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인
스콧 힉스 감독, 노아 테일러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이 감상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테토칩에 감자 들어간 함량만큼이나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특성상 스토리를 쭉 풀어 나가는 감상이 되기 때문인데, 사전 정보 없이 보고 싶으신 분은 주의하세요.

저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제일 좋아합니다만 친구인 ㅋ군은 3번을 좋아합니다. 그가 3번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이 영화 <샤인>을 본 것이었는데 저는 안 봤었죠. 사실 음악을 좋아하는 건 그냥 들어서 좋아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 어떤 계기로 인해서일 때도 있잖습니까. 영화를 보기 시작할 때까지도 이 영화가 어떤 영화였는지 전혀 몰랐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분명 나도 라흐 피협 3번이 좋아질 거다' 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자신있게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유가 어째 좀 이상하다 싶지만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스포일러를 잔뜩 발설하며 스토리와 함께 이야기를 펼칩니다. 포테토칩의 봉지를 열 각오가 되신 분만 클릭하세요


영화는 어느 비 오는 날 작은 식당에 나타난 한 중년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왜소하고 초라하며 몸이 조금 굽어 있는 이 남자는 자신만의 세계를 사는 듯하고 염소 울음 같은 소리를 내며 영 자신감이 없어 보입니다. 바로 이 남자가 주인공입니다. 분명 그에게는 어떤 사정이 있었을 터이고, 그를 그가 살고 있는 곳으로 돌려보낸 후부터 영화는 시점을 과거로 돌려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과거로 돌아가 소년이 되었고, 그 소년의 이름은 데이비드 헬프갓 (David Helfgott). 신이 돕는다 (HelpGod)는 식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성입니다. 이 소년의 아버지는 음악을 사랑했고 소년을 피아니스트로 키우길 원했습니다. 소년을 사랑했으며 보살펴 주려는 마음이 가득했으나, 문제는 이 아버지는 완고했으며 오로지 자신의 방식대로만 가족의 형태가 구성되길 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딸이 다른 남자와 만나는 것을 보고는 빠져나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 버리는 아버지였고, 아들이 청년이 되어 재능을 인정받고 미국 유학을 권해 오는 편지를 받았을 때에도 가서 무슨 일이 생길 지 모른다며 편지를 불태워 버리는 아버지였습니다. 분명 아들을 사랑하고는 있었으나 그 방법이 틀렸습니다. 게다가 또한, 세상은 이기는 것이 전부라고- 피아노를 통해 음악 그 자체를 즐기기보다 다른 사람을 이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아버지였지요. 이런 아버지 밑에서 건강한 정신으로 성장하기도 힘든 일입니다. 소년은 어딘가 억압된 듯 소심하고 말을 약간 더듬으며, 청년이 되어서까지도 이불에 세계지도를 그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화 내용을 다 설명해버릴 생각은 아니니 조금 뛰어 넘어서, 여하간 좀 더 지나서 영국 왕립 학교에서 유학을 권해 왔을 때에는 이 청년도 간단히 아버지에게 수그리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합니다. 아버지는 가족은 모두 함께 있어야 한다며, 네가 지금 간다면 가족이 아닌 것으로 치고 연을 끊어 버리겠다고 말하지만, 이미 청년의 결심은 확고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갔고 청년은 피아노를 열심히 연습해 갑니다. 그리고 드디어, 정신이 이상해져 버리게 된 계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본격적으로 연습하게 됩니다. 이 곡은 이 청년이 어릴 때 이미 녹음기를 듣고 연습했던 곡이었고, 자신이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하다던 아버지가 선생에게 자신의 아들을 맡기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곡입니다. 오로지 라흐마니노프 3번을 연주하게 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레슨을 시작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지요. 물론 아직 그 곡을 치기에는 이르다며 다른 곡들부터 먼저 시작했습니다만. 미치지 않으면 이 곡을 연주할 수는 없다는 지도선생이었으나 이 청년이 "저는 충분히 미쳐 있어요, 그렇지요?" 라고 말하자 결국 응낙하게 됩니다.

그리고 연주회가 열리고, 헬프갓은 라흐마니노프 3번을 멋지게 연주합니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게도 연주를 마치자 돌연 쓰러져 버리고, 이후 이 남자는 20년 동안이나 정신 병원에 갇히고 피아노를 만질 수도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는 것이나 악보를 보는 것이나 개인적인 손운동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말이죠. 여하간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이 남자도 병원을 나가게 됩니다. 그를 데리고 나가 줄 여성이 하나 있었죠. 그의 팬이었습니다. 다만 그녀는 그의 음악을 사랑했지만 그의 어린애 같은 행동이나 애정을 갈구해 오는 행동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남자 - 성당의 아는 신도 - 에게로 보내지요. 그러나 이 남자 역시 헬프갓의 모두를 받아 주지는 않았습니다. 피아노를 쳐 대서 시끄럽다는 불평이 오자 피아노를 잠그고 쓰지도 못하게 합니다. 집 안에 있기만 해서는 건강에 나쁘니까 운동이라도 하라고 하죠. 그래서 헬프갓은 밖으로 나가게 되고- 비가 오는 어느 날 작은 식당으로 갑니다. 이제 과거를 보는 것을 지나쳐 현재까지 돌아왔습니다.

그 비가 온 다음 날, 그냥 정신병자로만 생각되는 이 초라한 남자가 다시 이 식당으로 가 사람이 가득한 이 식당의 피아노에 앉았습니다. 건반을 두들겨 보는 이 남자의 모습이 보기에는 그냥 어리숙한 중년으로밖에 보이지 않기에 제지를 할까 하고 종업원이 다가가 부드럽게 일으켜세우려 하지만, 돌연 무언가의 멜로디를 개시한 이 남자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현란하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음악, 이름하여 '왕벌의 비행'! 식당 안은 조용해지고 연주가 끝나자 박수가 울려퍼집니다. 이 남자는 비로소 이기기 위한 연주가 아니라 즐기기 위한 연주를 사람들에게 들려 준 것이죠. 박수를 받는 헬프갓의 표정이 그렇게 부드럽고 즐거워 보일 수가 없습니다.

이 일로 인해 헬프갓은 이 식당에서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기억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나옵니다. 이 신문을 보고 의절했던 아버지가 찾아오고, 아버지는 예전에 헬프갓이 라흐 3번을 치고 받은 메달을 이 남자의 목에 다시 걸어 주며 예전 이야기를 하고 '이기기 위한 음악'론을 다시 설파하려 합니다만, 헬프갓은 그 대화에서 대답을 촉구하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립니다. 그리고 창문을 보고 뒤돌아 섰다가 '중요한 건 살아 남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만, 아버지는 이미 그 곳을 나갔기 때문에 그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창가에 서서 돌아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이 남자는 잘 가시라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알지만 그 방식은 옳지 않기에, 이제는 다른 길을 가는 겁니다.

이후 이 남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고 결혼하며, 연주회를 열고 재기에 성공합니다. 이제는 우승하고 우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앵콜을 연호하고 기립박수를 해 오는 사람들 앞에서, 헬프갓은 눈물을 흘리고 감동하며 섭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헬프갓과 아내는 헬프갓의 아버지의 무덤에 서 있다가 돌아옵니다. 자신의 탓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아내는 자신을 탓하는 건 좋지 않다고 말하고, 헬프갓은 고개를 끄덕이며 "매사에 자신을 탓하면 안 돼. 아버지는 안계시니까 아버지도 비난하면 안 돼." 라고 말합니다. 세월은 흐르고, 영원하지 않으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살아야 한다고. 항상 이유가 있으며- 순간에 맞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뭐 개인적인 주장을 설파하자면 역시, 사람을 사람답게 해 주고 살아가는 데 가장 큰 힘을 주는 것은 역시 사랑이지 싶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이 영화는 너무 지나치거나, 너무 모자라거나, 너무 늦어서 때를 놓친 사랑이 가져다준 상처를 다룬 영화라고 했다는군요. 영화 내내 주인공은 상처 받고 자신의 세계에 파고들고 맙니다. 그러나 그를 그 세계로부터 꺼내 주는 이는 역시 그를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었지요. 어긋난 사랑이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망가뜨린다 해도 역시 그것을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경쟁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세워 주는 원동력이 아닐까요.


여담-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안 사실 두 가지.

1.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했더군요. 실제의 데이비드 헬프갓은 1947년 5월 19일생이고,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이며, 1984년에 정신분열증을 극복하고 재기하여 첫 독주회를 했다고 합니다. 아내 이름도 영화와 같은 길리언이군요. 이 영화에서 어디까지가 각색이고 어디까지가 실화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체적으로는 비슷한 모양입니다. 사실 영화를 보는 중에, 만들어낸 플롯이라면 좀 더 치밀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지요.

2. 장년의 데이비드 헬프갓을 연기한 사람이 제프리 러쉬 (Geoffrey Rush) 더군요. 무심히 스탭롤을 보고 있다가 꽥 하고 비명을 지른 후 캐리비안의 해적 DVD를 꺼내 표지와 비교해 보았습니다. 터프가이 캡틴 바르보사와 이 샤이가이 피아니스트 헬프갓이 동일 인물이라니. 이 사람도 연기폭 꽤나 넓군요.


그리고 최후로 추가: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저도 라흐 피협 3번이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낄낄)
Posted by Neissy
(cafe24 대화방에서 대화한 것을 옮겨 보았습니다. 대화하다 쌍절곤 이야기가 나오고, 쇠사슬이 아니라 끈으로 잇는 쌍절곤 이야기가 나온 시점이었어요)


Neissy ▶ 흐음
Neissy ▶ 사실 끈 쌍절곤 굳이 안 사도
Neissy ▶ 나름 개조하면 되긴 하는데..

Justice™▶ 어
Justice™▶ 맞네...

Neissy ▶ 간지나는 끈이 없어

Justice™▶ ㅋㅋㅋ
Justice™▶ 신발끈 어때.

Neissy ▶ 뭔가 누리끼리하잖아 그거 ㅋㅋ

Justice™▶ 아니면 헌 낚시줄이라도..
Justice™▶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ustice™▶ 야광 낚시줄!
Justice™▶ 이러면

Neissy ▶ 미치겠다

Justice™▶ 우와 현란!
Justice™▶ 엥?
Justice™▶ ㅋㅋㅋ

Neissy ▶ 밤에 돌리면 죠낸 화려하겠는데 그거?

Justice™▶ ㅋㅋㅋㅋㅋㅋㅋㅋ
Justice™▶ 저스티스의 제안으로
Justice™▶ 네이시님은(는) 광대가 되었습니다

Neissy ▶ 그 왜 돌리면
Neissy ▶ 번쩍번쩍 빛나는 완구 있잖아
Neissy ▶ 쌍절곤도 그런 재질로!

Justice™▶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ustice™▶ 뭐랄까
Justice™▶ 요요?
Justice™▶ ㅋㅋㅋㅋㅋㅋ

Neissy ▶ 어 그런거 ㅋㅋ

Justice™▶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ustice™▶ 알지알지 ㅋㅋㅋㅋㅋ
Justice™▶ 정모 때
Justice™▶ 같이 하자
Justice™▶ ㅋㅋㅋ

Neissy ▶ 이제부터 나는 밤의 황제
Neissy ▶ 퍼포는 내게 맡겨라!

Justice™▶ 난 밟으면 삐국삐국 소리나는 쓰레빠 신고 갈게

Neissy ▶ ㅋㅋㅋㅋ

Justice™▶ ㅋㅋㅋㅋㅋㅋㅋㅋ
Justice™▶ 한놈은

Neissy ▶ 삐국삐국 소리내며 태권도

Justice™▶ 삐국삐국 걸어다니고
Justice™▶ 다른 한 사람은
Justice™▶ 빛나는 쌍절곤 휘리릭
Justice™▶ ㅋㅋㅋㅋㅋㅋㅋㅋㅋ

Neissy ▶ 그걸 신고

Justice™▶ 우리
Justice™▶ 동춘서커스단 스카웃되겠다

Neissy ▶ 스텝을 밟으면

Justice™▶ ㅋㅋㅋㅋㅋㅋㅋㅋ

Neissy ▶ 삐꾹 삐꾹 삐꾹

Justice™▶ 삐삐국 삐삐국
Justice™▶ ㅋㅋㅋㅋㅋㅋㅋㅋ

Neissy ▶ 상대가 웃겨서 지겠는데

Justice™▶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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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이러고 놀아요 (먼산)
Posted by Neissy
The Fighting 더 파이팅
모리카와 조지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아는 사람은 다 알 모리카와 조지의 권투 만화입니다. 이 만화의 재미라면 여러 가지 있겠습니다만 역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들의 박력 있는 경기, 그리고 그 경기 사이에 이어지는 에피소드와 서로간의 맞물림, 개그 등을 들 수 있겠군요. 전형적인 성장형 배틀 만화로서 연습해서 강해지고, 그 강해진 능력으로 더 강한 상대와 맞붙는다는 식의 이 패턴은 어지간해서는 쉽게 질리지 않습니다. 주인공 일보 (원 이름은 마쿠노우치 입뽀. 이 만화가 정발 시작된 게 꽤 예전의 일이고, 그 때는 일본 이름 티가 너무 나면 창씨개명당했습니다 (...))는 아직 일본 챔피언으로 방어전을 거듭중이고, 세계 챔피언까지 가는 동안 이 만화로 모리카와 조지는 평생을 그릴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일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각각 자신의 경기가 있으니까요. 사실 일보가 세계 챔피언 먹어도 작정만 하면 그 후 이야기도 무궁무진합니다. 라이벌인 일랑 (원 이름 미야타 이찌로)과의 시합도 대체 언제 할 지 의문이고)

실제의 권투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만 이 작가는 박력 있는 권투 시합을 그리는 방법을 압니다. 무엇보다 80권이 되도록 시합을 그려 왔기 때문에 그 나름의 노하우가 엄청나지요. 타격감 하나만큼은 정말 최고수준입니다. 최근의 시합 상대들은 예전에 느껴졌던 그런 포스가 덜하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만 (그래서 한때는 모으는 걸 중지했습니다만) 역시 경기 장면의 파워만큼은 최고급이고, 작가 자신도 힘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는지 이런 저런 시도를 하는 듯 합니다. 사실 다른 건 접어두고 시합 장면만으로도 이 만화는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면 제가 굳이 포스팅을 하려 들지는 않았겠지요. 이 만화가 주는 감동은 '시합이 박력있다'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만화의 주인공 일보에게는 하나의 지향점이 있습니다. '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강한 것은 어떤 기분일까?' 본래 집이 낚시배를 한다는 이유로 이지메를 당했던 이 주인공은 마모루 (원 이름 타카무라 마모루. 이 사람은 성을 '마'씨라고 우길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마모루로 간 듯 합니다 (...))와의 만남을 계기로 복싱계에 입문하게 되고, 점점 실력을 키워 가면서 강해지게 되고 여러 강적과 상대해 승리해 갑니다. 그의 목적인 '강해지고 싶다'는 것은 어쩌면 끝이 없는 목표입니다. 육체적인 강함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목표이며 정신적인 강함이 함께 해야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요. (사실 이 점에 있어서는, 인간의 진정한 정신적인 강함은 이 만화에서는 그다지 강조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근성이나 투쟁심 같은 복서다운 정신적 강함은 강조되지만 거기에는 진짜 만족은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뭐 그거야 어쨌든간에) 그래도 일보는 계속 그 끝이 없는 목표를 향해 오늘도 달려 갑니다.

목표를 향해 도전해 가는 사람- 제가 이 만화에서 보고 감동하는 부분입니다. 특히나 이 만화에서는 '도전자'라는 단어에 상당한 강세를 두고 있습니다. 일보는 챔피언이 되어도 도전자의 자세로 경기에 임하겠다고 말하고, 실제로 그런 자세로 임할 때에 좋은 결과가 나왔으며, 압천 (원 이름 카모카와) 관장은 일보가 도전자의 자세로 임한 것에 대하여 좋게 평가합니다. 사실, 이 만화의 캐릭터들은 다들 무엇인가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권투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게 더 꽤 직관적으로 드러납니다만,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그 능력을 시합에서 시험하게 됩니다. 저는 복서가 아니니 저렇게까지 직관적은 아니어도, 무엇인가에 대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노력으로 얻는 능력을 세상에서 시험당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만화에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박력 있는 타격감? 중간 중간 나오는 유쾌한 개그? 그것은 만화로서의 흥미를 좌우하는 중요한 부분이고 만화를 계속 보게 만드는 원동력 중 하나입니다만, 정말로 이 <더 파이팅>이라는 만화에서 사람을 찡하게 만드는 부분은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얻어맞고 깨지고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조차 날리려는 한 발의 펀치- 그러나 그럼에도 결국 닿지 못하는 아쉬움. 맞아 붓고 찢어져서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수천 수만 번이나 연습해왔던 대로 행동해 나가는 복서- 상대가 쓰러졌음에도 그것을 보지 못했기에 링 위에서 계속 나아가고 있는 복서. 여기에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감량과 혹독한 연습으로 자신을 만들어 서로를 부딪히고 그 능력을 내보입니다.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으며, 고생 끝에 승자가 된다면 그것은 기쁜 일이지만 혹은 패배하기도 합니다. 단지 노력하고 꾸준히 한다는 것만으로 좋은 결과가 나올 만큼 만만한 세계는 아니니까요. 혹독한 세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노력은 빛을 발합니다. 열심히 해도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감동적입니다. 인내하고 단련하며 자신을 내보인다. 어느 세계에서든 마찬가지겠죠.

개인적으로 이 만화에서 압천 관장이 하는 말들을 좋아합니다. 힘들 때 문득 이 캐릭터가 한 말을 기억해내고 다잡곤 하죠. 크게 와닿은 것에는 두 가지가 있고, 그것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노력한 사람이 반드시 성공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은 모두 예외 없이 노력했다는 걸 명심해!" (42권 156p)

"그래, 넌 지금이 피크라 이거냐? 지금 상태가 그렇게 만족스럽다 이거지?! 위를 보지 않는 인간은 미래도 없어!" (47권 27p)


전자는 마모루의 세계전에서 한 말이고, 후자는 라이벌과의 시합을 염원하는 일보가 대전을 허락해달라고 말하며 "앞으로 계속 이긴다는 것도 자신없습니다. 지금이 가장 멋지게 싸울 수 있는 기회인데···." 라고 하자 화를 내며 한 말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꽤나 여러 가지로 저를 다잡아 주는 말입니다. 솔직히 세상은 혹독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고는 볼 수 없지요. 하지만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는 기회조차도 오지 않고, 그런 이에게 진짜 생명력은 없습니다. 우울해지기보다는 그 시간에 더 노력한다는 의미로 떠올리곤 합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현재의 스스로에게 자만감이 들 때 떠올리곤 합니다. 지금의 내가 그렇게 대단한가? 더 공부하고 노력해서 높은 곳으로 올라 설 수 있지 않은가? 지금이 정말로 나의 피크인가? 현재의 자신이 아직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문득문득 지금 내 능력으로 이 세계에 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통하지 않는다면 좌절해 버리게 되는 일이 있죠.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그럴 때 저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결국 이런 식입니다만, 살아가는 세계는 다르다 해도 노력하고 도전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만화에서 보여주는 이들의 노력과 고생과 도전이 와 닿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겠죠. 이들 역시 잘 되기를, 그 노력이 보답받기를 바라게 된달까요. 저는 이것이 이 만화를 단지 적당히 멋진 시합을 즐기는 만화가 아니라 그 와중에서 무언가 와닿게 하는 만화로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해도 작가가 만화 너무 우려먹는다는 느낌 들게 되면 또 안 보게 되겠지만요. (낄낄)
Posted by Neissy
나비효과 [dts-ES]
에릭 브레스 외 감독, 애쉬튼 커처 외 출연 / 엔터원

주의사항: 이 감상문은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스포일러를 포함하게 되므로 특별한 선지식 없이 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은 주의하세요. 그러나 되도록 영화 자체의 감상에 치명적인 부분은 줄이고 개인적인 생각을 적을 생각입니다.


누구에게나 과거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 겁니다. 그 때 이렇게 했더라면, 혹은 저렇게 했더라면. 현재는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은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지는 않았을까. 이런 생각은 원래는 망상에 불과하겠지만, 만약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바로 그러한 상상을 영화로 내놓은 것이 바로 이 <나비효과>라는 영화입니다.

나비효과가 무엇인지는 보통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한 번 더 설명하겠습니다. 영화 초반부에도 대강 나옵니다만 "북경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한 것이 다음 달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이론입니다. 초반의 작은 변수의 변화가 여러 가지 상황을 거쳐 마지막에는 어떤 결과를 낳을 지 모른다는 이론이죠. <나비효과>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에반은 어떠한 매개체를 가지고 과거의 행동을 바꾸어 놓는 능력을 지닙니다. 이 능력은 그의 아버지에게도 있었고 이를테면 유전이라고 할 만 합니다. 영화의 초반에는 에반도 이 사실을 몰랐고, 어떠한 상황에서 갑자기 기억상실이 찾아오고 영화에서도 그 부분은 상황재연을 돌연 뛰어넘어 버립니다. 강렬한 스트레스로 인한 기억상실이라고 설명되지만 영화의 중반부에서는 그것이 아님을 알게 되죠. (사실 이 주인공의 과거변경능력 부분이 원래는 기억상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되는 게 어쩔 수 없다고 미리 밝혀 둔 겁니다)

다만 일반적인 과거회귀망상과는 조금 다르게, 이 주인공에게 가능한 건 과거로 돌아가 그 때부터의 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한순간>만 바꾸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순간만 바뀌고 그 이후로는 모든 게 그 변수의 조정에 따라 재조정되고 그 중간중간에서는 특별히 현재의 의지로 변경할 수 없습니다. 과거를 바꾸고 나면 갑자기 <변경된 현재>가 찾아오는 겁니다. 에반은 자신이 사랑하는 켈리라는 아가씨와 행복한 미래를 함께 하고 싶어 과거를 바꾸지만, 그래서 찾아온 현재는 반드시 그가 원하는 행복한 미래만은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하나는 꼭 뒤틀려 있고, 그런 부분들이 기어이 현재를 망가뜨리고 맙니다. 과거의 한순간을 바꾸어 현재를 행복하게 하려 들면 들 수록 찾아오는 것은 더욱 더 암울한 수렁입니다. 점점 모든 것이 망가져가고, 과거를 되돌린 반향으로 자신의 뇌에도 부하가 걸려 몸 자체도 그 이상 갈 수 없을 만큼 무너진 상황에서 주인공 에반은 결국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말은?

..물론 제 감상에서는 그런 결말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전개되는 과정도 직접 보시길 권하고요. 초반부의 기억상실이라는 이름으로 <막혀 있던> 부분이 나중에 과거를 되돌리려는 과정에서 <재전개되는> 맛도 꽤 삼삼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여러 가지 현재>에서 <여러 가지 인생>을 사는 켈리나 다른 여러 배우를 보며 "와우, 저거 진짜 배우다"라는 생각을 했지요. 똑같은 배우인데도 보여 주는 인상이 다릅니다. 확실히 이런 걸 보면 배우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조금 되돌려서, 그 <한순간>만 되돌리고 그 이후로의 일은 자동으로 변경되어지는 형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과거를 바꾸고 싶다는 의미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과거 변경이 좀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살아간다는 건 게임이 아닌지라 나만의 의지가 아니라 내가 만나는 수십 수백 수천이나 되는 사람들의 의지도 함께 있고 그 역시 교차해가며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겁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그 한 순간을 바꾸어서 반드시 행복한 현재가 찾아오지는 않는 이유일 겁니다. 과거의 그 어떤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것을 바꾼다고 해도 꼭 현재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장담은 할 수 없는 이유죠. 이 영화의 주인공 에반이야 뭔 짓을 해도 결국 뭔가 너무 막장스러운 결말이 나와서 암울했습니다만, 그 정도까진 안 가더라도 실제로 저런 게 가능하다 해도 <누구나 행복한> 현재는 만들기 힘들 겁니다.

결론-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자. 과거는 바꿀 수도 없지만, 바꿀 수 있다고 해도 현재가 지금보다 더 나으리라는 보장은 없어요. 바꿀 수 없는 것에 신경쓰지 말고 지금부터 현재를 바꾸어 가는 게 훨씬 견실하고 건강한 인간의 사고방식이라고 믿습니다. 과거의 실패를 바꾸는 게 아니라 과거의 실패를 바탕으로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힘쓰기.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성장하는 원천이 아닐까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