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는 금방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지금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지겠죠. 도장을 나오는 사람들이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확실히 줄었지만, 나오는 사람들은 어쨌거나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에게 영춘권은 이미 생활의 영역이고, 더 심한 긴급사태가 되지 않는 한 포기할 수 없는 것이겠죠.
# 저에게는 더욱 그러한데, 여태까지 쌓아 온 것들이 표지를 배우면서 확연히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움직임에 있어서 제대로 몸을 사용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팔만 움직인다거나 다리만 움직이는 일은 생각할 수 없죠. 다시 또 빠르고 강하며 부드러워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전하는 맛을 알게 되면 수련을 놓을 수 없죠.
# 회사에서 일이 끝나고 난 뒤 같이 일하는 사형과 치사오를 하고 오는 것도 실력 발전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여태까지도 대충 한 것은 아니었지만, 치사오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정말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므로,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해서 실력을 키워, 이 사형의 연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려는 중입니다.
# 물론 개인수련은 빼먹지 않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고 나서 도장에 가면 어떤 동작들을 사부님께서 수정해주시는데, 그걸 바탕으로 다시 수련해 갑니다. 더욱 깔끔하고, 더욱 정확한 움직임으로. 수련하고 나면 언제나 땀범벅입니다. 요 며칠은 날이 더워진 덕에 에어컨을 틀어버려서 오히려 나아진 기분이긴 합니다.
도장에서 운동할 때, 사부님의 동작을 보면 늘 감탄사가 나오곤 합니다. 기술 자체가 워낙 깔끔한 데다, 어떤 상황에서건 정말 쉽게 기술을 쓰시죠. 사실, 동기들과 할 때보다 사부님과 할 때 힘이 훨씬 잘 빠지는데, 그건 힘을 아무리 줘봤자 사부님이 아주 간단히 빠져나오시는 데다, 힘이 조금이라도 넘치면 그걸 이용해 바로 역으로 절 제어하고 들어오시는 걸 수없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체중이나 근력이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게 오히려 나를 흐트러뜨리는 원인이 되고 말죠.
정말 잘하면, 기술을 쓸 때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아주 쉬워 보이죠. 따라해보면 그게 결코 그리 쉬운 게 아님을 알게 됩니다만..
지향하는 바는 늘 그런 움직임입니다. 쉽게 쉽게 움직이는 것이죠. 그건 허공에서 그냥 혼자 손발을 움직이는 것과는 다릅니다. 실제적으로 상대의 힘이 나를 향해 들어오고, 상대 역시 최선을 다해 나를 제어하려는 상황에서 나는 가볍게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기술이 맞물린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만, 가볍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맞물려'서는 안 됩니다. 부딪히는 느낌이 들어서는 안 되고 어디까지나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움직여야 하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극한의 부드러움을 추구하겠다며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자세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그건 그냥 흐느적거림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부드러워질 수는 있어도, 그냥 부드럽기만 한 거라, 결국 맞게 된다는 점에선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표지를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배우는 것 중 하나가 이겁니다. 쉽게 움직이는 듯 보이는 거요.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상대에게서 빠져나오고 상대를 제어합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해지기까지의 길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여태까지보다 훨씬 더 자신을 다듬어야 하고, 매끄럽지 못한 부분을 깎아내야 합니다. 뭐, 그게 또 무술을 하는 재미죠.
표지 치사오는 여태까지의 소념두나 심교 치사오와는 상당히 달라서, 다소 이질적인 느낌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만, 한편으로는 또 더없이 영춘권답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 영춘권을 하고 있구나'하는 실감이 새삼 듭니다.
연습하고, 연습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연구하고, 고민하고, 또 연습하고, 다듬고, 고치고, 또 연구하는- 그런 나날의 반복입니다. 여태까지도 그랬습니다만, 단순히 도장에 나간다고 자동적으로 강해지진 않습니다.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죠. 다행히 저는 적어도 영춘권에 있어서는 그 연구와 노력을 즐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견자단의 엽문 시리즈에 대해서는 사실 개인적으로 여러 감정이 교차합니다. 이 시리즈, 특히 <엽문 1>은 이소룡과 절권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영춘권에 관심이 있던 제게 '영춘권이 멋있다!'고 느끼게 해준 중요한 작품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실제로 영춘권을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즐겁게 계속하고 있죠.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다 이야기하려면 너무 길어지니 그냥 잡담처럼 두서 없는 감상이나 적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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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자단의 영춘권이 현재의 영춘권 인기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저 자신 역시 <엽문 1>에서의 연환충권에 반한 적이 있지요. 다만 엽문 시리즈에 대해서라면 솔직히 1과 2 이후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무술감독이 홍금보에서 원화평으로 바뀐 3의 영춘권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화평의 액션은 무술들이 보다 아름다운 합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멋진 장면을 연출할 수는 있지만 심플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영춘권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1과 2에서는 그래도 영춘권을 이해하고 흐름을 짰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3부터는 단지 영춘권의 겉으로 보이는 동작만을 가져와 찍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지만, 4는 그래도 좀 괜찮았습니다. '영춘권이 나오는 무술 영화'라고 할 때, 사람들이 '영화에 나오는 영춘권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부분을 고민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견자단이 (이 영화를 끝으로 무술 배우를 은퇴할 만큼)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화려한 움직임이 어려워서였을 수도 있겠죠. 어느 쪽이건, 전 4가 3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3보다 못한 4였으면 차라리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으리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개인적인 선호도는 대충 이렇습니다. 1>>>>>2>>>>>>>>>>>>>>>>4>>>>>>>>3>>(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엽문 외전 장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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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뭐.. 엽문이 미국에 간 게 거짓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애초에 1에서부터 엽문이 군대와 충돌한 적도, 장군을 때려눕힌 적도 없었는걸요. 엽문 시리즈는 엽문이 실존인물이고 영춘권의 고수이다, 라는 기본 설정 말고는 인물들 간의 인간관계가 모조리 재창작이라고 보시면 무방합니다. 거의 대체역사물이죠.

그러니까 전 이 시리즈에서는 얼마나 관객으로서 마지막 결투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지에만 신경씁니다. 그 점에서 이민자로서의 고통을 보여준 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적으로 그림이 나올 법한 상대 무술로 극진 가라데가 가장 보기 좋다고는 해도, 일본무술을 배운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해병 가라데가가 중국무술과 중국인을 극혐해서 싸우게 된다는 전개는 솔직히 좀 무리수가 있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그렇게 유색인종과 유색인종의 무술이 싫으면 일단 가라데부터 극혐해야 하지 않나요. 2차 대전 중의 태평양 전쟁을 생각하면 일본인을 훨씬 멸시해야 말이 된다 싶은데요. 물론 류쿠 왕국의 무술이었던 가라데를 엄밀한 의미에서 '일본인의 무술'이라고 해도 좋으냐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지만요.
상대 악역에 대한 적합한 분노 게이지를 모았다가 속시원하게 터뜨린다는 맛은 역시 1이 최고였고, 2가 그 다음으로 무난했고, 3은 최악이었고, 이번의 4는 2와 3의 사이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말하고 보니 각 영화에 대한 제 선호도와도 일치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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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국곤의 절권도도 나름 괜찮았어요. 이 사람 열심히 연습했군, 이라는 생각이랄까요. 물론 이소룡을 생각하고 진국곤을 보면 미흡해 보이는 게 많이 보이지만, 그런 거 엄격히 따지기에는 애초에 견자단의 영춘권도 완벽해서 보는 거 아니라서요. (....)
극중 나름 활약한 무술인 형의권이나 태극권도 꽤 멋지게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전 영춘권사지 형의권사나 태극권사가 아니라서 그 무술들의 실제 수련자에게 영화 속의 무술이 어떻게 보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불만족스럽다거나 허황되어 보이는 점이 아마 있지 않을까 싶지만, 안심하세요, 위에서도 말했지만 영춘권사에게는 견자단의 영춘권도 솔직히 영춘권 원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 어쨌거나 영화상으로 멋지게 표현되었으면 만족하는 거죠, 뭐. 형의권이나 태극권이 아무리 멋지게 나왔어도 결국 패배하지 않았느냐고 아쉬울 수는 있지만, 그러면 뭐 엽문이 나올 구석이 없으니까.. 어쨌든 상대 피지컬이 워낙 좋게 나와서, 패배했더라도 그 무술이 약하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라고 말하기엔 그냥 승패만 보고 무술이 약하니 어쩌니 떠드는 사람들도 꽤 많으니 역시 아쉬울 수도 있긴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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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보스로 나온 콜린 말인데, 잠깐 <엽문 4>의 다른 감상을 보다가 콜린 역을 맡은 배우인 크리스 콜린스가 실제로 영춘권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엽문 4>와 관련된 인터뷰와 이 사람이 영춘권을 하는 영상이 소개되어 있더군요. 영문 인터뷰 (https://kungfukingdom.com/ip-man-4-the-finale-interview-with-chris-collins/)에 따르면 이 사람은 젊을 때 70대의 영춘권사를 만나 영춘권을 접했는데, 그게 인상적이어서 영춘권을 배우기로 결정, "결국 홍콩에 도착해서 모든 영춘권 도장을 검색했는데 가장 좋은 학교를 찾았으며 지난 22년 동안 그 곳에 있었습니다."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음 그럼 제대로 영춘권 배운 건가?' 하고 영상을 봤는데..
...움직임이 이거 진짜로 영춘권을 잘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견자단보다 이 사람이 훨씬 영춘권 잘하는데? 싶었어요. 게다가 보고 있으려니 어딘가 우리 파 영춘권 비슷해 보이는 동작도 보여서, 좀 더 알아봤더니...
우리 파 영춘권.. 그것도 홍콩 본부에서 22년을 배운 사람이더랍니다. 지금은 독립해서 자기 액션 스쿨 (영화 쪽으로 나가는 게 이분의 지향이었던 모양입니다)을 갖고 있긴 하지만, 독립하고 나서도 여전히 움직임이 우리 파 영춘권의 움직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잘해요. 진짜로 영춘권 잘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기술을 갖고 그런 식으로 얻어맞다니 (....).
영상들을 좀 찾아봤다가 좀 더 지나서 깨달았는데, 양정 시조의 책에도 이 사람이 나왔고, 예전에 본 영춘권 다큐에도 등장해서 영춘권의 다른 활용법을 보여주었던 분이었더군요. 인상이 달라져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 다큐죠. 중국무술 덕후라면 이 다큐를 아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분을 알게 된 건 <엽문 4>가 제게 준 뜻밖의 소득인데, 앞으로 크리스 콜린스의 이름을 기억해두려고 합니다. 순수하게 영춘권만 배운 분은 아니라서 다른 무술도 할 줄 아시는데다, 다른 영화에 나온다고 해도 솔직히 영춘권 영화 유행은 다 지났기 때문에 이제 와서 이분이 영화에서 영춘권을 하는 걸 보기는 힘들 거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주목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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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콜린스 소개로 끝나버리면 좀 이상하니까 <엽문 4> 최종평으로 마무리합니다. 시리즈의 마무리를 깔끔하게 잘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3이 실망스러워서 4를 또 낸다는 소식에 '차라리 안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3보다 나은 4라서 다행입니다. 오히려 4가 나와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엽문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고 봐요. 1이나 2보다 낫지는 않다고 생각하니 그 점은 감안하시고요.
여담- 깔끔한 마무리에 더해서, 개인적으로는 요나 역의 Vanda Margraf와 콜린 역의 Chris Collins라는 좋은 배우를 발견해서 즐거웠습니다.
코로나로부터 상당히 안전한 (산속) 저희 집으로 영춘권 형제들을 초대해 함께했습니다.
웃고 떠들고 운동하고 식사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