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향상, 기본을 좋아합니다. 기본이라고 하면 기본기를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이 경우에는 기본 원칙을 의미합니다. 기본 원리라고 해도 되겠군요.
화려하거나 현란한 움직임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움직임을 하건 거기에 제대로 된 기운이 실려 있길 원합니다. 영춘권을 영춘권적으로 하기 위해, 누가 봐도 '아, 제대로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 위해 필요한 건 역시 완전히 지켜지고 체화된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춘권을 하면서 수준이 올라가면 스스로의 움직임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더 깔끔하고 정련된 움직임을 할 수 있을지 궁리하게 되죠. 그러다 깨닫게 되는 건, 내 기본이 아직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건 이미 영춘권 배울 초기부터 사부님께서 말씀해주셨던 것들입니다.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다 알려주셨던 건데, 아직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어설픈 움직임으로 타협했던 것이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잊고 있던 걸 되새기게 됩니다. '이거, 원래 이렇게 해야 했었구나' 하고요.
물론.. 동작을 배운 초기부터 모든 원칙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그건 불가능하죠. 완벽하게 한다고 말해도 결코 그게 완벽할 수 없음을, 일정 기간 이상 배우고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세를 지키려면 흐름이 끊기고, 흐름을 잡으려면 자세가 망가진다-는 건 흔하게 있는 일이죠.
사실 엄격하게 따져보자면, 윗레벨에서 보자면 아랫레벨에서는 솔직히 자세나 흐름 중 어느 쪽을 중시하든 어느 쪽이건 어설픈 건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렇다고 어차피 안 된다며 놔 버리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계속 안 되는 채로만 남아있습니다. 정답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대한 정답에 근접하도록 노력해야 언젠가 정답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죠. 3.14는 정확한 원주율이 아니지만, 어차피 정확하지 않다며 원주율을 3으로 계산해버리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올바른 답에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요. 그래서 요즘은 그런 생각도 합니다. 결국 어느 레벨에서고, 그 수준에 맞는 정답이란 게 있다고요. 수준이 올라가면 다시 잡을지언정, 어쨌거나 불완전하나마 찾아가야 할 것들이 있는 것이죠.
지켜야 할 기본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래서 시간이 흐르며 계속 자세를 가다듬고, 이해가 깊어지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원래 이렇게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되잡아야 하며, 최대한 엄격하게 지켜가야 한다고, 그래야만 앞으로 계속 성장해 갈 수 있다고요. 비법은 기본 속에 있다는 말을 하는데, 정말이지 그게 정확한 말입니다. 기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어느 수준 이상을 넘을 수 없다고 깨닫게 돼요. 내 맘대로 하면 이상하니까 영춘권을 배우는 건데, 영춘권을 배우면서 내 맘대로 하면, 제대로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내 맘대로 해도 강한 사람은 논외입니다. 다만 그런 사람은 애초에 영춘권을 배울 필요도 없겠죠)
연습하지 않고 강해질 수는 없습니다. 기본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채로 강해질 수도 없습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고 강해질 수 없습니다. 해야 하는 일들은, 싫건 좋건 상관없이 해야만 하는 거죠.
대충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연습하고 있습니다.
# 설 연휴에 가벼운 외출 정도는 할 예정입니다만, 매일수련은 변함없을 겁니다. 매일 연습하며 뭔가 바꿔나가는 게 너무 재미있기 때문에, 그걸 멈추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경입니다.
# 쌓아올린 것들을 바탕으로 모든 게 새로워지면서 도약하게 되는 시기가 있는데, 그게 올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춘권 전반적으로 몸 쓰는 방법 자체를 모두 갈아엎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전에 안 되던 게 하나둘 되기 시작했는데, 그 쾌감이란 정말이지 어떤 게임에서도 맛볼 수 없는 쾌감입니다. 오버트레이닝은 곤란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해서 이 흐름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 충권 5천번은 물론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법 할 만해졌습니다만, 어느새 동작이 좀 틀어져 있었다는 걸 알아채서 다시 고쳐가고 있습니다. 횟수를 정해놓고 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자세가 부정확해지더라도 횟수를 채우려 드는 행위죠. 연습은 올바른 동작을 몸에 새겨넣기 위한 것인데, 잘못된 동작을 많이 하느니 차라리 횟수를 줄여 정확하게 하는 게 낫습니다. 뭐 그렇다고 제가 횟수를 줄일 생각은 아닙니다만. 하나하나 정확하게 많이 하면 최고니까요.
# 사람들과 하면서 피드백을 받고, 사부님에게 또 깊이 있게 교정을 받으며, 제대로 영춘권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생각하고, 고쳐나가고, 다시 생각합니다. 도장에 오래 다녔다는 것만으로 강해지진 않습니다. 많이 나간다고 꼭 강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고민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그걸 고치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합니다. 머리도 써야 하고, 몸도 써야 하죠. 둘 중 하나가 편하다? 그러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겁니다.
# 승부욕은 당연히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지금 저는 치사오를 하건 고사오를 하건 스파링을 하건, 상대를 이겨야겠다는 억지를 품지는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은 제가 영춘권을 잘하기 위한 수단이고, 더 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방편입니다. 같이하는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실력으로 계속 올라가면서 함께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랜 기간을 함께하며 인간적으로 친해진 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언제까지나 무술적으로 전력을 다해 서로를 향상시키는 좋은 상대로 함께하길 원합니다. 그런 상대는 많을수록 좋아요.
지난주에 드디어 도장에 복귀했습니다. 시간이 한정적이었지만 그래도 못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지요. 사부님을 뵙고, 사형제들을 만나 영춘권을 하니 그렇게 즐거울 데가 없더랍니다.
한 달 반 이상을 도장에 못 갔기 때문에, 연습할 상대가 한 명뿐이었는데 (물론 이게 그나마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은 상황이긴 했습니다만) 그건 저에겐 좀 새로운 상황이었고, 다시 도장에 복귀하면서 새삼 체감하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1. 역시 여러 사람과 해야 합니다. 나에게 부족한 면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걸 알기 위해서는 단 한 사람과만 해서는 모자라요. 다들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과는 두드러지지 않는 문제가 또 어떤 사람과는 대두됩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자기 문제가 뭔지를 알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연습은 그러기 위해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2. 당연히, 개인연습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개인연습을 하면서 스스로 뭔가 알아내고 과제를 찾아내기도 했으니까요. 다만 그건 코로나 이전에도 그래왔던 것이고, 전엔 뭔가 알아내면 곧바로 도장에서 확인해보았는데 이번엔 그게 좀 여의치 않았다는 차이가 있었죠. 아니나 다를까, 사부님께서 몸을 잡아주실 때 보니 역시나 제가 느낀 것과 조금 다르게, 그리고 훨씬 깊이 있게 잡아주시더라고요.
2-1. 다만, 사부님께서 몸을 잡아주실 때 뭔가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개인연습을 통해 무언가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도장에서 연습하는 것만으론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결국 개인연습의 중요도가 떨어지진 않습니다. 할 수 있는 건 해야죠.
3. 여러 사람을 만날수록 다른 방면에서 자극을 받는데, 수련이 즐거워지는 데에는 그것 또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내가 미처 모르던 걸 알게 되고, 선의의 경쟁을 할 수도 있죠. 도장에 못 갔던 동안 약간 평이해졌던 자극이, 다시 순식간에 끓어오른 느낌입니다. 바로 이겁니다. 이 맛이죠.
방문객 여러분은 어떻게 운동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쪼록 코로나 조심하시고 즐겁게 운동하시길 기원합니다.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적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사실 별다를 것은 없습니다. 해야 할 것을 하던 대로 하겠지요. 아쉬운 게 있다면 코로나 때문에 거리두기 강화로 지금 도장에 못 나가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건데, 이것만은 어쩔 수 없으니 상황이 좋아지길 기다릴 뿐입니다. 그나마 회사에 같이 다니는 사형과 치사오를 할 수 있는 게 다행이로군요.
신년 목표라고 하기는 뭣합니다만, 어쨌든 나름의 목표를 잡아서 금년 내에는 가능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려는 중입니다.
1. 연환충권 5천번을 하고 난 다음날에도 전혀 힘들지 않은 몸을 만들 것 : 이건 아마 1월 중에는 가능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얼추 가능해지긴 했는데, 날이 거듭되다 보면 팔이 피로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건 아직도 팔에 쓸데없는 힘이 들어간 것 + 팔이 아직 덜 단련된 것일 터라,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잘될 거라 생각합니다.
1-1. 월백을 최대한의 힘으로 때려박아 치면서도 팔에 일절 힘이 들어가지 않게 할 것 : 제대로 된 충권이란 의미에서, 결국 1번과 연결되는 사항입니다. 부셔버릴 작정으로 들이박아 치면서도 힘을 완전히 빼고 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반동이 내 몸에 바로 돌아오기 때문에.. 하지만 잘된다면 충권 레벨이 확실히 한 차원 올라가겠지요. 가능하다면 금년 중으로 감각을 잡을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2. 표지 치사오를 표지답게 할 수 있게 할 것 : 표지를 쓰는 건 심교까지의 기술을 쓰는 것과 확연히 다릅니다. 단순히 궤도가 바뀌거나 기술의 형태가 바뀌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타이밍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죠. 그 실마리를 언뜻 잡긴 했습니다만 제대로 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장기 프로젝트고, 금년 안에 마음에 들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어쨌든 신경 써서 노력하지 않으면 얼마나 시간이 지나간들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3. 충분히 빠른 발차기를 만들 것 : 충권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기본기죠. 그리고 이 속도를 빠르게 하려면 그냥 횟수를 채우는 식의 연습으로는 안 됩니다. 깔끔하고 빠르게 할 것을 신경쓰며 반복숙달하는 수밖에 없죠. 발차기 역시 신뢰할 수 있는 무기로 만들 작정입니다.
1번이니 2번이니 라는 식으로 나눠 놓긴 했습니다만, 사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로 연결되고, 각각의 연습이 서로에게 영향을 줍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결국 목적은 하나예요. 영춘권 잘하는 것.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다음 목표를 찾아내 노력하고, 그게 가능해지면 또 다음 목표를 찾아내고. 전 그런 걸 아주 좋아합니다. 매일 같은 걸 하는 듯 보이지만, 제게는 그 매일이 같지 않죠. 그래서 연습은 늘 힘들고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