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부터 도장에 복귀했습니다. 개인수련은 꾸준히 해 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예정이지만, 역시 도장에서 교정하고 연습하는 시간이 아니고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만은 어쩔 수 없죠. 이제야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는 기분이라 즐겁습니다.
도장에 나가지 못하고 개인수련만 4개월을 해왔던 셈인데, 물론 저야 그 사이사이에 도장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만나 치사오를 했기 때문에 순수하게 혼자서만 연습했던 건 아니므로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만, 어쨌든 사부님과 만나지 못한 기간이 4개월이나 된 건 처음이었고 이건 이것대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즉- 어쨌든 개인적으로 연습을 좀 해야 하는 부분도 무술에는 존재하니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향상을 꾀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그것만으로는 아쉬움이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달까요? 무엇보다도, 혼자서 연습할 때 결코 대충 하진 않았지만, 사부님이 봐주실 때 잡히는 포인트와 엄격함이 다르기 때문에 도장에서 비로소 꽉 조여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겠습니다.
일차적으로 앞으로 어떤 걸 목표로 삼아야 할지 좀 보였는데, 금방 되진 않겠지만 몇 년 안에는 가능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요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이 가능한 몸 자체입니다. 어떤 감각으로 몸이 움직여져야 할지 살짝 느낌이 왔습니다만, 이건 깨닫는다고 바로 될 게 아니라 계속해서 수련해가는 가운데 바뀌어갈 부분이기 때문에 역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위드 코로나로 인해 이제 도장 수련에는 별 지장이 없을 것 같은데, 다소 늦어졌던 발전 속도를 다시 좀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람직하네요.
초보가 무술을 독학해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어려운 거야 뻔한 거지만, 그럼 역으로 숙련자가- 이를테면 10년 이상 뭐라도 배운 사람의 무술 독학은 괜찮은가? 하면..
솔직히 말씀드려 본인의 무술을 몇 년을 배웠건 간에, 배우지 않은 다른 무술을 독학한다고 말하고, 심지어 거기에서 성과를 낸다고 말한다면, 전 그 사람이 배웠다고 말하는 무술이 제대로 한 게 맞는지 심각하게 의심할 겁니다.
쉽게 말해, 무술을 배우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거죠. 기술을 어설프게 흉내내는 걸 지나쳐, 기술을 다듬어 숙련시킨 후 실제로 사람에게 쓰기 위해 대련을 통해 또다시 다듬어 나가야 하는데 이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거니와, 독학으로는 이중에서 초급 단계라 할 수 있는, 기술을 다듬어 숙련시키는 부분부터 이미 깔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독학으로 뭔가 했다며 성과를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사람의 기술은 숙련자가 보기에 이상하며, 적용 또한 억지인 경우가 태반입니다.
무술 초보가 굳이 독학을 하겠다고 할 때 할 수 있는 비판이 동일하게 들어갈 수도 있고요. 어차피 제대로 안 배우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 익히는 이상 '그 무술'이라고 할 수 없는데 왜 굳이 '그 무술'을 하려고 하나요? 난 '그 무술'을 배우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한 형태만으로도 제대로 '그 무술'을 재현할 수 있다니, '그 무술'은 그렇게나 만만한 것인가요? '그 무술'에 대해 이만저만한 실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애초에 숙련자라면 무술을 제대로 배우는 데 혼자 생각해서 하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걸 당연히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령 그 차이를 최대한 줄여나간다고 해도 혼자 연구하는 것과 이미 시행착오를 다 거친 사람이 가르쳐주는 것에는 압도적인 효율 차이가 날 것이 뻔한데, 왜 굳이 한참 돌아가는(데다 제한적인 깨달음만 존재하는) 길을 택하나요. 동작 한두 개 흉내내서 적당히 만만한 사람한테 써서 먹힌다고 그 무술을 제대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야 숙련자라면 알고도 남을 텐데요. 무술을 제대로 하는 길은 길고도 지난하고, 배운 것을 숙련시키고 다듬어 향상시키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배우지도 않은 걸 하겠다며 한가한 짓을 하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어요.
뭘 배웠건 안 배웠건 상관없습니다. 독학 같은 거 생각할 시간에 뭐든 제대로 배우는 게 시간 아끼고 얼른 수준 올리는 길입니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고 갈 길은 멉니다.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전 열심히 연습하는 길밖에 없다고 답할 겁니다. 하지만 무엇을 열심히 연습해야 할까요? 감각을 위한 대인수련? 무지무지한 쿵후를 쌓는 개인수련? 지치지 않게 해주는 체력? 기본적인 힘을 보장해주는 근력? 저에게 묻는다면 물론 그 모든 것들이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목을 '반복의 재미'라고 적어놓은 이상, 이번에는이번에도 역시나 개인수련 쪽에 중점을 둬볼까 합니다.
편의상 대인수련과 구분지어 두긴 했습니다만 사실 대인수련 없는 개인수련에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랄까,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고 하는 쪽이 나을까요. 제대로 된 자세와 힘을 내는 요령이 중요한 만큼, 그 만들어진 몸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노하우도 중요합니다. 대인수련에서 얻은 노하우가 개인수련에, 개인수련에서 얻은 노하우가 다시 대인수련에 적용되죠. 목표는 높이 올라가는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축을 여러 개 쌓아야 합니다. 하나만 높이 올려서는 금방 휘청대는 데다 한계가 있겠죠. 축 여러 개가 함께 서로를 지지해줘야 점점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게 되는 법입니다.
그중에서 개인수련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건 제 상황 때문도 큰데, 도장에 매일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매일 영춘권을 하려면 역시 개인수련을 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 몇 달은 코로나 때문에 도장에 아예 나가지도 못했죠) 뭐, 동작 자체를 잘하고 싶기도 한데, 그걸 잘하는 방법은 제가 알기로는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쿵후를 쌓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영춘권을 즐겁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저는 꽤 자주 말했는데, 그건 영춘권이 마냥 룰루랄라 즐거워서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제가 연습하는 게 그리 즐거워 보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힘들고 지루해 보일지도 몰라요. 매일 똑같은 걸 하는데 다음날 또 그 같은 걸 하고 그 다음날 또 같은 걸 합니다. 그게 즐거워? 하고 누가 묻는다면 저는 답하겠죠. "즐거워요."
포인트는, 똑같은 걸 매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똑같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초급자의 경우 반복 횟수 자체에 신경쓰는 경향이 있는데, 성장을 알기 쉬운 척도가 '횟수의 향상'이기 때문이 클 겁니다. 그러나 계속하다 보면 횟수를 더 늘리기 어려워지는 시점이 옵니다. 연습할 게 점점 많아지기 때문에 전부 다 고반복으로 할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죠. 어쨌거나 시간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법인지라. 만약 연습 횟수나 운동 시간만으로 향상을 가늠한다면, 어느 시점이 되면 연습을 반복하는 게 그다지 재미없어질 겁니다. 향상되는 게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연습을 반복하는 이유 자체, 즉 기술 수준 자체의 향상을 목표로 하면 횟수나 시간이 목적이 되진 않게 됩니다. 동작을 더욱 가다듬고 깔끔하게 만들어, 이상적인 동작으로 발전시키는 게 목적이니까요. 그렇다면 어제의 동작과 오늘의 동작은 달라야 하고, 오늘의 동작보다 내일의 동작이 좋아질 수 있게 노력해야겠죠. 그런 걸 목표로 하고 있으면, 매일 똑같은 걸 하는 게 (힘드니까) 즐겁진 않지만 (발전하니까) 즐거운 게 됩니다. 늘지 않으면 재미없겠지만, 무언가 늘면 재미있죠. 무술이란 게 초심자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또한 그만한 향상으로 보답해줍니다. 그 맛을 알게 되면, 누가 하지 말라고 해도 매일 연습하게 돼요. 그리고 그렇게 매일 연습하는 게 쌓여서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이 지나면..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달라져 있는 거죠.
십 년을 이야기하긴 했습니다만, 사실 연습을 매일 하시는 분들은 알 겁니다. 이거 하루만 빼먹어도 그 다음에 이어서 할 때 뭔가 몸이 둔해져 있어요. 저는 주말에는 연습을 약간 간략화해서 가볍게 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연습 메뉴 자체는 다 돌립니다. 극단적으로 몸 상태가 안 좋을 때만 상황 봐서 투로만 조금 하고요. (교통사고가 났던 날도 소념두는 했었죠)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사부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모두가 안다.. 뭐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이게 중국무술계에 정말 있는 말인지, 번스타인의 말 변용인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세상사 여럿이 그렇습니다만, 현상 유지는 없다고 봅니다.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둘 중 하나뿐이죠. 현상 유지를 한다고 보이는 건 미세하게 올라가거나 내려가고 있는 거고요. 설령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저는 조금씩이라도 올라가는 쪽에 있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 무술을 하고 알게 된 건데, 자신과 수준이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의 경우에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수준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편차가 있긴 하고, 그렇다고 해서 방심해도 좋다는 뜻은 또 아니긴 합니다만, 경험해 온 길이기에 보이게 된달지, 알 수 있게 되는 부분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게 재밌는 건 실제로 만나서 손을 섞는 것 외에, 온라인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도 이게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경험에 기반했는지 아닌지 얼추 느낌이 오고, 그 사람이 좋다고 말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의 수준도 지금 어느 정도일지 미루어 짐작이 되죠. 설령 허세를 부린다 해도, 그게 통하는 건 본인보다 못하는 사람에게뿐인 거라, 그게 뭔 의미가 있을지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제가 누군가를 파악할 수 있다! 너는 나보다 하수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이러면서 어느 순간 생각한 게, 그렇다면 나 역시 나와 비슷하거나 잘하는 사람에게는 내 수준이 파악될 것이고, 그런 이상 실제 실력보다 잘해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죠. 뭐 온라인 상에서야 저를 포장하려고 한 적은 없었던 것 같긴 합니다만- 이 이야기는 수련하면서 파트너와 엮일 때의 감각에 가깝습니다. 실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배울 걸 배우면 되지, 상대보다 강해 보이고 싶어하거나 이겨 보이고 싶다거나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달까요. 물론,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마음 자체는 필요하고, 그게 수련에의 열심으로 이어져 실력 향상을 가져온다면 긍정적인 일입니다만, 어쨌거나, 포장할 필요는 없겠다는 겁니다.
결국 제가 원하는 건 강해지는 거지, 강해 보이고 싶은 게 아니니까요. 항상 누구에게든 배울 게 있으면 배우고, 고칠 게 있으면 고치고, 그게 자신을 훨씬 더 강하게 만드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