긴 어디죠?

나도 그게 알고 싶어요. 그의 답이었다. 내가 기대한 답은 아니지만 예상할 수 있었던 답이었다. 나는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잠깐 고민하고 말했다. 당신은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그리고 바로 덧붙였다. 아,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전 한동욱이라고 합니다.

그는 내가 한 만큼만 경계를 허물었다. 박상철이요. 여기로 나온 건 이십 분쯤 됐고요.

나왔다고요? 처음부터 여기 계셨던 건 아니군요.

당신도 처음부터 여기 있지는 않았잖아요.

맞아요. 어두운 방에 있었죠. 상철씨도 그랬나요?

상철은 눈에 의심을 담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무슨 의도에서 질문했는지 알아보고 싶어 하는 듯한 눈이었다. 내 질문에 별다른 의도가 있지는 않았다. 결국 그가 답했다.

있었어요. 어두운 방에.

그 방에도 철문이 있었나요? 제 말은, 스위치를 누르고 나와야 했냐는 뜻이에요.

당신도 그랬나보군요.

그러면, 음, 그 스위치를 누를 때.

같이 있던 사람이 죽었죠.

대답하는 상철의 턱근육이 불거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이 말을 한 내가 원망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고, 나는 미안한 표정을 지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가 말했다.

여자였어요. 그녀의 이름은……, 아니, 그런 건 상관없겠죠. 좋아요. 궁금한 게 하나 생겼는데. 나든 그녀든 자기 이름하고 나이밖에는 기억하지 못했는데 동욱씨는 어떤가요?

나는 잠시 멍하니 그를 보았다. 그도 기억상실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보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당신도 마찬가지인가 보군요. 나는 목구멍이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철은 가슴 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한숨을 토해낸 후 물었다.

당신이 있던 방에는 아무도 없었나요?

있었어요. 있는 줄 몰랐지만.

몰랐어요?

누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상철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물었다.

그 스위치가 같이 있던 사람이 죽은 것과 관계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턱이 조금 떨렸다. 나는 거의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내가…… 그 사람을 죽인 건가요?

상철의 눈동자도 흔들렸다. 이윽고 새어나온 그의 목소리도 내 것만큼 무거웠다.

난 그 사람보다 내가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스위치를 눌렀고요. 그랬는데. 어, 그랬는데. 그랬는데 그녀가 죽었어요. 누군가가 나더러 권리를 획득했다고 말했고요. 그게. 어. 그게 무슨 의미겠어요?

그의 말은 자기에게 들려주기 위한 말처럼 들렸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내게 일어난 일과 비교해보았다. 한순간 머릿속을 영상이 스쳐지나갔다.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쓰러져 있던 사람. 번져가던 핏물.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러나 쓰러지지는 않았다. 턱이 덜덜덜 떨렸고, 나는 아니라고 답해주길 바라며 상철에게 물었다.

한 사람이 죽게 되어 있는 방이었을까요?

그는 답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손을 무릎에 짚었다. 토할 것 같았다. 무릎을 짚은 손이 떨렸다. 아니, 무릎이 떨렸다. 아니,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얼굴이 뜨거웠다. 온몸이 뜨거웠다.

한참 후에 고개를 들었다. 상철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다른 편 벽을 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여긴 대체 어디죠. 상철은 나를 보았다. 그저 보기만 했다. 나는 욕설을 내뱉었다.

좀 진정하고 물었다. 저 기둥은 뭐죠?

내 생각에는, 위나 아래로 이동하는 통로 같아요. 상철이 답했다.

통로?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 홀 벽에는 각 변마다 두 개씩, 전부 여덟 개의 문이 붙어있었다. 상철이 부연했다. 여기로 나올 때 봤겠지만, 방에서 이쪽으로 들어올 수는 있어도 여기에서 방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여기 붙어있는 문들은 전부 이쪽에서 열 수 없는 문들이고요. 뭔가 나갈 수 있을 것 같이 보이는 문은 저 기둥에밖에 없어요.

저 문들이 모두 이쪽에서 못 여는 문이라고요. 내가 중얼거렸다. 상철은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문들이 나나 상철이 나온 곳과 같은 식이라면, 여덟 개의 방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 두 개의 방에서 각기 한 사람씩 죽었다. 여섯 사람이 더 죽을 수 있다는 뜻일까.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정말 토할 것 같았다. 상철의 기분도 별로 다르지 않아 보였다.

저 기둥에는 뭔가 스위치가 있던가요? 다시 진정하고 내가 물었다. 상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하지만 저 안 방에 있던 것 같은 철문이었어요. 스위치는 아마 이 홀 어딘가에 있겠죠.

찾아보지 않았어요?

기둥만 찾아보고 있었죠. 거긴 없어요. 아마 없는 게 확실해요. 두드려가며 확인했으니까.

그래서 그와 나는 이 홀을 탐색해보기로 했다. 상철의 말대로, 홀 가운데에 있는 기둥에는 처음 방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철문이 붙어 있었고 문을 열 수 있는 스위치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철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나를 불렀다. 여기 봐봐요.

그가 발견한 것은 홀 바닥의 어느 지점이었다. 전부 콘크리트로 덮여 있는 듯이 보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손바닥만한 정사각형 금이 가 있었다. 이 정사각형은 미세하지만 주위보다 조금 튀어나와 있었다.

이게 스위치일까요? 그가 물었다. 나는 확인해보지 않았냐고 반문하지 않았다. 확인했다면 내가 지금 그와 이렇게 대화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그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를 불렀으리라. 나는 그를 보고 말했다. 상철씨가 찾아냈으니까, 상철씨가 눌러봐요.

그는 주저했다. 당신이 죽을지도 몰라요. 나는 답했다. 괜찮을지도 몰라요. 아직 여섯 명이 더 나와야 할 것 같고, 그 사람들보다 먼저 나온 내가 죽을 것 같지는 않아요.

상철은 벽에 붙은 문을 돌아보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 다음 스위치를 보았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그가 한 호흡을 쉬었다가 말했다. 알았어요. 내가 눌러보죠.

그는 힘을 주어 스위치를 눌렀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아무 변화도 없었다.

이번엔 정말로 아무 변화도 없었다. 나는 상철을 보았고, 그는 스위치를 내려보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이거 스위치가 아닌가본데요.

아니라고요?

눌려지지가 않아요.

나는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허탈한 웃음이었다. 내 얼굴에도 같은 종류의 웃음이 떠올랐다.

나는 잠시 사각형의 금을 내려보다가 말했다. 이거 스위치가 아니라 덮개일지도 모르죠. 상철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튀어나오지는 않았잖아요.

혹시 모르니까 해보죠.

나는 손톱을 사용해서 사각형을 들어내 보려고 시도했다. 조금이지만 들썩거렸고, 나는 그 보라는 듯 상철을 올려보았다. 그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몇 번의 실패 후에 사각형을 뽑아낼 수 있었다. 어두운 방에서 만졌던 것 같은 플라스틱 버튼이 안에 들어있었다. 이 버튼이 스위치일 듯했다. 나는 상철을 보고 말했다. 다시 눌러봐요.

상철이 눈썹을 찡그렸다. 덮개라고 알아낸 건 동욱씨잖아요.

애초 이걸 발견한 건 상철씨죠.

내 목소리에 타협의 여지는 없었다. 상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가 다시 버튼을 눌렀다. 이번엔 변화가 있었다.

버튼에 녹색 불이 점등되었다.

그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꼭 내가 죽기를 예상한 건 아니지만, 그 외의 아무 변화도 없자 조금 허탈해졌다. 상철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장으로부터 들려오는 합성음이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권리를 획득했습니다.

그 이상은 없었다. 뭔가 더 일어나진 않는군요. 내가 말했다. 상철이 대답했다. 버튼이 더 있고 그걸 다 찾기 전에는 뭔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럴지도 몰랐다. 처음 방에서 두 명 중 한 명이 죽었는데 이번에는 여덟 명 중 일곱 명이 죽는다면 납득이 안 된다. 물론 그것이 내가 상철에게 버튼을 먼저 누르도록 양보할 수 있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홀 중앙의 문은 숨겨진 버튼을 모두 찾아내야만 열리게 되어 있는 구조일지 모른다.

상철은 권리를 획득했다고 목소리가 이미 말했지만, 그래도 그는 나를 위해 계속 스위치를 찾아주었다. 이내 그가 또 다른 스위치를 발견했다. 나는 덮개를 열고 버튼을 눌렀으며, 녹색 점등을 보고, 상철이 들었던 것과 같은 합성음을 들었다.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으나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벽에 붙은 문 안쪽에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조금은 불편했지만.

우리는 좀 더 기다렸다. 서로 기억해낼 수 있는 것이 너무 적었던 탓에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상철이 스물 둘이어서 내가 형이라는 정도만 알아낼 수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왜 이런 곳에 있게 되었는지, 누가 이런 곳을 만들었는지, 어떻게 사람 머리가 갑자기 폭발했는지, 어떤 것도 짐작해낼 수 없었다. 이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점만은 분명했으나, 그게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어주진 않았다.

오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나왔다. 나온 순서대로, 눈매가 날카로운 여자, 김영주. 헬스를 한 듯 근육질인 남자, 유장혁. 그들 역시 우리가 입은 것과 같은 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캔버스화를 신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과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을 합쳤다. 그들이 아는 내용은 우리가 아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어쨌든 그들 역시 상황을 파악했고, 스위치를 찾았다. 영주가 먼저 버튼을 눌렀고, 장혁은 불안해했지만 그녀에게 먼저 기회를 주었다. 마지막 버튼을 찾을 때쯤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사람이 나왔다. 우리는 그 남자의 이름은 알 수 없었다.

장혁이 버튼을 누르고 녹색 불이 점등되는 순간 그 남자의 머리 한쪽이 터지며 피가 솟구쳐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대로 쓰러졌고 우리는 말없이 그를 보았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권리를 획득했습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홀 중앙의 문이 열렸으므로 모두 그리로 걸어갔다. 실은 반쯤 뛰었다. 이 금속문 역시 방지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열린다는 보장이 없음을 모두 알고 있었다. 더불어, 이 홀에서 나간다고 그게 끝이라는 보장도 없다는 것도. 우리는 이미 모두 경쟁자였다.

문 안에는 나선형 계단이 있었다. 내려가는 계단은 없고 올라가는 계단만 있었다. 올라가자 손잡이가 달린 금속문이 있었다. 이 문 역시 이쪽에서만 열 수 있고 저쪽에서는 열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사람은 상철이었는데, 그는 문을 닫기 전에 잠시 망설였지만 그대로 문이 닫히게 놓아두었다.

이번에는 40평 정도 크기의 방이었다. 이 계단이 있는 곳이 여전히 방의 가운데가 되도록 위치해 있었다. 한편에 금속문이 보였는데 그 주위에 버튼은 없었다.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잠시 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좀 전까지와는 상황이 다르다. 분명하게 얼굴을 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죽는 사람이 나온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 움직인다면,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뜻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이 상황에서 좀 더 머뭇거렸을 수도 있다. 만약, 이 상황이 아주 갑작스러운 것이었다면, 다시 말해서 아무도 죽이지 않았던 상태에서 갑자기 주어진 상황이라면. 그러나 우리는 이미 적어도 각기 두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빼앗지 않으면 빼앗기게 된다는 것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

지금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 누군가는 움직인다. 늦게 움직일수록 손해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죽은 남자를 떠올렸다. 문을 열고 나오지조차 못하고 죽었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우리를 움직인 것은 암묵적 합의였다. 먼저 찾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모두가 움직였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각기 서로 떨어져 스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바닥에 있을지 모르지만 벽에 있을 수도 있다. 천장에 있을 듯하지는 않았다. 이 미터 반은 되는 높이였고, 키가 이 미터 이상 되는 사람만 있다면 몰라도 일반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높이가 아니었다. 영주는 상철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으므로 논외였고, 장혁은 키가 컸지만 그래도 백구십 센티미터 근처였다.

우리는 각기 열심히 찾았다. 어디에 스위치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바닥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은 어떻게 찾고 있는지 간간히 살폈는데, 상철은 벽을, 장혁은 바닥을, 영주는 벽을 살피고 있었다. 종종 그들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는데 서로 못 본 체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천장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권리를 획득했습니다.

나는 아직 스위치를 찾지 못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장혁과 영주도 당황해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당황하지 않은 사람은 상철뿐이었다. 그가 있는 벽 앞에서 자그마한 버튼이 녹색으로 점등된 것이 보였다. 아래층에서 보았던 것처럼, 덮개를 열고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었다.

남은 스위치는, 아마도, 하나.

벽을 찾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도 그랬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제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는 없어졌으니까. 나는 벽을 샅샅이 뒤졌다.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지, 흠집이 있는지,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찾았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사각형 흠집이 보였다. 약간 튀어나와있기도 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철은 그저 가만히 앉아있었고, 장혁과 영주는 이 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내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상철은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나를 방해할 이유는 없으리라. 나는 덮개를 벗겨내려 시도했다.

잘 되지 않았다. 아니,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빼내는 게 아니었나? 시험 삼아 눌러 보았으나, 눌러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빼내는 게 맞다. 나는 다시 시도했다.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

그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영주의 목소리였다. 찾았다고? 나는 당황해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영주가 덮개를 빼내어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한 듯, 그녀도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불운이 되었다. 그녀는 살필 것이 아니라 그냥 재빨리 버튼을 눌렀어야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장혁이 그녀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 때 생각하지는 못했고 그로부터 조금 뒤에 생각한 일이었지만, 장혁이 그녀에게 달려든 것은 단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 후에 달려들었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민첩했다. 아마도 그는 스위치가 하나 남았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누군가가 자기보다 먼저 찾으면 빼앗으려고 벼르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게 더 손쉬운 길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같이 완력이 강한 남자에게는 실제로도 그러할지 모른다.

그렇다지만 영주에게 장혁이 달려드는 사이에 버튼을 누를 시간 여유가 없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는 그 상황에 놀랐고 굳어버렸다. 뒤늦게 버튼을 누르려 했으나 말 그대로 때늦었다.

그녀가 버튼을 누르기보다 빠르게 장혁이 그녀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턱이 어그러진 듯이 보였다.

그 때는 나도 장혁에게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가 그녀의 권리를 빼앗을 수 있다면 나라고 가만히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는 먼저 찾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암묵적 합의를 무시했다. 영주가 버튼을 누른다면 나도 포기할 수 있겠지만, 장혁에게는 그럴 수 없다.

늦지 않는다.

장혁 역시 자신이 달려들었던 기세 때문에 멈칫거리고 있었다. 곧바로 버튼을 누르지는 못한다. 그가 누르기 전에 내가 달려들 수 있다.

나는 한달음에 그에게까지 달려들어 어깨로 그를 들이받았다. 그는 버튼을 누르려 하느라 팔을 들어올린 차라 옆구리를 얻어맞았고, 덕분에 신음과 함께 비틀거리고 몇 걸음 물러났다. 그가 나에게 달려들기보다 내가 버튼을 누르는 쪽이 조금 더 빨랐다.

녹색 불이 점등되었다.

나를 바라보는 장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작은 폭발음과 함께 그의 머리 한쪽이 터져나갔다. 그의 무릎이 꺾였고 그대로 넘어갔다.

쓰러진 영주의 머리 한쪽도 터져나갔다. 자그마한 피웅덩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권리를 획득했습니다.

축하한다고? 구역질나는 일이었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철 냄새가 났다. 누군가의 피, 아마도 장혁의 피가 얼굴에 묻은 듯했다. 소매를 들어 얼굴을 닦았다. 검붉은 액체가 묻어났다. 철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피 냄새. 나는 잠시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상철 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이미 이 방 안에 없었다. 열린 문 너머로 그가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뛰기 시작했다. 뛰기 시작하기 전에, 잠깐 마지막으로, 죽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보지 않는 게 좋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했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나는 영주에게 말했다. 그녀가 들을 수 있을 리 없었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다시 뛰기 시작했다.

열린 문 너머에 있는 계단을 오르려 했을 때,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린 기분이 들었다.

어떤 소리였는가 생각하려 할 때는 이미 생각이란 게 되지 않았다. 시야에 순식간에 검은 안개가 끼더니 보이는 사물이 기울어졌다. 적어도 그렇다고 느껴졌으나, 다음 순간에는 모든 것이 어둠으로 변하고 아무 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죽었다.



이번 방은 작았다. 10평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방과 같았다. 방으로 들어가기 위한 문은 들어갈 때만 열 수 있으며, 나가기 위한 금속문은 스위치를 찾아야 열 수 있다. 지금까지는 스위치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찾기 아주 쉬웠다. 방 가운데의 바닥에 그냥 드러나 있었으니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 동욱이 올라오는 것을 기다려서, 가위바위보라도 해야 할까. 그러나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걸고 가위바위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는 일종의 합의가 있었다. 먼저 스위치를 찾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합의. 그 합의대로라면 내가 살아남는 것이 맞다. 방금 전 방에서 그 합의가 깨지긴 했지만, 어쨌든 상대방을 힘으로 쓰러뜨리고 살아남는 게 새로운 규칙이라면, 그런 규칙을 적용해보아도 내가 살아남는 것이 옳다.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동욱이 올라오기 전에 누르는 쪽이 낫다. 그의 얼굴을 보면서 버튼을 누르기는 힘들 터였다. 그를 위해서도,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이 쪽이 맞다. 그래서 나는 버튼을 눌렀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권리를 획득했습니다.

금속문이 열렸다. 나는 이 방을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가 올라왔던 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 나는 동욱에게 말했다. 그가 들을 수 있을 리 없었지만, 그렇게 말해두고는 싶었다.

나는 방금 것이 마지막 방이리라고 생각하며 계단을 올랐다.

그러나 아니었다.

방이 더 있었다. 5평 크기의 방이었다. 금속문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나는 스위치를 찾아보았으나, 이번에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심지어 천장까지도 살펴보았다. 이번 방은 발돋움하고 손을 뻗으면 천장에 닿을 수 있을 정도라 천장도 살필 수 있었다.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지만.

두 시간 정도 찾은 끝에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 앞에 있는 것이 복도도 테이블도 아니었다. 지금 있는 방과 비슷한 크기의 또다른 방이었다. 그 방에는 테이블이 있었고, 테이블 위에 접시와 스테이크, 나이프와 포크가 놓여있었다. 고기 냄새에 허기가 살아났다. 나는 깨어난 후로 적어도 다섯 시간은 되었을 텐데 그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던 것이다.

최종 생존자를 위한 포상인가?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어서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죽인 사람 중 한 명의 고기입니다. 먹지 않으면 다음 방으로 갈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잠시 이해되지 않았다. 그 의미가 이해되었을 때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오한과 함께 뱃속으로부터 무언가가 역류하려 들었다. 방금까지 느끼던 허기는 순식간에 모두 사라졌다.

뭐라고? 내가 소리쳤다. 나보고 인육을 먹으라는 소리야? 미쳤어?

목소리는 다시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은 아마도 진실일 것이다. 내 눈 앞에 놓여있는 이것은 사람 고기이고, 먹지 않으면 다음 방으로 가지 못하고 계속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다. 다음 방. 목소리는 다음 방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끝나리라고는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보다 더 심한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처음에는 모르고 다른 사람을 죽였다. 그 다음에는 누군가 죽게 되리라고 짐작하면서 죽였다. 그 다음에는 얼굴을 아는 누군가가 죽게 될 것을 각오했다. 그 다음에는 분명하게 누가 죽을지 알면서 죽였다.

단지 내가 살기 위해서.

그 규칙에 순응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테니까.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디로 나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누가 이런 일을 꾸몄나? 그 누군가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이런 일을 하는 건가? 내가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 건가?

아니, 무엇보다도, 언제부터 나는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규칙에 이렇게 익숙해져 있었나? 지난 방에서는 서슴없이 아는 사람을 죽였고, 이제는 내가 죽인 누군가의 고기를 먹어야 할지를 고려대상으로 놓고 있다.

여기에서 깨어난 이후, 처음으로, 나는 이곳에서 죽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내 앞에는 고기가 놓여있다. 인간의 고기다.

아직은 먹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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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에 이어, 이번 P대 교내 문학상에 공모할 단편입니다. '불편한 글'을 목표로 써봤는데 정말 불편하네요. 써놓고도 이런 거 교내 문학상에서 받아줄까 싶긴 합니다. 그래도 일단 이런 게 써보고 싶어서. 아주 처음에 구상했던 버전은 무난하긴 한데 너무 무난한데다 작년 <말하는 붕어빵>의 변용 정도밖에 되지 않는 듯해서 마음에 안 들더군요. 그래서 냅다 달려버렸습니다.

하룻밤.. 즉 8시간만에 원고지 80장을 써냈군요. 퇴고는 거의 안 했습니다.. 라기보다 못 했습니다. 마감일이 오늘인데 오늘 새벽에 쓰기 시작했으니 답이 없지요. 쓰고 보내버린 후 (= 같은 학교인 카방글이 프린트해서 내주기로 해서, 보냈다는 표현이 가능합니다) 자버리려고 일단 달렸습니다. 퇴고할 시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제 제가 제정신이 아니에요. 제정신이 아닌 글이니 제정신 아니게 쓰는 게 맞을 지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썼습니다. 뭐 상을 받을지 안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간만에 단편 하나 써냈다는 걸로 일단 OK. 좀 말초적이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만 지나치게 관념적인 것보다는 낫다 싶기도 하고. (그간의 제 단편은 너무 관념적이어서) 여하간 실험적으로 써봤습니다. 교내 문학상에 이런 걸 써낸다는 건 이 남자가 이젠 배가 불렀다는 뜻일지도.. 핫핫.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